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지난 몇 주 동안의 납량특집을 마치고 이번주부터는 타이완 중부 지역의 두 번째 행정구역 난터우(南投)로 떠납시다! 타이완섬 한가운데 위치한 난터우는 타이완에서 유일하게 바다에 접해 있지 않은 내륙현(縣)입니다. 그래서 ‘타이완의 내지(內地)’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원래 내지는 중국에서 홍콩, 마카오, 타이완을 제외한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고, 옛날 타이완 사람들도 가끔씩 쓰던 말이었는데, 타이완 본토의식이 대두되면서 점점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에 들어 많은 타이완 연예인들이 중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해 ‘내지’라는 용어를 다시 타이완으로 들여왔고 비난을 받았죠. “타이완의 내지는 난터우다(臺灣的內地是南投)”고 외치는 사람이 많아지며 이를 모티브로 한 ‘내지 록 페스티벌(內地搖滾)’도 난터우에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난터우하면 웅장한 자연경관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타이완의 최고봉 위산(玉山, 옥산), 타이완의 가장 큰 호수 르웨탄(日月潭), 타이완의 가장 긴 강 줘수이시(濁水溪)의 발원지, 모두 난터우에 있습니다. 따라서 난터우 곳곳에 생태 농장을 볼 수 있고 이러한 농장들은 주말에 온가족이 함께 떠나기 좋은 여행지로 꼽힙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산수풍경 외에 난터우에 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많은 타이완 사람들이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난터우에는 ‘좋은 산, 좋은 물, 심심한 삶(好山好水好無聊)’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습니다. 과연 난터우는 정말 자연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일까요?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난터우의 찐 재미를 찾아봅시다!
사실 타이완의 발전에 있어 난터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았는데요. 과거 타이완섬의 최고 행정기관 타이완성정부(臺灣省政府)가 바로 난터우 중싱신촌(中興新村)에 있습니다.
1945년 일본 패배 후, 타이완섬의 최고 행정기관은 일치시기의 타이완총독부에서 타이완성행정장관공서(臺灣省行政長官公署)로 변경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타이완은 일본의 식민지에서 중화민국의 한 성이 된 거죠. 추가로 외딴섬 진먼(金門)과 마주(馬祖)는 중화민국 푸젠성(福建省)에 속합니다. 1947년 일어난 228사건에서 무력 진압을 명령한 타이완성행정장관공서는 해체되어 타이완성정부(臺灣省政府)로 개편되었습니다.
1949년 중화민국 정부가 타이완으로 이전한 후, 언젠가 중국대륙을 수복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타이완을 임시 거점으로 삼았고 일본 정부가 쓰던 건물들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중앙정부인 중화민국 정부와 지방정부인 타이완성정부 모두 타이베이에 있었는데,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타이완성정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로 했습니다. 군사적과 지리적인 조건을 고려한 후 난터우에서 중싱신촌이 지어졌습니다. ‘신촌’이라면, 과거 방송에서 타이베이 ‘화난신촌(化南新村)’, 타오위안 중전신촌(忠貞新村) 등 권촌(眷村)을 소개해 드린 바 있는데요. 당시 중화민국 정부가 중국에서 온 군인, 경찰, 교직원, 공무원,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정착시키기 위해 1950-60년대에 300여 개의 외성인(外省人) 마을 ‘권촌(眷村)’을 건설했습니다. 중싱신촌은 바로 이 중의 하나죠.
나무로 구성된 중싱신촌 그린 터널 - 사진: 중싱신촌 홈페이지
중싱신촌은 영국 도시 계획 학자 에버니저 하워드(Ebenezer Howard)가 제창한 ‘전원도시(Garden Cities)’에 기초해 설계된 마을입니다. 전원도시란 주변에 농원이나 식물이 둘러싸여 있고 주거, 산업, 농업, 자연 풍경 등이 균형을 이루는 계획도시입니다. 또한 중싱신촌의 디자인에는 국부기념관의 건축사 왕다홍(王大閎), 그랜드 호텔(圓山大飯店, 원산대반점)의 건축사 양줘성(楊卓成), 양명산(陽明山) 중산루(中山樓)의 건축사 슈저란(修澤蘭) 등 당시의 엘리트들이 참여했습니다. 사무실과 기숙사 외에, 중싱신촌에는 학교, 병원, 은행, 우체국, 도서관, 영화관, 운동장, 수영장, 골프장, 심지어 장례식장도 있는데, 수천 명의 타이완성정부 직원들이 1957년 입주한 후 이곳에서 일하고, 생활하고, 공부하고, 결혼하고, 만년까지 지냈습니다.
그러나 장제스(蔣介石) 전 중화민국 총통의 ‘반공대륙(反攻大陸)’의 꿈은 끝내 이루어지 못했습니다. 중화민국 정부는 중국대륙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타이완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아래 타이완성정부의 업무는 사실상 중앙정부와 크게 중복되어 존재의 필요성을 잃어버렸습니다. 1998년 타이완성정부의 권한이 대폭 삭감되어 중앙정부의 소속 기관이 되었고, 이는 정성(精省, 성정부를 간소화한다), 또는 동성(凍省, 성정부를 동결한다)이라 불립니다. 2018년 타이완성정부는 정식으로 해체되었고 헌법에만 존재하는 기관이 되었습니다.
과거 타이완섬 최고 행정기관인 타이완 성정부 - 사진: 중싱신촌 홈페이지
성정부의 해체와 함께 중싱신촌의 활성화는 급선무가 되었는데요. 폐허가 되지 않도록 난터우현(縣)정부가 적극적으로 예산을 쟁취하며 다양한 활성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현재 중싱신촌은 남, 중, 북 세 구역으로 나뉘어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우선 남부 구역은 타이중(台中)에 위치한 국립중싱대학교(國立中興大學)와 손잡아 대학도시의 개념을 기반으로 난터우 캠퍼스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중부 구역의 경우 현지 업체와 가게를 모집해 하루종일 먹고 놀고 구경할 수 있는 예술 마을로 만들고 있습니다. 마지막인 북부 구역은 타이완성정부의 주요 건물이 소재한 곳으로, 건축의 복원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중싱신촌에 들어가자 타이완 최고 명문대 국립타이완대학교에 비견된 야자수 대로(椰林大道)를 볼 수 있습니다. 반짝거리는 노란 꽃으로 유명한 ‘황금비(黃金雨)’ 카시아 나무도 매우 눈에 띕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그린 터널 아래 자전거를 타면서 중싱신촌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는 것은 최고의 휴식입니다.
또한 ‘리틀 백악관(小白宮)’이라 불리는 ‘중싱회당(中興會堂)’은 예전부터 중싱신촌의 핫플레이스였는데요. 하얀 벽과 붉은 지붕을 가진 바로크 건축으로, 과거는 성정부 직원의 집회장이자 영화관이었고, 현재 내부 공간은 아직 대외 개방하지 않고 대신에 건축 앞 광장에서 소풍하거나 연을 날릴 수 있습니다.
'리틀 백악관(小白宮)'이라 불리는 '중싱회당(中興會堂)' - 사진: 중싱신촌 홈페이지
아직 운영 중인 중싱 우체국(中興郵局第七支局)도 놓치면 안되는 곳인데요. 300여 장의 커다란 우표로 구성된 벽 앞에 인생샷을 찍는 것은 필수입니다. 좀 피곤하시면 옛 기숙사를 리모델링한 가게들에 들어가서 향기로운 난터우 차를 마시면서 달콤한 케이크를 드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타이완의 역사, 인문 풍경과 자연 경관을 궁금한다면, 난터우 중정신촌은 좋은 선택입니다.
300여 장의 커다란 우표로 꾸미 중싱신촌 우체국(中興郵局第七支局) - 사진: 중싱신촌 홈페이지
엔딩곡으로 난터우 출신 가수 리쳰나(李千娜)의 타이완어 노래 ‘心花開(sim-hue-khui)’를 띄어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心花開란 마음의 꽃이 활짝 폈다는 뜻이고 매우 기쁘다는 거죠. 청취자 여러분, 앞으로 기회가 되시면, 마음의 꽃이 폈을 만큼 기쁜 난터우 여행을 떠나는 게 어떠실까요? 다음주에도 계속해서 알려지지 않은 난터우의 랜드마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文化局,「中興新村文化景觀不是地方發展的絆腳石,縣府希望活化利用與歷史保存能共榮雙贏」,南投縣政府。
2. 「推動中興新村整體開發,北中南3大核心區共創新局」,FAM TALK。
3. 齊怡,「一個村子,六萬棵樹」,微笑台灣。
4. 中興新村,南投旅遊網。
5. 漫遊中興新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