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AI 자율주행 로봇이 주문한 음식을 서빙해주는 가게를 이제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aT센터에서 열린 ‘푸드 솔루션 페어 2023’에서는 로봇팔 튀김기가 비치되어 있어 주문이 들어오면 로봇팔이 자동으로 움직여 닭튀김을 조리해내기도 했죠. 이처럼 ‘푸드 테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면서 로봇, AI 등은 과거 사람이 직접 하던 노동의 범위를 놀라운 속도로 넓혀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음악을 작곡하거나 미술작품을 그리는 인공지능까지 더해져 창작과 같이 인간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던 기존의 관념이 하나둘씩 무너져가는 지경에 놓여있습니다.
현재 타이베이 현대예술관(MoCA, 台北當代藝術館)에서 열리는 전시 ‘우연 작동(偶然的運轉, Chance Operation)'은 세상이 더 이상 인간을 중심으로 작동하지 않고 비인간이 개입할 때 겪게 될 현상에 대해 고찰하며 물음표를 던집니다.
타이베이 지하철 중산(中山)역 1번 출구 앞에 있는 타이베이 현대예술관은 1921년에 지어진 일본식 건축물을 그대로 살려 2001년 5월 설치된 타이완 최초의 현대예술 전용 박물관인데요. 바로 이곳에 지난 20일 한국의 한 비디오 아트 작가 전시의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타이베이 현대예술관과 한국 광주에 소재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협력전인 이번 전시는 권혜원 작가의 네 가지 영상 및 설치 미술을 통해 타이베이 시민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바로 ‘기존의 인간중심주의를 성찰하고 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비인간과의 공존을 고려해야한다’는 것인데요. 언뜻 잘 와닿지 않으실텐데요. 보다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번 개막식에 참석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이기모 큐레이터는 “오늘 날 전세계는 환경문제, AI문제 등 사실 매우 비슷한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며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네 개의 작품의 키워드는 ‘에콜로지(echology)’, ‘테크놀로지(techonology)’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에콜로지와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연관되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어떻게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전시에서 보게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큐레이터가 여기서 언급한 에콜로지와 테크놀로지는 바로 인간이 아닌 비(非)인간의 영역이죠.
에콜로지(ecology)는 인간의 힘으로 컨트롤할 수 없는 생물과 자연 환경, 그리고 그것 사이의 관계를 통칭합니다. 타이베이 MoCA에 전시된 네 작품 중 <불가능한 세계(Impossible World)>는 바로 에콜로지의 존재를 영상으로 담은 작품입니다. 권 작가는 한국의 팔당호에 카메라와 센서를 설치하여 수온, PH 농도, 생물 다양성, 생물학적 습성의 변화를 1년간 관찰한 후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였습니다. 이때 수집된 데이터를 이용하여 AI가 인간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팔당호에 서식하는 생명체와 생태환경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서사를 생성하는 것을 작가는 발견하게 됩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비인간인 AI가 인간의 관점과는 전혀 다른 세계와 우주의 서사를 다시 쓸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에이전트의 역할을 맡게 된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작품 <불가능한 세계(Impossible World)> 전시 장면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권혜원 작가의 네 점의 작품은 한국 서울 청담에 소재한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작년에 전시된 바 있습니다. 제19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자인 작가의 작품은 ‘행성극장(planet theater)'이라는 주제로 한국 관객들은 먼저 만났었죠. 당시 큐레이팅을 맡았던 장민지 큐레이터는 Rti 한국어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작가님 자체가 ‘공존'이란 주제에 굉장히 오랫동안 진지하게 연구를 하셨고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공존에 대해서는) 최근 작품에서 많이 다루고 계시다”고 말했습니다. 작년 한국에서의 전시 ‘행성극장'에는 권 작가의 총 6 점의 작품을 전시했다며 제목이 ‘행성극장'인 이유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는데요. “1979년 세계 최초 인공위성이 발사되었는데 그때를 기점으로 한 이론가가 말하기를 인공위성이 지구를 바라보게 됨으로써 지구에 있는 사람은 이제 연극배우와 같은 존재가 된거라고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global theater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권 작가는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행성극장 planet theater라는 전시제목을 사용했습니다.”
타이베이 MoCA에서 전시되는 또 다른 작품 <첫 번째 빛(First Light)>과 <궤도에서(In Orbit)> 에서 작가는 우주와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두 눈을 통해 우주를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천문 망원경과 우주선과 같은 인간이 아닌 기계를 사용해야만 하는 사실에 주목하며, 기술의 힘을 빌어 수집된 정보를 분석하고 설명함으로써 인간의 서사에서는 나올 수 없는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보급되고 인증될 수 있다고 전합니다.
작품 <궤도에서(In Orbit)> 전시 장면
‘에콜로지’,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한 타이베이 전시에서 두 주제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비인간'입니다. 이기모 큐레이터는 철학적으로 질문합니다.
“인간이 보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현재의 세계를 진정한 실재로 분류할 수 있을까요? 절대적 인간중심주의가 더 이상 세계를 설명하는 중심축이 아니라 세계는 실제로 여러 우연에 의해 작동된다면요?”
타이베이 MoCA에서 열리는 <우연 작동> 전시에서 권혜원 작가의 작품을 통해 타이베이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인간의 지배에 의해 정의된 세계가 기계적 장치나 인공지능과 같은 비인간의 개입을 통해 사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의도하거나 계획하지 않았던 비인간 개체의 개입에 의해 형성된 우연적이고 복잡한 현상을 포착하고, 인간중심의 위계질서가 결국 AI나 인공지능과 같은 비인간에 의해 전복될 가능성에 대한 가정을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기저에 깔고 전시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공존’에 보다 초점을 맞춥니다. 인간과 자연, 식물과 동물, 생물과 미생물지구와 우주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서 전시는 개인의 삶에서 우주의 개념으로 관객들의 시야를 확대 시킵니다.
타이베이 MoCA 관장과 한국 ACC의 이기모 큐레이터는 6년 전 ACC에서 주최한 아시안 네트워크 회의를 통해 알기 시작해 지금까지 인연을 유지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한국과 타이완이 함께 협력 전시를 꼭 해보자고 했던 6년 전의 약속이 이루어진 셈이죠. 타이완과 한국 국경을 넘어 지구 공동체에 살고 있는 같은 인류로서 인간계를 넘어 자연과 지구, 우주를 함께 바라보는 것. 타이베이 MoCA에서 열리는 <우연 작동> 전시를 통해 내딘 작은 발걸음이 주는 소중한 메시지입니다.
이번 전시는 올해 12월 10일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서승임 徐承任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