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오늘은 음력 7월 15일, 중원절(中元節)입니다. 귀신의 달도 벌써 반이 지났네요. 시간이 참 빠르죠. 이날 타이완 곳곳에 조상, 신명, 그리고 한 달 동안 인간세계를 방문한 귀신들에게 성대한 제사인 ‘중원푸두(中元普渡)’를 지냅니다. 제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장보기가 필수인데요. 아이들이 드디어 과자, 음료수 등 평소 시 부모로부터 금지되는 간식들을 당당하게 살 수 있어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는 명절이기도 합니다. 중원절을 맞아 타이완 마트들이 눈에 띄는 광고와 새로운 마케팅 캠페인을 잇달아 선보여 명절 분위기를 띄웁니다.
지지난주 납량특집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효도와 깊은 관련이 있는 중원절에 조상은 물론, 음력 7월 15일 생신인 도교신 ‘지관대제(地官大帝)’와 집안을 수호하는 ’터주신(地基主 디지주)’에게도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우선 도교에는 천계를 다스리는 천관대제(天官大帝), 저승을 관장하는 지관대제(地官大帝), 바다를 지배하는 수관대제(水官大帝) 등을 ‘삼관대제(三官大帝)’라고 통칭합니다. 천관대제의 생신인 음력 1월 15일, 즉 정월대보름은 상원(上元), 지관대제의 생신은 중원, 수관대제의 생신인 음력 10월 15일은 하원(下元)입니다. 이 세 가지 명절을 합쳐서 ‘삼원절(三元節)’이라 하여 삼관대제는 ‘삼원대제(三元大帝)’라고도 합니다. 상원절에는 새해의 평안을 빌고, 중원절에는 푸두를 지내며, 하원절에는 지난 한 해 동안 저지른 잘못을 고치고 액운을 없앱니다. 특히 중원절은 지관대제가 죄를 사면하는 날로 제사를 통해 고혼을 달랩니다. 타이완에서 고혼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 ‘귀신(鬼)’ 대신 ‘좋은 형제(好兄弟 하오슝디)’라고 칭합니다.
삼관대제(三官大帝). 좌로는 수관대제(水官大帝), 천관대제(天官大帝), 지관대제(地官大帝)이다. - 사진: 가오슝 루주 마주묘(路竹天后宮)
다음으로 터주신은 한국의 가신신앙과 비슷합니다. 타이완 민간신앙에 따르면 집집마다 수호신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예전에 이 집에 살았던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제대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지금의 집주인에게 악운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타이완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터주신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중원절 뿐만 아니라 매월 음력 1일과 15일, 섣달 그믐날, 정월대보름, 청명절, 단오절, 추석, 중양절, 둥지 등 명절에 제사를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 주택 매매, 인테리어 공사 등을 할 때 먼저 터주신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은 예의입니다.
그러면 중원절 제사는 어떻게 진행되는 건가요? 푸두는 절이 주최하는 ‘공적인 푸두(公普渡)’ 혹은 ‘연합푸두(聯合普渡)’, 그리고 한 집안 또는 한 회사가 진행하는 ‘사적인 푸두(私普渡)’ 혹은 ‘가정 푸두(家普渡)’로 구분됩니다. 제사의 순서도 매우 중요한데, 오전에는 양기(陽氣)가 많아 우선 지관대제에게 제사를 지내고, 이어 조상을 모셔야 점심을 먹을 수 있습니다. 오후 1시 이후 음기가 점점 생기면서 인간과 신 사이에 위치한 터주신, 그리고 마지막인 ‘좋은 형제들’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귀신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사는 해가 지기 전에 끝나고 실외에서 혹은 집에서 밖으로 향해 진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터주신의 경우는 좀 특별합니다. 크가 작은 터주신을 배려하기 위해 낮은 제사상을 준비하고 주방에서 거실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것은 대부분입니다.
올해 타이베이 숭산(松山) 츠유궁(慈祐宮)의 '중원 우란분 행사' - 사진: 안우산
제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가장 알려진 원칙은 ‘삼생사과(三牲四果)’입니다. 삼생이란 닭, 돼지와 생선, 사과란 4가지 과일이 아니라 계절과일입니다. 삼생은 고기가 아니어도 되는데, 젤리, 과자, 빵 등으로 만든 ‘채식삼생(素三牲)’으로 대체하면 됩니다. 그리고 과일의 경우 평안과 복을 의미하는 사과, 귤, 키위, 복숭아, 망고 등은 좋은 선택이고, 귀신을 불러온다는 의미가 담긴 바나나, 자두, 배, 파인애플 등은 피해야 합니다.
빵으로 만든 채식삼생(素三牲) - 사진: 라인쇼핑
성대한 푸두 외에 중원절하면 귀신에게 길을 밝히는 ‘수등 띄우기(放水燈)’, 스포츠 경기와 같은 ‘챵구(搶孤)’, 귀신을 쫓아내는 ‘탸오중쉬(跳鍾馗)’ 등 민속 행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선 ‘수등 띄우기’는 푸두 전에 등롱을 강에 띄우고 귀신들이 제사상으로 인도하는 행사입니다. 행운을 빌기 위해 등롱 위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는 깃발을 꽂고 귀신들에게 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수등이 멀리 갈수록 수등을 띄우는 사람이 더 많은 가호를 받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유등 축제가 있죠.
전통적인 타이완 수등(水燈) - 사진: 중화민국 내정부 타이완 정교 사이트
두번째 행사 챵구는 주로 타이완 북동부 이란(宜蘭) 터우청(頭城)과 남부 핑둥(屏東) 헝춘(恆春)에서 진행되는 대표적인 중원절 행사입니다. 챵구는 소기름을 바른 기둥을 세우고 맨 위에 있는 플랫폼에 깃발과 각종 제물을 매달아 놓습니다.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이 카드탑쌓기처럼 사람 위에 사람이 올라타는 방식으로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깃발을 뽑아야 합니다. 높은 위험성 때문에 현재 챵구는 단순한 민속 행사에서 벗어나 전문성이 필요한 운동 경기로 간주됩니다. 그리고 챵구 유래에 대해 학계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하나는 푸두가 끝난 후에도 인간세계를 떠나지 않는 귀신들을 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기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이란 터우청의 챵구 경기는 매년 음력 7월 30일, 즉 귀신의 달의 마지막 날에 개최되며, 핑둥 헝춘의 경기는 매년 중원절에 거행됩니다.
타이완 북동부 이란(宜蘭) 터우청(頭城)에서 열린 '챵구(搶孤)' 경기대회 - 사진: 국가문화자산 페이지
마지막으로 '탸오중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중쉬(鍾馗)는 중국 당나라 시대의 과거(科舉) 장원(狀元)으로 외모 때문에 궁궐에서 쫓겨났고 결국 자살했습니다. 그 후 궁궐에서 이상한 일들이 잇달아 생겼는데 어느날 중쉬는 귀신의 모양으로 황제를 구했고 황제로부터 악귀를 쫓아내는 판관으로 책봉되어 신이 되었습니다. 중쉬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중쉬로 분장하여 귀신을 내쫓는 행사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지금 타이완에서 푸두가 끝난 후 고혼들을 저승으로 보내고 불길한 기운을 제거하기 위해 탸오중쉬 행사를 치릅니다. 다만 벅적벅적한 민속 행사와 다르게 중쉬는 원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라 엄숙하게 행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타이완 중원절 전통 행사 '탸오중쉬(跳鍾旭)' - 사진: 중화민국 문화부 타이완 백과사전
앞에 소개해 드린 수등 띄우기와 탸오중쉬 행사를 구경하고 싶으시면,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지룽 중원제(雞籠中元祭)’를 추천드립니다. 매년 음력 7월마다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지룽 중원제는 타이완 중부 윈린(雲林) ‘후웨이(虎尾) 중원제'와 함께 타이완의 가장 대표적인 중원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반짝이는 불빛으로 가득찬 중원 축제에서 인간이든 귀신이든 모두 ‘형제’가 되어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엔딩곡으로 한국 걸 그룹 티아라(T-ARA)의 ‘Bo Peep Bo Peep(보핍보핍)’를 리메이크한 타이완어 노래 ‘뽀삐(保庇)’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가수는 왕차이화(王彩樺)입니다. 타이완어 뽀삐란 신명의 보우, 가호, 보살핌을 의미하며 발음이 원곡 제목과 매우 유사합니다. 타이완어에는 ‘신에게 절하면 가호를 받을 수 있다(有拜有保庇)’는 속담이 있는데, 이 말과 뽀삐라는 노래는 타이완 사람의 신앙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三官大帝,全國宗教資訊網。
2. 「中元普渡怎麼拜?中元普渡供品準備、禁忌習俗總整理,拜拜禱詞這句不能說」,104職場力。
3. 「三牲四果是什麼?如何準備?挑選適合拜拜水果種類、數量有訣竅,注意事項一次介紹」,未來生活實驗室。
4. 跳鍾馗,國家文化資產網。
5. 「頭城與恆春都有搶孤,3張圖說明那些相同、那些不同」,關鍵評論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