중국 문학사에서 ‘4대 명작’으로 꼽히는 4대 고전 소설이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비교적 잘 알려진 <삼국연의-三國演義>, <서유기-西遊記>, <수호전-水滸傳> 외에 <홍루몽-紅樓夢>이 있다. 4대 명작 중의 조설근(曹雪芹, 18세기 초반) 원작의 <홍루몽>은 구미 한학(漢學)계나 문학계에서 이 소설만을 집중 연구하는 ‘홍학(紅學)’ 연구파들이 있을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서 오히려 더 인기이다. 물론 화인(華人)세계에서는 4대 명작 모두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여겨질 만큼 경극(京劇, 베이징 지방극), 예극(豫劇, 허난성 지방극), 황매희(黃梅戱/黃梅調, 후베이 지방극) 등의 고전 지방 희극에서부터 라디오 드라마, TV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연극과 뮤지컬 등 모든 장르에서 아주 많이 다루어졌었고 앞으로도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
11월2일 오늘은 ‘고궁박물원 제대로 알기’ 시리즈로 현재 타이베이 고궁 2층에서 만나볼 수 있는 ‘보이는 홍루몽’을 공유한다.
소설 원작을 각색한 드라마,영화,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새로운 작품들로 새롭게 태어나는 건 자주 볼 수 있는데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에서 소설을 주제로 기획한 특별 전시의 대표작으로 바로 ‘보이는 홍루몽’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의 마지막 제국 청나라 성세 때의 귀족 집안이 부귀영화를 누렸던 옛 세월을 추억하며 그린 이야기로 가문이 황제의 두터운 신임과 정으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었지만 나중에는 죄를 얻어 집안 재산을 모두 나라에 몰수 당하고 가족들의 앞길도 막막했던 작가의 실제적인 인생 역정이 소설에 스며들어 있다.
가문과 인생으로는 불행했던 조설근이 운명을 탓하며 타락할 수도 있었겠지만 뛰어난 학식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소설에 쏟아부었는데 확실한 건 <홍루몽>은 당시 신분이 높은 사람이든 서민층이든 남녀를 불문하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고 한다. 소설에서 귀족들의 ‘물질’ 문화에 대한 서술을 보면 그 물건이 내 앞에 놓여진 듯한 생동감을 준다. 또 물질 가운데 17, 18세기 때 서양 물건들이 궁정으로 도입되면서 신기하게 느껴졌던 서양 물건이나 그들의 스타일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모방을 하는 풍조를 엿볼 수 있다.
<홍루몽>은 <삼국연의>나 <수호전>과 같은 브로맨스나 마초주의적인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여성 작가가 써도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여성의 마음을 그려내지는 못할 것만 같은 여성 심리를 잘 묘사해 냈다. 그것도 한 명의 여자주인공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의 각기 다른 성격의 여성상을 그려냈다.
작가의 집안이 최고 흥했던 17세기 강희제 시대에 이어 18세기 초기 옹정제 시대엔 죄를 얻어 재산을 몰수 당하여 가문이 몰락해버린 건륭제 시대에 이르러 성인이 된 조설근은 소설을 다 완성하지 않을 상황 아래서 짧은 일생을 마감했다. 미완성이지만 작품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라 그 후에 ‘홍루몽’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작업이 이어져 나갔다.
제국 시대 귀족 집안 여성이라면 자기 스스로를 잘 가꾸지 않았을까? 수를 놓고 그림 그리고 글을 쓰고 우아한 외출을 하는 것 외에 무엇을 했을지도 궁금한데, 박물관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무엇으로 ‘홍루몽’을 표현할지 더 궁금하다.
문학 작품에 삽화는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삽화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해석해 주는 것도 접근하기에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는데 앞서 현대 연극,영화,방송 등등 너무 많은 분야에서 <홍루몽>을 재현했다고 했는데 20세기는 1924년 매란방(생몰: 1894년-1961년, 최고의 경극 4대 명단(名旦,유명 인기 여주) 중의 한 명)이 여주 임대옥이 꽃을 묻는다는 뜻의 ‘대옥장화’를 들 수 있다. 그 후로는 1927년, 44년의 홍루몽 영화가 있었고, 고 장졔스 총통이 국부천도를 하여 타이완에서 정착한 후에도 ‘홍루몽’ 열기는 식지 않았다. 다소 가까운 시기의 것을 보면 1977년 임청하가 남주 가보옥 역을 맡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게 기억난다. 지금도 이토록 홍루몽에 매혹되어 있는데 청나라 중기에는 더욱더 그랬을 것 같다. 청나라 화가 개기(改琦)의 소설 <홍루몽>에 관한 시화(詩畵)집이 있다. ‘청ㆍ개기 찬, 홍루몽 도영, 청 광서 5년(1979년) 간도회본 (清 改琦撰 紅樓夢圖詠 清光緒五年(1879)刊圖繪本, 좌측 사진, 국립고궁박물원 제공)’은 그림 도서의 서적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번 특전에서 그 출판물을 볼 수 있다. 소설을 읽는데 글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삽화를 넣어주어 더 큰 인기를 끌 수 있었고 더 널리 알려지는 데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홍루몽>에는 가씨(賈氏), 사씨(史氏), 왕씨(王氏), 설씨(薛氏) 4개의 가문이 주역으로 나오는데, 이 중에 사상운(史湘雲)은 어려서 부모님을 잃었지만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을 가졌다고 작각가 묘사하였는데 사상운은 천성이 너그럽고 이해심이 많아 화도 잘 내지 않는 성격을 지녀 소설 ‘홍루몽’의 수많은 여성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었는데 심지어 남장도 하는 털털한 성격이라고 한다.
그런데 소설에서 사상운에 관해 매우 여성스러운 걸 표현한 게 있다. 바로 그녀가 술에 취해 누워있는 부분인데, 소설 속의 광경을 이 부채에서 찾아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작품에는 꽃과 나비가 있고 손잡이에는 옥과 기타 보석으로 장식을 하였다. 잠을 자다 손에 쥔 부채를 떨어트렸다고 상상해볼 때 필자는 부채의 그림과 소설 이야기가 어우러져 마치 향기가 나는 듯한 느낌이다. ('보이는 홍루몽' 전시물 일부. -사진: 백조미)
‘청 ㆍ백주 채수 감주보취옥 화접 단선(清 白綢彩繡嵌珠寶翠玉花蝶團扇)’ 부채는 ‘보이는 홍루몽’의 전시 작품중 꼭 갖고 싶은 것 중의 하나인데 이 외에도 모든 전시품이 다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직접 써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욕심도 생긴다. 옛날엔 더위를 식혀 주기도 하겠지만 사실 얼굴을 살짝 가리는 데에도 부채가 자주 등장하였다고 생각되며, 부드러운 여성미를 나태낼 때에도 일종의 장식품, 소품으로 부채를 쓴다. 전시실의 이 부채는 하얀 비단에 수를 놓고 보석을 박은 것인데 화려하다는 생각보다는 정교함, 섬세함에 대한 감탄이 더 앞선다.-白兆美
취재 ㆍ보도: 백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