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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학생운동’ 10주년: 용감한 타이완인들!

  • 2024.03.20
랜드마크 원정대
졸속 처리된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의 통과를 막아내기 위해 타이완 대학생과 시민단체들이 지난 2014년 3월 18일부터 4월 10일까지 24일 간의 국회 점령 운동을 벌였다. - 사진: 위키백과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지난 1월 13일 치러진 중화민국 총통 선거가 집권 민진당 라이칭더(賴清德)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같은 정당이 3기, 즉 12년 연속집권에 성공한 것은 1996년 총통 직선 이후 처음입니다. 양안 정책에 관해 라이 당선인은 현황 유지를 추구하는 차이잉원 현 총통의 노선을 지속할 것이라고 선거 전후에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2014년 국회를 점령한 ‘해바라기 학생운동’으로 중단된 ‘양안서비스무역협정(海峽兩岸服務貿易協議)’도 다시 언급되어 후보자 간 공방전의 쟁점으로 떠오랐습니다. 올해는 해바라기 운동 10주년이 되는 해로, 논란이 되는 이 협정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당 협정은 중국과 타이완 간 실질상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의 후속 조약으로, 금융, 통신, 의료, 관광, 영화, 미용, 출판 등 서비스 산업의 무역을 자유화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찬성 측은 타이완의 경제 발전, 일자리 창출, 근로 환경 및 대우 개선, 중국 시장 진출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반대 측은 타이완의 홍콩화 가속, 대중국 경제의존도 제고, 인재 유출, 언론의 자유 침해 등을 주장합니다. 

ECFA가 2010년 타이완 입법원에서 통과됨에 따라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은 2013년 중국 상하이에서 체결되었습니다.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당과 야당이었던 민진당은 입법원 여야 협상을 거쳐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을 조목조목 심사하고 16차례의 추가 공청회를 개최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심사는 협상 결과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국민당이 주최한 8차례의 공청회도 일주일 만에 끝났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당과 민진당 입법위원들이 입법원 회의에서 서로 보이콧하여 정면 충돌했습니다. 2014년 3월 17일 열린 회의에서 민진당 입법위원들이 연단을 점거하자 국민당 소속 장칭충(張慶忠) 입법위원이 회의장 구석에 가서 마이크를 잡고, 행정 명령에 적용된 심사 기간 3개월을 기준으로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은 심사를 마친 것으로 간주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이 행정 명령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야의 주장이 상반됩니다. 30초 만에 졸속 처리된 협정을 막기 위해 대학생과 시민단체들은 3월 18일 저녁 입법원 밖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밤’ 집회를 열어 시위를 벌였습니다. 저녁 9시 시위자들은 경찰이 경계를 늦춘 틈을 타 입법원에 들어가 24일 간의 국회 점령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국립타이완대학교 대학원생이었던 린페이판(林飛帆), 그리고 국립칭화대학교 학생이었던 천웨이팅(陳為廷)이 학생 대표를 맡아 시위운동을 지휘하고 ’마잉주 총통 사과’, ‘장이화(江宜樺) 행정원장 퇴진’,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 입장 표명’, ‘경찰 철수’, ‘양안서비스무역협정 재심사’, ‘양안협의감독조례(兩岸協議監督條例) 제정’ 등 요구를 제시했습니다. 운동 초기에 시위대가 경찰과 계속 충돌했지만 학생들의 수적 우세로 경찰은 급습을 포기하고 대치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24시간 생방송과 SNS를 통해 타이완 전역의 학생과 시민단체들이 타이베이로 몰려와 시위에 동참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교 교수들은 교실을 입법원 밖으로 옮겨 ‘거리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지난주 소개해 드린 야생 백합 운동에서 학생 대표를 맡은 판윈(范雲) 교수도 거리에서 강의를 펼쳤습니다. 시위 기간에 입법원 안팎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시위자들은 타이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사회운동의 대표 노래 ‘메이리다오(美麗島)’를 함께 불렀습니다. 

정부는 학생이 제시한 최종 데드라인인 3월 21일에도 정면대답을 피하다가, 3월 22일에야 장이화 행정원장이 입법원 밖에서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행정원은 양안 간의 무역자유화를 위해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을 포기할 생각이 없고, 현재 입법원장의 지지를 받아 양안협상에 관한 감독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며, 젊은 세대가 나라에 관심을 가진 것은 좋지만 불법적인 국회 점거는 정부 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마잉주 전 총통도 3월 23일 기자회견에서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냐”며 학생들의 불법행위를 비난했습니다.

협상이 결렬되면서 시위도 점차 격화되었습니다. 국립칭화대학교 학생이었던 웨이양(魏揚)을 비롯한 급진파 대표들이 마잉주 총통의 입장을 듣자 3월 23일 저녁 행정원 점령 운동을 별이기로 했습니다. 결국 행정원에 들어갔으나 경찰의 진압으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미국에 있는 타이완 유학생들이 백악관에 제기한 양안서비스무역협정 체결 반대 청원은 10만 명을 돌파해 국내외의 시위 기세를 이어갔습니다. 총통부는 3월 25일 학생 대표들에게 전제 조건이 없는 협상을 제의했으나 회의 형식, 시간, 장소, 내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무산되었습니다. 

시위가 시작한 지 10일째인 3월 27일 학생 대표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입법원을 무기한 점령하기로 결정했다며, 3월 30일에 대행진을 벌일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대행진 당일, 몇 십  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 국회 점령 운동을 성원했고 다음 날 마잉주 전 총통은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의 재심사와 양안협의감독조례의 제정을 승낙했으나 협정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재차 밝혔습니다. 

시위가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왕진핑 입법원정은 4월 6일 오전 양안협의감독조례가 제정될 때까지 양안서비스무역협정 관련 회의를 열지 않겠다고 약조하며, 입법원에 있는 학생들을 찾아가 성의를 표시했습니다. 이에 학생 대표 린페이판은 4월 10일 저녁 6시 입법원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밝히자 시위대는 입법원을 복원하고 후속 행동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 대표 천웨이팅은 입법원에서 나오자마자 “정부와 국회는 회개할 뜻이 없다면, 우리는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강조했습니다. 24일 간의 국회 점령 운동은 시위 주제곡, 밴드 소화기(滅火器, Fire EX.)의 ‘섬의 여명(島嶼天光)’ 속에서 막을 내렸습니다.

해바라기 학생운동을 통해 법 절차를 무시한 입법위원의 악행, 그리고 타이완의 경제와 주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협정을 성공적으로 막았습니다. 운동이 끝난 후 타이완 사회는 생기와 활력이 가득 넘쳐 봄기운이 완연했습니다. 각종 사회운동이 활발히 펼쳐지는 동시에 해바라기 운동을 통해 두각을 나타낸 많은 신세대도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다음 주는 계속해서 해바라기 운동이 타이완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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