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하면 찻잎을 떠올리시는 분이 많죠. 타이완의 10대 명차에는 지난 주 방송에서 마오콩을 소개하면서 말씀드린 철관음(木柵鐵觀音) 외에 산샤 지역의 비루어춘(三峽碧螺春), 원산 지역의 바오종차(文山包種茶), 동방미인차(東方美人茶), 꿀 향이 그윽한 미샹홍차(蜜香紅茶), 중부지역 르위에탄 호수 지역의 홍차(日月潭紅茶), 장징궈 전 중화민국 총통이 사랑했다는 사계춘(四季春, 松柏長青茶), 그리고 우롱차(鹿野紅烏龍, 高山烏龍茶, 凍頂烏龍茶) 등이 있습니다. 각 종류의 찻잎은 저마다의 맛이 있고, 또 잎을 어떤 온도에서 얼마나 볶느냐에 따라 같은 찻잎도 그 맛이 제각각 달라집니다.
타이베이의 유적지라 할 수 있는 대도정, 다다오청(大稻埕)거리에는 무려 1890년에 설립된 유명 찻집이 한 곳 있습니다. 청나라 말기부터 상업지구로 번성했던 대도정은 일제시기를 거쳐 찻잎 생산과 거래에 호황기를 이루었습니다. 현재에는 타이베이시 다퉁취(大同區)에 대도정 옛길이 있고 그 길에는 일제시기 지었던 건축물의 느낌이 남아 있는 건물과 그 건물들 1층에는 타이완 관련 온갖 먹거리를 파는 상점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대도정 옛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찻집, 유기명차는 1890년 중국 푸젠성 안시에서 시작해 제2차 세계대전 후 현재 단수이 강변에서 멀지 않은 이곳 대도정으로 이사와 일찍이 타이완 차를 수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무려 5대째 가게를 계승해오고 있으며 찻잎 공장은 100년이 훌쩍 넘었죠. “세월은 돌고, 좋은 차는 여전하며, 부드러운 화로는 언제나 그렇듯이 따뜻하다!(歲月流轉,好茶依舊,溫柔的炭火,一如往常,溫暖!)”라고 적힌 로고는 불과 차만으로 수십년의 세월을 거쳐 이 자리를 유지해온 유기명차 특유의 역사를 말해줍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기명차의 본점 바로 옆에는 요즘 세대의 취향을 저격한 새로운 카페가 문을 열었습니다. 투명한 유리 벽과 문으로 되어 있어 내부가 환히 보이는 가게는 커피를 파는 카페인지, 술을 파는 바인지 그 정체성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디귿자 모양의 길고 넓은 바 테이블 위에는 커피를 추출하는 기계와 생맥주를 뽑아내는 듯한 기계도 보입니다. 그리고 테이블 안쪽으로 바리스타인지, 바텐더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가게 직원 두, 세명이 열심히 액체를 분배하고, 섞고, 기다리며 손님들이 마실 음료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 밖에는 보이지 않거든요.
2020년에 새로 런칭된 왕티 랩(Wangtea Lab)은 역사가 오래된 타이완 차 공장과 찻잎 문화를 기반으로 온도와 시간의 변화를 통해 새롭게 로스팅과 블랜딩을 시도하는 곳입니다. 가게의 명칭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마치 실험실처럼 차를 갖고 보다 다양한 조합을 만들고 새로운 블랜딩 기술을 시도해 오히려 차가 갖고 있는 본래의 맛을 살리고자 합니다.
테이블과 좌석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니 아이보리 톤과 목재 테이블로 장식된 가게 내부 인테리어가 왠지 모르게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이질적이거나 낯설지 않습니다. 게다가 2층 창문은 마치 미술 작품을 걸어놓은 듯, 검정색 창틀 안으로 가게 앞 공원에 우거져 있는 초록 빛깔 나뭇잎이 한눈에 들어오게 합니다. 주변 자연의 멋을 고려해 가게 내부를 설계했다고 생각될만큼 섬세하면서도 자연친화적인 내부 공간이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차의 메뉴판을 보면 마치 실험실 내부에 실험일지를 기록해 놓은 것 같습니다. 차 하면 일반적으로 연상하는 ‘뜨거운 물에 찻잎을 우린다’가 이 가게에서는 차를 즐기는 다양한 종류의 하나일 뿐입니다. 우선 따뜻한 차 말고 냉차가 있습니다. 찻잎을 찬물에 넣고 최소 8시간 이상 우리면 된다고 합니다. 온도의 변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맛의 여러 찻잎을 블랜딩한 차, 탄산을 넣어 마치 탄산수를 마시는 듯한 목넘김을 선사하는 차, 커피나 알코올 같은 다른 종류의 음료를 블랜딩한 차, 여기에 에스프레소 추출 기계로 추출한 차 등등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한 잔의 차를 만들어내는 데 이렇게 다양한 제조방식과 기술이 사용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죠. ‘당신의 차를 해부하다(decode your tea)’라는 왕티 랩의 정신이 메뉴판에서 돋보이더군요.
2층 창문 넘어로 보이는 푸른 나뭇잎과 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며 이곳 실험실에서 새롭게 창조해낸 차를 마시는 기분이 좋습니다. 어디 멀리 나가지 않아도 타이베이 시내에서 마치 자연으로 돌아가있는 듯한 기분을 선사하죠.
왕티 랩 이 가게는 말합니다. 타이완 차가 갖고 있는 순수한 초기의 아름다움과 기록된 핵심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과거의 사고에서 벗어나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해 차 산업과 차 음료를 독창적인 세계로 안내하겠다고요.
건물 기둥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유기명차 본점(something classic), 왼쪽은 유기명차와 콜라보한 새로운 차 문화 공간 왕티 랩(something modern)이다.
엔딩으로는 타이완의 또 다른 중요한 언어죠, 커자위(客家語)로 노래하는 가수 뤄원위(羅文裕)의 ‘차딩산의 바람(茶頂山個風)’을 들려드립니다. 타이완 남부 지역인 가오슝에 위치한 차딩산이 어떻길래 이렇게 이곳의 바람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었는지 궁금한데요. 랜드마크 원정대의 진행자 안우산 아나운서님께 물어봐야겠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