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지난 22일 타이완 주요 언론들은 소식통을 인용해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타이완 TSMC가 타이완 남부 자이(嘉義) 타이바오(太保)에 위치한 과학단지에서 1나노미터 웨이퍼 생산 공장을 추가 건설할 계획이라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TSMC는 확정되면 발표하겠다며 즉답을 피했지만 과학단지 주변 집값은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웡쟝량(翁章梁) 자이현(縣)장은 산업전환에 있어 자이는 이미 구체적인 성과를 냈으며 향후 몇 년 동안 타이완 서부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도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긍정의 뜻을 표했습니다.
북부는 윈린(雲林), 남부는 타이난(台南)과 접하고 있는 자이는 북회귀선이 통과하는 곳으로 연평균 기온은 매우 따뜻한 23.6도입니다. 다만 전역이 폭넓은 평원에 위치하고 기후가 건조하기 때문에 열복사 에너지를 차단하는 높은 산 또는 물기가 부재해 밤에 복사냉각(radiative cooling)이 발생하기 쉬운데요. 따라서 겨울마다 타이완 평지의 최저 기온은 항상 자이에서 관측됩니다. 앞으로 타이완의 날씨예보를 볼 기회가 있다면 자이라는 곳이 언급되었는지 들어보세요! 이번주부터 청취자 여러분과 떠나고 싶은 곳은 바로 타이완 남부지역의 첫번째 도시 자이입니다.
자이의 옛 이름은 원주민 취락에서 비롯된 ‘주뤄(諸羅)’이며 청나라 시대에 타이완 3대 민중봉기의 하나인 린솽원 사건(林爽文事件)에서 정부를 협조해 건륭제에게 ‘충의를 장려한다’는 뜻의 자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습니다. 땅이 비옥한 자이는 중부 장화(彰化), 윈린과 함께 타이완의 농업도시로 특히 굴, 조개, 거위고기 등 농수산물로 유명합니다. 또한 자이 동부에 있는 아리산(阿里山)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타이완 3대 산림대의 하나였고 현재는 일출, 차잎(高山茶 고산차), 꼬마열차 등으로 유명한 산림공원입니다.
한편 정치적 성향 측면에서 자이는 민진당을 지지하는 ‘녹색지역’으로 여겨지며, 막 끝난 대선 및 총선 결과 자이현과 자이시(市)의 입법위원은 모두 민진당 후보가 승리를 거두었고 총통선거에서도 민진당이 약 45%의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자이 한가운데에 있는 자이시는 ‘민주성지’라 불릴 만큼 민주화 이전부터 국민당을 반대하는 ‘당외운동(黨外運動)’의 거점으로 2005년까지 시장이 모두 국민당 소속이 아닌 여성이였습니다. 이는 타이완 정계에서 매우 드문 현상인데요. 타이완 첫 여성 박사, 첫 민선 시장, 첫 여성 지방 장관인 쉬스셴(許世賢)은 ‘자이 마주여신(嘉義媽祖婆)’이라 불리며 1968년 초대 자이시장으로 당선한 후 그의 딸 2명도 잇달아 2~5대 자이시장으로 당선했습니다.
타이완 첫 여성 박사, 첫 민선 시장, 첫 여성 지방 장관인 쉬스셴(許世賢) - 사진: 타이완여자
자이 지역의 반국민당 성향은 타이완 역사 상 최대의 아픔으로 남아 있는 228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1947년 2월 27일 타이베이에서 린쟝마이(林江邁)라는 부인이 허가 없이 독점품인 담배를 팔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단속되고 총신으로 머리를 얻어맞는 등 폭행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에 대한 타이완인의 불만을 불러일으켜 다음날인 2월 28일 정부와 국민 간의 대규모 무력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타이완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는 피비린내 나는 진압으로 끝났고 38년 간의 백색테러, 즉 계엄시대를 열었고 중국에서 온 국민당을 비롯한 외성인(外省人), 그리고 타이완 토박이인 본성인(本省) 간의 심각한 대립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민주화 이전 228사건은 타이완 사회의 최대 금기였고 1990년대에야 과거사 청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중 첫번째 228사건 기념비는 계엄령 해제 후 2년 만에 자이에서 세워졌습니다.
감찰위원 양량궁(楊亮功)은 228사건 보고서에서 “전체적으로 보면 타이베이를 제외한 지역 중 자이에서 발생한 충돌이 가장 심했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228사건이 일어나자 자이 시민들이 시장 관저, 시정부, 경찰서 등을 점령해 대규모 무력시위를 벌였고, 정부는 병력을 동원해 무력 진압에 나섰습니다. 충돌이 심각해지면서 시민들은 위원회를 결성해 정부와 여러 차례 교섭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3월 11일 위원회 8명 대표가 쉐이상(水上) 공항에서 체포되었다가 의원 신분을 갖고 있었던 3명, 돈으로 처형을 면한 1명을 제외한 나머지 4명 대표는 자이기차역 앞에서 공개 처형을 당했습니다. 3월말까지 자이에서는 위원회 대표 4명을 포함해 총 16명이 공개적으로 총살을 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수 호송차를 보아야, 나팔소리를 들어야 가족이 곧 처형될 사실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호송차에 있는 아버지를 눈으로 직접 본 자녀도 있었습니다. 처형된 사람 모두 정상적인 사법재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사형수로 간주되었습니다. 이중 처형된 위원회 다표의 하나인 화가 천청보(陳澄波)는 1946년 국민당에 가입해 자이시 초대 참의원(현 시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이듬해 국가폭력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천청보가 처형되었던 날은 3월 25일 타이완 미술의 날입니다. 당시 군부 측은 유가족들이 시신을 거두지 못하게 했으며 피가 말라붙고 파리가 날아다닐 때에야 거둘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처형 후 연루될까봐 들것을 빌려주는 병원이 없었기에 천청보의 아내 장졔(張捷)는 집 문짝으로 남편의 시신을 집으로 옮겼습니다. 훗날 정부의 만행을 밝힐 수 있도록 장졔는 슬픔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사진작가에게 부탁해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로 기록했습니다. 민주화 이후 이 사진은 널리 알려졌지만 천청보의 시신 밑에 한 사람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문짝을 짊어지고 있는 장졔였습니다.
228사건에서 희생된 천청보(陳澄波)의 마지막 모습, 아내 장졔는 사진 왼쪽에 있다. - 사진: 천청보기금회 홈페이지
남편을 잃어버린 장졔는 오랫동안 정부로부터 감시를 당했고 정상적인 생활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이에게 어떠한 정치 활동에도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주는 동시에 남편의 작품을 몰래 숨겼습니다. 1979년 천청보 사망 32년 만에 전시회를 열어 남편의 18,000개 작품 및 유물을 처음으로 공개했는데, 계엄령 때문에 당시 언론들은 천청보의 사망 원인을 감히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1992년 228시간 기념음악회에서 장졔의 손을 잡고 위로의 뜻을 전했습니다. 남편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장졔는 결국 이듬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졔가 없었다면 우리는 타이완 예술사에서 대체불가한 일부를 잃었을 것입니다. 현재 장졔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그림을 숨기는 여자(藏畫的女人)>가 제작 중에 있습니다.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리덩후이(李登輝, 좌) 전 총통이 1992년 228시간 기념음악회에서 장졔(우)의 손을 잡고 위로의 뜻을 전했습니다. - 사진: 천청보기금회 홈페이지
2004년 자이시립박물관이 창립된 후 천청보의 가족은 그의 작품과 유물을 기부해 박물관 3층의 천청보 코너에 진열하고 있습니다. 타이완 현대미술의 아버지 천청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으시면 서승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대만주간신보>를 청취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엔딩곡으로 자이 출신 인디밴드 어메이징쇼(美秀集團)의 노래 ‘어제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昨暝阿爸無轉來)’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노래는 228사건에서 희생된 자를 위한 곡입니다. 올해로 228사건 77주년을 맞아 타이완인으로서 결코 이 비극을 잊어서는 안되며 앞으로는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을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鍾榮峰,「1奈米廠落腳嘉義?台積電:不排除任何可能性」,中央社。
2. 「臺灣第一位女市長─許世賢(1908-1983)」,臺灣女人。
3. 陳雅玲,「許世賢!她拿了台灣史上三個第一」,光華雜誌。
4. 「藏畫的女人!她花了一生的時間等待,默默守護丈夫的油彩」,BeautiMode。
5. 吳品瑜,「陳澄波與張捷的最後一張夫妻合照:「慶祝光復」的血何時乾?」,天下評論。
6. 魏聰洲,「相片裏的秘密」,台灣放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