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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학생운동’ 10주년: 시민역량의 폭발!

  • 2024.03.27
랜드마크 원정대
해바라기 학생운동 10주년을 맞아 관련 기념행사가 지난 18일 저녁 입법원 밖에서 열렸다. - 사진: CNA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해바라기 학생운동’ 10주년을 맞아 각종 기념행사가 타이완 곳곳에서 펼쳐지는 가운데, 운동 당시 학생 대표를 맡았던 린페이판(林飛帆)은 지난 18일 저녁 입법원 밖에서 열린 10주년 행사에 참여해 “해바라기 학생운동에 대해서는 모두가 다른 감정을 갖고 있지만 이 운동을 통해 타이완의 운명은 우리가 스스로 결정한다는 메시지가 전 세계에 전달되었다”며, “현재의 타이완은 세계의 타이완이고 다음 10년을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10년 전, 10년 후, 이 짧은 세월은 타이완 역사 상 매우 중요한 10년입니다. 개별 사건처럼 보이지만, 이 운동에 담아있는 모든 것이 대대로 전해내려온 타이완인의 반항 정신입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2014년 3월 일어난 해바라기 운동이 타이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 방송을 먼저 청취하시기를 권장드립니다!)

10년이 지난 후, 타이완은 해바라기 운동을 통해 국가주권과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양안서비스무역협정(海峽兩岸服務貿易協議)’을 성공적으로 막았을 뿐만 아니라, 평화적인 방식으로 3차례 정권교체, 가권지수 사상 최고치 기록, GDP 1.5배 성장, 대중국 무역의존도 하락 등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운동의 가장 중요한 요구사항인 <양안협의감독조례>의 제정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는 상황인데요. 2016년 민진당 정부 출범 후에도 새 법안 명칭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해 기존 법률을 개정하는 데만 그치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영웅으로 여겨졌던 학생 대표들이 잇달아 대중을 실망시키는 동시에, 많은 참여자들은 행정원 점거로 아직까지도 소송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치러진 총선에서 해바라기 운동으로 두각을 나타낸 대부분 후보자들도 국회 입성에 실패했습니다. 10년의 세월은 인류 역사에서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이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우선 학생 대표이었던 린페이판은 민진당에 입당한 후 지난 1월 총선에 출마하기로 했으나 민진당 부비서장 재임 기간에 당내 사무직원의 성추행 사건을 무시해 큰 비난을 받아 결국 출마를 포기했습니다. 다른 학생 대표인 천웨이팅(陳為廷)은 해바라기 운동이 발생한 지 9개월 만에 총선에 출마했지만 과거 저지른 여러 성추행 사건으로 선거에서 물러났습니다. 타이완 국민이 함께 만들어낸 영웅은 이제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 사실 이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운동 당시부터 있었는데요. 해바라기 운동이 장기화되면서 시위대에는 다양한 입장을 보인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이 중에서 권력의 중심부인 지휘센터에 반대하고 상향식 의사결정을 주장하는 ‘천민 해방 진영(賤民解放區)’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이 진영은 천민을 자칭하고 입법원 안에 있는 ‘엘리트들’을 많이 비난했습니다.

2018년 금마장(金馬獎)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의 수상작인 <우리의 청춘, 타이완에서(我們的青春,在台灣)> 중, 천웨이팅은 “국회를 점령하는 동안 입법원은 작은 정부가 되었고, 린페이판은 총통, 나는 부총통이었다”며, “대변인이 따로 있어서 우리는 함부로 대외적으로 발언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나는 좋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천민 해방 진영이 많이 두려웠고, 그 때 마이주 총통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토로했습니다. 또한 천웨이팅은 다큐멘터리 말미에 사회운동가들의 노력이 여러 요인으로 헛되게 돌어가는 무력감 때문에 무너지는 푸위(傅榆) 감독에게 “모두가 자신의 욕망을 이 운동과 운동의 대표인 우리에게 투사했고, 감독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기를 바랐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인터뷰 대상, 타이완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한 중국인 대학생 차이보이(蔡博藝)도 “이런 기대는 우리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라며, “내 인생은 감독의 목표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해바라기 운동이라는 명칭은 운동 당시 한 꽃집 주인이 희망의 상징인 해바라기를 입법원에 보낸 후 언론을 통해 운동의 상징으로 전파된 데서 유래했습니다. 또한 1970-80년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미국 반전 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른 꽃, 즉 ‘플라워 파워(flower power)’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슬로건은 비폭력적, 평화적인 시위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플라워 파워의 중국어 명칭인 ‘권력은 꽃에게 돌아간다(權力歸花兒)’처럼 권력은 결코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국민이 아래서 위로 사회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남에게 기대하기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체제를 바꾸려는 정신이야말로 시민 불복종의 핵심정신이죠. 따라서 학생 대표들이 우리의 기대에 맞게 성장했든 안 했든 타이완인으로서 계속 타이완을 지켜야 합니다.

해바라기 운동을 통해 두각을 드러낸 이른바 ‘해바라기 세대’는 10년 후 많이 변했으나 해바라기 운동의 역서적 가치는 다름없습니다. 학생운동이라고 하지만 학생에만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 훨씬 전부터 쌓아온 시민역량의 집대성입니다. 해바라기 운동이 일어나기 6년 전인 2008년, 천수볜이 전 총통의 횡령으로 민진당의 지지율이 크게 하락하면서 타이완은 마잉주 전 총통의 승리로 2번째 정권교체를 이루었습니다. 국회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국민당은 친중국 노선을 취해 베이징 당국과 적극적인 교류를 펼쳤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는 정부의 독단은 결국 많은 불안요소로 남았습니다. 2008년 천위린(陳雲林) 중국해협양안관계협회 회장이 타이완을 방문했을 때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에 반대하는 ‘야생 딸기 운동(野草莓運動)’,  2010년 먀오리현(苗栗縣)정부가 민가를 강제로 철거한 후 주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푸사건(大埔事件)’, 2012년 타이베이 ‘윈린위안(文林苑) 도시재개발 강제철거 사건’과 언론 간의 인수합병에 반대하는 반언론독점운동(反媒體壟斷運動), 2013년 군대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해 사망한 군인인 ‘홍중츄(洪仲丘事件) 사건’ 등 모두 해바라기 운동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따라서 이 운동은 하루아침에 발생한 개별 사건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렀던 불만의 폭발입니다. 

해바라기 운동 현장에는 백색테러 피해자, 야생 백합 운동 참여자 등 기성세대들이 대대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학생들은 주축으로서 입법원을 점령하고, 민간단체들은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면서 필요한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13년 9월 마잉주 전 총통과 왕진핑(王金平) 전 입법원장 간의 정쟁도 해바라기 운동의 성공에 기여했는데, 당시 왕 입법원장은 진압을 명령하지 않고 학생의 요구를 승낙하는 결정은 국민당 내부와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는 참 재미가 있죠. 야생 백합 운동 전에 국민당 내부에서도 정쟁이 일어났습니다. 총통의 입장은 다르지만 두 전쟁은 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해바라기 운동 이후 시위대와 같은 입장을 보인 민진당은 2016년 타이완의 3차례 정권교체에 성공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국민당과 민진당 이외의 제3세력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는데, 당시 정치적 경험이 없었던 커원저(柯文哲) 현 민중당 당대표, 제2야당으로 오른 바 있는 ‘시대역량(時代力量)’ 등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또한 민간에서도 지식을 보급하는 독립 언론들이 많이 나타나  타이완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다만 지난 선거에서 민중당의 등장으로 시대역량을 비롯한 작은 정당들이 모두 입법원에서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다음주는 해바라기 운동 참여자들의 후속 상황, 그리고 관련 전시회를 소개해 드리고록 하겠습니다. 엔딩곡으로 해바라기 운동 기간에 많이 불렸던 노래, 밴드 소화기(滅火器, Fire EX.)의 ‘잘 자, 타이완(晚安台灣)’을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游凱翔、吳書緯,「太陽花10週年 林飛帆:台灣命運自己決定」,中央社。
2. 「太陽花一念十年,運動記憶與回聲」,端傳媒。
3. 「10年回望:從太陽花抗爭者到『後318世代』」,報導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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