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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돌리 라디오(SIDOLI RADIO 小島裡) 카페

  • 2023.01.04
어반 스케쳐스 타이베이
시돌리 라디오 카페 지하실 복도에 진열된 카세트테이프 - 사진: Rti 한국어방송 서승임

안녕하세요. 타이베이의 도시 풍경을 생동감 넘치게 소개하는 <어반 스케쳐스 타이베이>의 진행자 서승임입니다. 처음으로 청취자분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한국은 이미 영하권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올해 타이베이 날씨도 제법 춥습니다. 특히 한국과 달리 난방시설 설치가 어려운 타이완에서 뼛속까지 시린 으스스한 추위를 하루하루 이겨내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고 생각될 만큼 쌀쌀한 요즘입니다. 

오늘의 타이베이 도시 풍경을 소개하기 전, 우선 <어반 스케쳐스 타이베이>에 대해 간단히 소개드릴게요. '어반 스케쳐스'란 용어가 조금은 생소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어반 스케쳐스는 자신이 살고 있거나 여행을 간 도시, 마을을 현장에서 스케치한다는 의미로, 2007년 <시에틀 타임즈> 소속 가브리엘 캄파나리오 기자가 플리커(Flickr)라는 사이트에서 시작하면서 이미 전세계적인 운동이 된 일종의 예술활동입니다. "우리는 한번에 하나씩 그리며 세상을 보여준다!" (We show the world, one drawing at a time!) 라는 표어가 참 인상적인데요. 한국인인 제가 2017년 가을 처음 타이완 타이베이에 유학 와서 지금까지 지내면서 타이베이 도심 속 다양한 공간들을 보며 감탄하곤 했었어요. 바쁜 생활에서 조금만 시간을 내어 타이베이 골목을 이곳 저곳 산책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상의 아름다움이 제게 선물을 주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거든요. 그래서 타이베이 도심의 건물, 공간, 그리고 사람들을 제 나름의 사진과 글로 스케치 해놓곤 했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제가 그림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거든요. 그래서 Rti 한국어 프로그램을 통해 타이베이의 도시 풍경, 즉 어반 스케이프를 생동감있게 들려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타이베이 도심의 다양한 매력 속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하겠습니다. 

제가 첫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타이베이의 도시 풍경은 바로  시돌리 라디오(SIDOLI RADIO 小島裡) 카페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타이완 인디 씬에서 제법 인지도 있는 싱어송라이터 린이러(林以樂)의 초대로 시돌리 라디오(SIDOLI RADIO 小島裡) 카페를 방문했습니다. 채도가 낮고 아늑한 느낌의 월넛 우드 원목과 어두운 시안(cyan, PMS309)색의 벽면이 잘 어우러져 공간 자체로 크리스마스의 따뜻한 느낌을 가져다 주더군요. 

이 카페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디스크 자키(disk jockey), 일명 디제이가 직접 선곡한  LP판 음반을 틀어주는 공간이 별도로 있다는 겁니다. 이 날은 타이완 싱어송라이터 린이러가 그간 15년 넘게 프로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동안 자신에게 영감이나 영향을 준 음악을 두 시간에 걸쳐 카페의 청중들에게 소개했습니다. 일본 70-80년대 시티팝부터 프랑스 여가수 프랑스 갈(France Gall), 미국의 어사 키트(Eartha Kitt), 브라질의 보사노바, 1971년 일본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발매한 마빈 게이(Marvin Gaye)의 베스트 콜렉션 LP까지, 여러 시대와 나라의 음악들이 타이완 가수인 그녀를 관통해 카페 방문객들에게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디제이가 음악을 트는 작은 공간의 벽면은 각종 LP판으로 장식되어 있고, 그 외에도 카페 곳곳에는 20세기 출시된 다양한 모델의 빈티지 라디오가 놓여있었습니다. 50년대 필립스(Philips) 전축 라디오와 70년대 파나소닉(panasonic) 탁상용 라디오, 80년대 소니(Sony) 포터블 라디오가 디제이의 음악을 선명한 음질로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공간은 바로 지하실에 있었습니다. ‘머리를 조심하라’는 문구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꽤 비좁은 통로의 계단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가면 5평 남짓한 길고 좁은 복도 양옆으로 카세트테이프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타이완 출신 황핑위안(黃品源), 홍콩 출신 저우화젠(周華健)과 류더화(劉德華) 등 80-90년대 중화권을 강타했던 가수들의 테이프가 가지런히 놓여있고, 복도 가장 안쪽 끝 바닥에는 70년대 독일제 새털라이트(Satellit) 2100 단파 수신기와 도시바(Toshiba) 오렉스(Aurex) TY-AK 1 모델명의 카세트 및 CD 플레이어도 놓여있습니다.

지하실 복도를 설명하는 소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숨은 지하실은 보이지 않는 소리와 기억 저장소입니다. 헤드셋을 연결해 재생하면, 음악이 한 때 우리와 함께 했던 이야기로의 끝없는 여정을 여러분에게 선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음악은 여행입니다. 여기에서 우린 그 어떤 길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마음으로 경청하면 됩니다.” 이 지하실을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카세트테이프, 카세트테이프는 되감기의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음악 매체이죠. 80-90년대 당시 타이완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의 감정을 어루만져 주었던 카세트테이프를 재연해서, 당시를 향유했던 사람들에게 시간 여행이란 선물을 줍니다. 현장에 있던 저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아름 받은 듯한 기분이 들만큼, 마음이 충만해졌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한국에서 여동생과 함께 카세트테이프를 갖고 놀았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테이프를 사서 듣기도 하고, 더 이상 듣지 않는 테이프의 윗부분에는 스카치 테이프를 붙여 우리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하기도 했었죠. 방에 누워 라디오와 카세트테이프를 갖고 놀던 순간이 참 즐거웠던지 여전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제 몸 속 한 구석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돌리 라디오 카페 지하실에 전시된 카세트테이프와 이것에 대한 설명이 결코 낯설거나 옛날 일이라고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라디오의 수신음, 길거리에서 우연히 들었던 음악, 도시의 백색 소음 등 때론 소리가 눈으로 보거나 읽은 것보다 제법 생생하게 오래 남는 다는 생각을 청취자분들도 해보신 적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빈티지 라디오 수집가인 필립 콜린스(Philip Collins)가 쓴 <라디오 리덕스>(Radios Redux, 돌아온 라디오)라는 책의 서문에는 50년대부터 활동한 미국 라디오계 거물급 인사인 찰스 오스굿(Charles Osgood)이 이런 말을 남겼더군요.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도 몇 년 동안 일한 내가 볼 때 라디오는 TV보다 훨씬 더 시각적이야. 네가 듣는 라디오에는 매혹적인 사진들이 있고, TV의 어떤 화면보다 훨씬 더 그림같아. 색깔은 더 다채롭고, 더 생생하며 더 미묘해." 라고요. 그러면서 어디에 있든 함께 할 수 있는 라디오에서 "보자"(I'll see you on the radio)라며 글을 마칩니다. 타이베이 시돌리 라디오 카페에서 이 글을 읽은 저는 한국인의 시선으로 타이베이의 도시 풍경을 그려내는 Rti 한국어 프로그램 <어반 스케처스 타이베이>에서 타이베이 도심 곳곳을 그 어떤 시각 매체보다 생동감 넘치고 색감있게 전달해드리고 싶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청각을 통해 듣는 타이베이의 도시 풍경이 청취자 여러분들께 필요한 정보뿐만 아니라 듣는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정서와 감각이 함께 전달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타이베이 다통취(大同區) 장안시루(長安西路) 한복판에 숨어 있는 작은 공간 시돌리 라디오(SIDOLI RADIO 小島裡) 카페. 우리 모두에게 문득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을 음악과 소리로 되살려주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지하철 베이먼(北門)역 2번출구에서 나와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로 가득찬 거리를 5분만 걸어가면, 빈지티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음악공간이 여러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올 겨울 타이베이에 오신다면, 따뜻한 커피, 바삭한 크로아상과 함께 DJ가 선곡한 음악을 빈티지 라디오로 들어보시는 것 어떨까요? 

엔딩곡으로 2023년 12월 24일 시돌리 라디오 카페 일일 DJ, 타이완 싱어송라이터 린이러의 마지막 선곡이었던 80년대 일본 시티팝 싱어송라이터 히로시 사토(Hiroshi Sato)의 를 들려드리며  마칩니다.

지금까지 <어반스케쳐스 타이베이>의 서승임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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