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춤, 그리고 연기가 한데 어우러져 현장에서 관객들에게 진한 울림을 안겨주는 무대극인 뮤지컬. 저는 한국에서 중학교 때 처음 뮤지컬을 보고는 한때 뮤지컬 배우를 꿈꾸기도 했을 정도로 무대를 꽉 채우는 배우들이 참 멋있어보였는데요. 제가 가장 처음 본 뮤지컬은 <렌트(Rent)>였습니다. 뉴욕 브로드웨이 오리지널팀이 내한공연 하는 걸 직접보았는데요. 배우들이 영어로 연기해서 그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긴 어려웠으나, 당시 배우들이 무대에서 내뱉는 우렁찬 노랫소리와 간절한 몸짓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52만 5,600분(Five hundred twenty-five thousand six hundred minutes)’이 반복되는 렌트의 대표곡 Seasons of Love는 그 이후로 저의 mp3에 빠지지 않는 플레이리스트가 되었고요.
2000년대 초반, 주로 오리지널 팀의 내한 공연만 주를 이루던 뮤지컬 시장에 <명성황후>라는 작품이 2007년 국내 작품으로는 최초로 100만 관객을 달성한 한국의 첫 뮤지컬 작품으로 등극하게되죠. 이때 저도 세종문화회관에서 <명성황후>를 보고는 눈물을 펑펑 쏟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연주되는 오케스트라의 울림과 노랫소리는 배우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인상에도 훨씬 깊게 남죠. 한국 창작 뮤지컬이 지금과 같이 많진 않았던 당시 그렇게 뮤지컬은 10대인 저의 부푼 꿈을 한껏 피오르게 했습니다.
요즘 타이베이는 뮤지컬 열풍입니다. 타이베이 스린(士林)에 소재한 타이베이 공연예술센터(台北表演藝術中心, Taipei Performing Arts Center)에서는 연일 새로운 뮤지컬 무대 소식이 들려옵니다. 3년 전인 2021년 막 완공해 2022년 공식 개막 공연을 시작으로 타이완의 정상급 무대예술을 선보이는 타이베이 공연예술센터는 올해 3월 초 타이완 창작 뮤지컬 노래를 집대성한 뮤지컬 갈라쇼를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오는 5월 리안 감독의 1993년 영화 <결혼 피로연>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도 바로 이곳 타이베이 공연예술센터에서 세계 초연될 예정입니다. 여기에 중정기념당으로 잘 알려진 자유광장 안에 소재한 타이베이국가희극원(台北國家戲劇院)에서도 오는 5월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타이완 첫 무대를 선보인다고 하니, 그야말로 2024년 올해 타이베이는 뮤지컬 바람이 크게 불 예정입니다.
타이완 창작 뮤지컬의 음악을 집대성한 '갈라! 뮤지컬 갈라쇼'
타이완의 창작 뮤지컬, 청취자님들께서는 혹시 아는 작품 있으세요? 사실 저도 타이완에서는 뮤지컬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타이완에는 어떤 창작 뮤지컬이 있는지 생소한데요. 마침 지난 주 타이베이 공연예술센터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된 <갈라! 뮤지컬 갈라쇼>는 처음으로 타이완 창작 뮤지컬 작품의 노래들을 집대성해 관객들에게 타이완 뮤지컬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되새겨 주었습니다. 갈라쇼 무대를 제작한 정후이청(曾慧誠) 뮤지컬 감독은 “타이완 뮤지컬의 발전과 이러한 맥락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며 “타이완의 뮤지컬 창작이나 음악의 모든 방향에서 하나의 논리로 발전시키는데 적합할 것”이라며 갈라쇼의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는데요. 그렇다면 갈라쇼에 등장한 작품을 살펴보면 대표적인 타이완 창작 뮤지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겠죠?
먼저 첫 번째 작품은 지난해 타이완에서 처음 선보인 <세 자매에게 고함(勸世三姐妹)>입니다. 뮤지컬 무대에서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와 성원을 받아 단독 콘서트는 물론 음악제 무대에까지 올라 음악팬들 사이에서 크게 회자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다음은 2009년 타이베이 국가희극원(台北國家戲劇院)에서 초연, 타이완의 향토 문화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마이 디어 넥스트 도어(隔壁親家)’입니다. 14년간 12개 도시를 투어하며, 60회 공연한 기록을 갖고 있는 이 작품은 타이완 이란 시골 마을에서 함께 자란 두 소년의 우정과 인생사를 다루며, 타이완 관객들에게 감동적인 웃음과 울음을 모두 선사해 오고 있습니다.
다음 타이완 창작 뮤지컬 작품은 바로 ‘음식남녀(飲食男女)'입니다. 1994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음식남녀'는 2018년 타이중에서의 초연을 시작으로 이듬해인 2019년 타이베이 국가희극원 무대에도 올랐는데요. 이 작품의 음악감독인 란티엔하오(冉天豪)는 어려서부터 합창단 활동을 했으며 뮤지컬에 푹 빠진 뒤로 창작의 길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국빈급 셰프 아버지와 아버지의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세 딸의 식사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음식남녀'가 란티엔하오 감독의 음악과 만나 어떻게 재탄생했는지 궁금합니다.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창작 뮤지컬은 ‘타이베이 대공습(台北大空襲)’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5년 5월 미군이 일본령 타이완 섬을 공습해 타이베이에만 170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을 다룬 뮤지컬 ‘타이베이 대공습'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학생, 군인, 신부, 기생, 의사, 경찰, 여동생, 그리고 강아지와 고양이까지 서로 다른 객체들이 당시 참혹한 역사의 현장을 어떻게 목격하고 또 살아남았는지 이야기합니다. 작년 타이완 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인 ‘타이베이 대공습'은 타이베이 공연예술센터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리안 감독 영화 <결혼 피로연>(1993)이 뮤지컬로!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뮤지컬은 바로 리안 감독이 1993년 개봉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 '결혼피로연(囍宴)'을 원작으로 한 새 작품입니다. 바로 오는 5월 타이베이 공연예술센터(台北表演藝術中心)에서 세계 초연될 예정인데요. 기존의 타이완 창작 뮤지컬과 달리 이 작품은 미국 브로드웨이 창작진과 타이완 극장팀, 그리고 타이완계 다국적 기업과 타이완 문화콘텐츠진흥원(文策院, TAICCA)이 공동 투자 및 합작한 작품입니다. 규모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중화민국에서 문화콘텐츠의 응용 및 산업화를 촉진하고 문화창의산업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 설립된 행정법인인 문화콘텐츠진흥원이 처음으로 공연예술에 투자한 사례이기도 한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뮤지컬 ‘결혼 피로연'은 은 타이완계 미국 브로드웨이 스타인 웰리 양(Welly Yang)과 미국 토니상 수상자인 브라이언 요키(Brian Yorkey), 할리우드 극작가 맷 에디(Matt Eddy), 작곡가 우디 박(Woody Pak)이 공동 창작, 여기에 미국 브로드웨이 베테랑 무대예술 감독 고든 그린버그(Gordon Greenberg)의 연출이 더해진다고 합니다.
라인업 역시 탄탄합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알라딘’의 남자주인공을 맡았던 미국 브로드웨이 스타, 텔리 량(Telly Leung)과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Westside Story)의 남자주인공 맷 싱글데커(Matt Shingledecker)를 주연으로 캐스팅했고, 최근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실사판의 중국어 버전 주제곡을 맡은 타이완의 유명 가수까지 대거 캐스팅했습니다.
공동 창작잔인 웰리 양은 "과거 미국에서 창작한 뮤지컬을 타이완으로 가져간 적이 있지만 타이완 현지 인재들과는 협업을 하지 못했다"며 "이번 새로운 제작을 통해 타이완과 미국의 뮤지컬 인재들을 엮어 문화예술 방면의 다국적 교류는 물론 타이완의 우수한 뮤지컬 인재들을 국제무대로 이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미국의 브로드웨이 출신 제작진에 타이완 문화콘텐츠책진원의 투자까지 앞으로 타이완에서의 뮤지컬 시장을 더욱 커질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타이완 창작 뮤지컬을 만나보고 싶다면 타이베이 공연예술센터나 타이베이국가희극원을 들러보시죠!
서승임 徐承任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