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지하철 블루라인 국부기념관 역 5번 출구에서 내리면 타이베이 돔과 송산문화창의공원이 펼쳐집니다. 타이베이 시민들의 주요 나들이 장소인 이곳은 주말이면 사람들로 가득차는데요. 타이베이 돔은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 외에도 외식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로, 송산문화창의공원은 아기자기한 악세서리나 유기농 농산품을 판매하는 부스로 가득차있습니다.
인파가 많은 두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흥미로운 장소가 있는데요. 송산문화창의공원에서 시민대도 5단(市民大道五段) 방향으로 향하면 시민대도 고가 아래로 마치 공사를 하고 있는듯한 공터가 보입니다. 바로 옆에 있는 곳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곳은 타이베이 돔이나 송산문화창의공원과는 달리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고, 어둡고 침침한 음기가 돕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곳은 공터가 아닙니다. ‘원공조당(員工澡堂, Employee Bathhouse)’라고 써있는 현수막이 크게 쳐져있는 이곳은 다름아닌 과거 타이완철도회사 직원들의 목욕실.
국가철도박물관 준비처에 따르면, ‘원공조당(員工澡堂)’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의 원래 명칭은 ‘편의소병욕장(便衣所竝浴場)’으로, 1935년에 완공된 타이완철도회사 직원용 목욕실이라고 합니다. 당시 직원들에게 제공한 일종의 복지 시설이었죠. 직원들은 매일 기차를 수리한 후 온몸에 기름때가 묻은 상태에서 퇴근하기 전 목욕탕에 들러 피로를 풀고 동료들과 교류하며 유대감을 쌓곤 했다고 합니다.
이곳은 철도박물관 구역에서 가장 먼저 문화재로 지정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2000년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 타이베이시문화국에서는 이 곳을 타이베이시 고적으로 선정, 2011년에 심의를 거쳐 시의 주요문화자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4년간의 세심한 계획과 연구 끝에 작년 10월부터 상설전을 시작해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하고 있습니다. 당시 철도회사 직원들이 퇴근 후 이용하던 독특한 목욕 문화가 재현되어 있어 상당히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먼저, 목욕탕을 장식하는 둥근 아치형의 건축물의 자태는 1930년대 프랑스 아르데코 풍의 현대화 흐름이 타이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목욕탕 외에도 당시 여러 기차역 등 1930년대 타이완의 대표적인 건축물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죠. 목욕탕의 내부는 높이가 9m에 달하며, 둥근 아치형 설계로 마치 기차 정비 공장을 연상케 하는데, 이 때문에 '타이완식 로마 목욕탕'이라는 별칭도 얻었습니다.
목욕탕 건물은 십자형 평면 구조로,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한 기차역 디자인을 모방했습니다. 미국에서 수입된 폐철도 레일로 연속 아치형 트러스를 구성하고, 지지 아치형 구조로 지붕을 떠받쳤습니다. 빛이 들어오는 채광창의 포물선 모양은 일본 분리파 건축 양식의 특징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목욕탕 내부로 들어가봅니다. 내부에는 두 개의 원형 대형 온수탕과 세 개의 긴 냉수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직원들은 샤워실과 냉수탕에서 몸을 깨끗이 한 후 온수탕에 들어갔습니다.
대형 온수탕에는 약 130cm 높이의 물이 차있고, 욕조 주변에는 목욕 용품으로 각종 플라스틱 재질의 대야들도 놓여있습니다. 목욕탕이나 온천 문화가 낯설지 않은 한국인들에게도 과거 목욕탕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입니다. 심지어 목욕탕 안 철제 사물함들은 타이완철도회사 직원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것으로, 복원 과정에서 사물함을 열어보니 당시 직원들이 사용하던 목욕 용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남겨진 세숫대야, 비누, 작업용 신발 등은 전시대에 그대로 진열되어 있고요.
남아있는 물건 중 신기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증기 파이프와 수도꼭지입니다. 알파벳 "α" 모양으로 구부러진 증기 파이프는 열팽창, 냉축, 신축 탄성공간을 제공하여 단시간의 큰 온도 차로 인해 연결부가 탈락하지 않도록 유연성을 제공합니다. 탈의실과 세탁대에 있는 수도꼭지는 타이완철도회사 직원들이 직접 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360도 회전할 수 있는 게 특징인데, 세숫대야 등 목욕 용품을 들고 한 손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중앙에 위치한 목욕탕 내부 양옆으로는 별도의 전시구역이 있어, 목욕탕의 보존 가치와 의미를 상세히 설명합니다. 서측 전시 구역에서는 이미지와 모델을 통해 타이완 건축이 근대에서 현대로 이행하는 과정의 시대적 배경을 소개하며, 1930년대에 건축된 이 목욕탕과 동일한 시기에 지어진 타이완의 주요 건축 사례를 탐구하고, 목욕탕 공간이 철도회사 직장인의 생활에서 가지는 의미를 조명합니다. 한편, 동측 전시 구역에서는 타이완철도회사의 문화재 보존 과정을 설명하며, 복원 작업에서 발견된 유물 및 옛 자재를 전시합니다. 이를 통해 타이완의 드문 대규모 산업 문화유산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과정을 증언합니다.
이 상설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문화재 복원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남아 있는 물품들을 철저히 조사하고 산업 기술의 시대적 맥락을 기록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1935년 목욕탕이 건축된 이래 직원들이 목욕탕을 사용했던 흔적들을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고스란히 보존하려 한 노력이 돋보입니다. 예를 들어, 공간 내에 남아 있는 직원들이 손으로 쓴 표어, 낙서, 끌로 새긴 자국 등을 가능한 한 지우거나 제거하지 않고, 최소한의 복원만을 실시해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공존하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죠. 이 점이 타이완철도회사 직원 목욕탕, ‘원공조당’ 상설전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30년대 당시 직원들의 일상을 조명하는 것에서 시작해 목욕탕이 타이완의 현대화 과정에서 차지한 공간적 역할, 그리고 현재에 이 장소가 문화유산으로서 갖는 의미를 복합적으로 탐색할 수 있게 합니다.
엔딩곡으로는 타이완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웨일즈 출신 배우 겸 가수 라이디언 본(Rhydian Vaughan, 鳳小岳)의 2023년 곡, ‘욕실 속 노래(浴室裡的歌)’를 띄워드립니다.
►타이완철도회사 직원 목욕탕 상설전(氤氳時代 員工澡堂常設展)
날짜: 1/25(토) 까지
시간: 매주 화-토 09:30-17:00
서승임 徐承任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