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타이베이를 비추는 따뜻한 햇살이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주말이면 타이베이 시민들은 공원으로 나와 따사로운 봄볕 아래에서 일광욕을 즐깁니다. 지난 골목길 시리즈 1탄에서 소개한 칭티엔제(青田街) 길의 여러 카페에는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해가 지는 평일 저녁이면 퇴근 시간에 맞춰 타이베이 곳곳에 자리한 러차오디엔(熱炒店)도 시끌벅적해집니다. 맛있고 다양한 종류의 타이완 요리들과 함께 타이완 맥주를 시원하게 즐기며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데 최적의 장소인 러차오디엔은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들러야할 타이완 감성의 식당이자 술집이죠. 타이베이에 봄이 오자 낮에는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일광욕을 하고, 밤에는 러차오디엔의 야외 테이블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즐기는 시민들이 부쩍 눈에 띕니다.
러차오디엔 하면 바로 타이완 맥주죠. 타이완을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인 ‘타이완 피지우’(台灣啤酒)에서 제조한 병맥주는 러차오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타이완 피지우에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 라벨이 있는데요, 바로 클래식(經典, 징디엔), 골드 라벨(金牌, 진파이), 18일(18天, 스바티엔)이 있습니다. 특히 18일만 유통한다는 생맥주 ‘스바티엔’은 가장 인기있는 타이완 피지우 라벨 중 하나입니다. 1998년 페이우 밴드(廢物樂團)가 부른 ‘타이완 피지우 사랑해(我愛台灣啤酒)’의 가사를 보면, 90년대 말 타이완 맥주 브랜드가 저렴하면서도 친구들과 함께 즐기기 좋은 맥주였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타이완 맥주 30원, 타이완 맥주 제일 좋아,
주말이 오면 친구와 함께 놀러 가,
늦게 집에 돌아가 그제서야 해를 보네,
낮에는 자야해서 일어날 수 없어,
저녁이 되면 친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나가서 한바탕 즐겁게 놀자하지
1990년대까지 타이완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맥주의 종류는 소량의 수입 맥주 외에는 타이완 맥주가 유일했습니다. 왜냐하면 90년대까지 정부에서 전매로 운영한 ‘타이완 피지우’ 회사가 맥주 시장을 독점해왔기 때문이죠. 그런데 최근 10년 동안 정부가 전매로 운영해오던 타이완 피지우 외에도 소규모 양조장에서 직접 만드는 수제 맥주, 즉 크래프트 비어 시장이 타이완에서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2002년 주세법개정으로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가 도입되며, 자신의 영업장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어 팔 수 있는 브루펍이 생기기 시작했는데요. 수제 맥주 시장이 본격화된 것은 2014년 이후로, 이 때 수제 맥주를 취급하는 가게들은 주로 용산 녹사평에 모여있었죠.
타이완의 수제 맥주 역사도 한국과 그 시기를 같이 합니다. 타이완도 2002년 WTO에 가입한 뒤에야 정부는 독점제를 폐지하고 민간 양조를 개방했죠. 이를 계기로 2003년 타이완 최초의 민간 양조장인 '베이타이완피지우(北台灣啤酒)'가 생기고, 2004년에는 '진서산마이(金色三麥, LE BLE D'OR)'와 '졸리(Jolly)' 등이 잇달아 설립되면서 타이완 수제 맥주의 선구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맥주 시장을 독점했던 타이완 피지우가 찍어내는 일반 상업용 맥주와 달리 맥주의 기본 원료 외에 천연 부재료, 예를 들어 과일, 꿀, 심지어 산후추와 같은 향신료를 사용해 자체적으로 제조법을 개발하는 수제 맥주는 보다 타이완 현지의 다양한 풍미를 만들어내 소비자들의 선택을 더욱 풍부하게 합니다. 타이완 곳곳에 소재한 다양한 브루어리 특유의 독특한 맥주 풍미를 만들어내면서 다양한 로컬리티의 맛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수제 맥주인 것이죠. 그렇게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한 타이완의 수제맥주는 2009년 진서산마이(金色三麥)가 타이완 브루어리 최초 국제 대회에서 수상을 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현재 타이베이 도시 문화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수제 맥주 펍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어반스케처스 타이베이>에서는 타이완 수제 맥주 브랜드 3개와 타이베이 도처에 숨어있는 펍 매장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브랜드는 장먼(掌門)입니다. 2014년 신타이베이시 시즈(汐止)에 브루어리를 설립한 장먼은 이듬해 5월 타이베이 융캉제에 첫 탭룸(Tap room), 즉 맥주 가게를 열었습니다. 지난 랜선미식회에서 손전홍 아나운서가 영국 타임아웃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멋진 거리’ 4위로 선정된 타이베이 용캉제를 소개하며 이 가게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2022.09.02 랜선미식회 “타이베이 용캉제, 英 타임아웃 선정 ‘세계에서 가장 멋진 거리’ 4위”) 장먼의 첫 탭룸인 이곳은 세 개의 테이블이 전부인 매우 협소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신 정문 앞 공간에도 소규모 테이블과 의자를 여럿 두어 야외에서도 수제 맥주를 즐길 수 있게 해두었죠. 겨울의 추운 기운이 한 풀 꺾이고 따뜻한 햇빛이 비추는 요즘 날씨라면 충분히 야외 테라스에서 수제 맥주를 즐길만 합니다. 용캉제의 첫 번째 탭룸 이후로 장먼은 신이취(信義區) 브리즈(Breeze) 건물 4층, 작년에는 화산 창의문화원구 등 소위 타이베이의 ‘핫플레이스’로 탭룸을 확대해가고 있습니다. 특히 신이취 브리즈 건물 4층에 자리한 장먼 탭룸은 야외 인공 잔디가 깔린 테라스에서 타이베이 101과 그 주변 고층 빌딩 야경을 즐기며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근사함을 더합니다.
다음은 ‘타이후(台虎)’입니다. 타이완 호랑이를 뜻하는 타이후 브루잉의 로고는 표주박 모양 안에 호랑이가 정면을 바라보며 어슬렁 어슬렁 걸어오는 모양을 해 매우 강렬합니다. 강렬한 로고만큼이나 타이후 수제 맥주를 제공하는 탭룸의 분위기 역시 심상치 않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탭룸은 바로 신이취(信義區) 신광산위에(新光三越) 백화점이 즐비한 거리 한 켠 야외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에는 테이블만 있고 의자는 없습니다. 모두 서서 마셔야 하죠. 두툼하고 널찍한 원목 테이블이 6개 정도 놓여있고, 한 테이블에는 약 6~8명 정도가 함께 서서 맥주를 즐길 수 있습니다. 오픈된 테이블 덕에 친구랑 둘이 왔다가도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선사합니다. 시먼(西門)에 위치한 또 다른 타이후 탭룸인 드리프트우드(Driftwood)의 매장 안은 볏짚의 지붕과 나무 기둥으로 세운 작은 오두막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마치 인도네시아 발리에 온 것만 같죠. 시원한 수제 맥주가 잘 어울리는 동남아 해변가 감성을 연출하는 이 곳에서 타이후를 마시는 것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브루어리는 바로 23 Public 입니다. 다안취(大安區) 푸싱난루(復興南路) 2단에 자리한 23 Public의 탭룸은 앞서 소개한 장먼이나 타이후보다는 비교적 캐주얼하고 밝은 컬러의 인테리어가 돋보입니다. 기존에 국립대만대학과 국립사범대학 사이 작은 골목길에 위치했던 23 Public은 작년 말 현재 이곳으로 이사와 부지를 확장해 보다 넓은 매장을 갖게 되었죠. 게다가 맥주를 뽑아내는 탭 옆에는 작은 LP바를 설치해놓았습니다. 현재 한 미국인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면서 타이완의 60-70년대 노래를 LP 음반으로 들려주는 게 흥미롭습니다. 이 미국인 DJ는 타이완의 오래된 LP 판을 구하기 위해 곳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수집하고 있다면서 펑페이페이(鳳飛飛)의 1978년 앨범 <一顆紅豆>, 리야팡(李雅芳)의 1974년 앨범 <愛的禮讚> 여우야(尤雅)의 1975년 비닐 <煩人的漩過> 천자치(陳家琪)의 1975년 비닐 <真言我是一朵雲> 등 타이완 70년대 여가수의 LP 앨범들을 소개합니다. 수제 맥주로 현재 타이베이를 맛보는 동시에 귀로는 과거 타이베이의 도시문화를 상상할 수 있는 즐거움을 제공합니다.
엔딩곡으로는 타이완 여성 싱어송라이터 우베이야(吳蓓雅, PiA)의 ‘시원한 맥주 한 잔(一杯冰啤酒)’을 띄워드립니다. “태양이 뜨거워 출근하기 싫고 매일 같이 땀이 흐르는 이런 일상을 잠시 벗어나 시원한 맥주 한 잔 하고 싶어”로 시작하는 이 노래 가사에 공감이 많이 가는데요. 타이베이는 지난 주부터 벌써 봄 기운이 돌고 있으니, 이제 곧 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여름이 성큼 앞으로 다가오겠죠. 이렇게 햇빛이 쨍쨍하고 조금은 무덥다고 느껴지는 날 야외 테라스가 있는 펍에서 시원한 수제 맥주 한 잔 어떨까요?
- 서승임 徐承任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