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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먼 홍러우의 2022년 마지막 밤

  • 2023.01.11
어반 스케쳐스 타이베이
2022년 12월 13일 0시 시먼 홍러우 하늘 위를 수놓은 풍선들 - 사진: Rti 한국어방송 서승임

안녕하세요. 타이베이의 도시 풍경을 생동감 넘치게 소개하는 <어반 스케처스 타이베이>의 진행자 서승임입니다. 2022년 한 해는 무사히 마무리하셨나요? 청취자분들은 2022년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내면서 새해를 맞이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지난 12월 31일 타이베이서는 검은 토끼의 해인 2023년 계묘년을 맞이하기 위해 도처에서 새해전야 행사가 열렸습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대표적인 행사는 타이베이 101 빌딩의 불꽃놀이겠죠. 타이베이 101 빌딩에서 형형색색의 화려한 전등쇼와 함께 시작한 불꽃놀이가 타이베이 동쪽 신이취(信義區)의 밤하늘을 밝혔다면, 시먼 홍러우(西門紅樓)에서는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수 백개의 풍선이 타이베이 서쪽 완화취(萬華區)의 밤하늘을 수놓았습니다. 

2022년 12월 31일 밤 11시 반이 지나자 수십 개의 풍선을 손에 쥔 사람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홍러우 노천 바와 야외 무대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저마다 한 손에 하나씩 풍선을 쥐기 시작합니다. 하늘색, 노랑색, 분홍색, 흰색 등 각기 다른 색깔의 풍선을 손에 쥔 사람들의 표정은 놀이공원에 놀러 온 어린아이 마냥 설렘과 행복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풍선을 쥐고 광장의 한 곳에 자기 자리를 찾아 서서 새해전야의 카운트다운을 기다립니다. 한 손에는 풍선을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든 사람들이 대부분 광장 도처에 자리를 잡아 갈 때 즈음, 저 멀리서 카운트다운을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은 다 함께 외칩니다. "우(五), 스(四), 산(三), 얼(二), 이(一), 신녠콰이러(新年快樂)!" 그 외에도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 "아케마시데 오메데토 고자이마스(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등 각종 언어로 사람들은 새해 인사를 건넵니다. 함께 날린 파스텔톤의 풍선이 까만 타이베이 서쪽 하늘을 장식하는 풍경이 장관이더군요. 마치 타이완의 유명 관광지 스펀의 철로에서 네 면에 소원을 적은 연등을 날리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타이베이 101광장의 불꽃놀이보다는 소박하고 간소하지만, 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참여해 함께 풍선을 날리는 데서 오는 연대감이 이곳 사람들을 한데 이어줍니다. 

2022년 마지막 밤 많은 사람들이 광장 모여 풍선을 날린 이 곳 시먼 홍러우, 일명 레드 하우스(The red house)는 한국인에게도 제법 잘 알려져 있는 타이베이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이죠. 지하철 시먼역 6번 출구에서 나오면 눈 앞에 보이는 붉은색 벽돌의 팔각형 건물이 바로 홍러우(紅樓)인데요. 홍러우를 상공에서 바라보면 팔각형 건물의 팔각루(octagon building) 뒤로 십자가 모양의 건물, 십가루(cruciform building)가 붙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홍러우는 앤티크한 건물과 창의적인 현재의 타이베이 문화가 공존하는 흥미로운 곳입니다. 일제시기 각종 학교와 병원 등을 설계한 일본인 건축가 곤도 주로(近藤十郎, 1877-1946)가 1908년 설계한 건축물인 홍러우는 당시에도 대중들이 모이는 공영 시장으로 기능했다고 합니다. 이후 국민당 정부가 들어오면서 홍러우극장이 활성화되면서 60년대에는 최신 서양영화를 상영하기도 했고요. 2016년 팔각루 보수 공사 이후 재개방한 이후로는 다양한 수공예 공방과 제품들, 연극과 음악 등 타이완 창작 예술 활동의 주무대가 되었습니다. 

작년 12월 9일에는 2022 타이베이 재즈 페스티벌의 마지막 공연을 이곳, 홍러우 십가루 건물 끝자락에 위치한 리버사이드 홀(河岸留言)에서 진행하기도 했죠. J.E.G這個爵士樂團, Temporary Groove Project 등, 국경을 초월해 글로벌한 멤버로 구성된 타이완 재즈 밴드들의 세련된 합주와 더불어 타이완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 테리 셰(Terry Hsieh, 謝明諺)의 출현과 DJ MR. GIN의 디제잉이 돋보였던 무대였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무대를 관전하는 타이베이 시민들의 다양한 감상 방법도 인상적이었는데요. 무대 맞은 편 관객석은 의자가 없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유롭게 바닥에 앉거나 서서, 혹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걸터 앉아 무대를 즐겼습니다. 맥주 한 병을 들고 서서 리듬을 타는 사람, 무대 바로 앞 첫 줄 바닥에 앉아 누구보다 악기의 사운드에 집중하는 사람, 재즈 사운드스케이프 안에 자신을 노출시켜 놓은 채 바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 등, 무대의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유롭게 재즈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나만의 감상 방법을 볼 수 있는 것은 또 하나의 흥미 거리였습니다. 이렇듯 타이베이에서 가장 전통적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곳이 바로 시먼 홍러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2년 12월 마지막 날, 홍러우의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웠습니다. 십가루 옆 작은 광장에 즐비한 노천 바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고, 모자란 테이블과 의자에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서 주변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주로 남성 동성애자인 게이들이 주 고객인 홍러우 노천 바는 동성애에 개방적인 타이베이 도시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이 날 밤만큼은 특정 젠더의 구별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즐기고 있었습니다. 밤 10시가 넘자 광장 전체를 울리는 신나는 음악 소리가 들려왔는데요. 노천 바 맞은 편 광장의 야외 무대에서 바로 드래그 퀸 쇼가 열린 것입니다. 드래그 퀸(drag queen)이란 엔터테인먼트를 목적으로 여성의 성별 기호나 성 역할을 모방하고 과장하는 의상과 화장을 한 사람을 일컫는데, 주로 남성이 여성의 옷을 입습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뮤지컬 <헤드윅>, <프리실라>, <제이미> 등을 떠올리시면 금방 연상될 겁니다. 이 날 홍러우 야외 무대에도 남성이 진한 화장과 화려한 가발, 그리고 여성적인 몸매가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라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였는데요. 특히 '타이페이 팝콘(Taipei Popcorn)'이란 별칭을 가진 드래그 퀸이 레이디 가가(Lady Gaga)가 리메이크한 엘튼 존(Elton John)의 노래, <유얼 송>(Your Song)을 립싱크하는 무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조커가 연상될 정도로 과장되게 빨간 립을 강조한 메이크업과 함께 검정색 오픈 숄더 드레스를 입은 그는 양 손에는 검정 장갑을 끼고 반지와 팔찌 등 화려한 악세서리를 착용해 '여성스러움'을 한껏 더했습니다. 절제된 몸동작에 대비되는 화려한 손동작과 가사의 내용에 따라 전개되는 다채로운 표정의 변화가 돋보입니다. 레이디 가가 특유의 바이브레이션을 표현하는 그의 연기도 참 좋았고요. 조금은 과장돼 보이는 그의 제스처가 오히려 <유얼 송>의 아름다운 가사를 돋보이게 해 새해전야의 감동을 한껏 더했습니다. 

2022년 12월 31일 시먼 홍러우의 밤을 감동적인 음악과 형형색색의 풍선으로 물들인 사람들은 국경과 젠더의 경계를 넘어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안전하고 행복하게 한 해의 마지막 밤을 무사히 보냈습니다. 엘튼 존의 <유얼 송>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죠. "당신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얼마나 삶이 아름다운지(How wonderful life is while you're in the world)"라고요. 이 가사의 내용처럼,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우리 모두의 2023년 새해가 행복하고 충만하길 기원하며, 엔딩곡으로 엘튼 존의 <유얼 송>을 보내드립니다. 

지금까지 <어반 스케처스 타이베이>의 서승임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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