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운명을 믿으세요? 옛날 타이완 사람들은 인연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고 믿었습니다. 인연을 관장하는 신이 궁합에 따라 미혼 남녀를 한 쌍 한 쌍으로 맞춘다고 합니다. 서양에 큐피드가 있다면, 타이완에는 월하노인(月老)이 있습니다. 개구쟁이 큐피드와 다르게, 월하노인은 흰머리에 흰수염, 지혜롭고 자상한 노인으로 형상화되었습니다. 왼손에는 사람들의 인연을 기록하는 명부 ‘인연부(姻緣簿)’를 들고,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짚습니다. 매년 음력 7월 7일, 즉 칠석날에 직녀를 비롯한 신 ‘치싱냥냥(七星娘娘)’이 성년인 미혼 남녀의 명부를 정리해 월하노인께 보고합니다. 월하노인이 명부를 받은 후 짝을 지어서 신력이 있는 붉은 실로 남자와 여자의 발을 묶고 인연을 맺습니다.
월하노인의 전설은 중국 당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요. 리푸옌(李復言)의 전기(傳奇)소설《속현괴록(續玄怪錄)》에 따르면, 웨이구(韋固)라는 사람이 여행 중에 민박에서 아무것도 없는 빈 책을 읽는 한 노인을 만났는데 노인에게 물었더니 이 책은 사람들의 인연을 기록하는 명부라고 했습니다. 노인은 14년 후 웨이구는 민박 옆에서 야채를 파는 부인의 딸과 결혼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노인의 말을 믿지 않은 웨이구는 사람을 보내 여자아이를 몰래 죽였습니다. 14년 후 웨이구가 결혼하자 아내 얼굴에 있는 흉터를 발견했고, 물어본 결과 아내는 바로 14년 전 자기가 죽이려던 그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월하노인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사랑의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중국 신화에서 달은 음(陰)의 상징으로 여성, 출산 등과 연결되는데, 샤오밍쥔(蕭名君)은 석사논문에서 “월하노인이 남성 어르신으로 등장한 것은 작가의 의도적인 설정”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즉, 노인을 존경하고 남성 중심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월하노인에 대한 신앙은 17세기 중국 한족(漢人)의 타이완 이주와 함께 타이완으로 들어왔으나 타이완에서 월하노인에 관한 기록은 1933년에 되어야 처음으로 언급되었습니다. 민속학자 운중한(溫宗翰)에 따르면, 월하노인을 모시는 첫 사찰은 타이완 중부 난터우(南投) 르웨탄(日月潭)에 있습니다. 1980년 난터우현정부(縣政府)가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중국 항저우(杭州) 시후(西湖)의 경험을 참고하여 르웨탄 가운데 있는 라루섬(拉魯島)에서 월하노인의 신상을 설치했고 커플 30쌍이 참여한 합동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 후 선남선녀들이 운명의 반쪽을 찾으려고 라루섬으로 많이 찾아갔습니다. 다만 1999년에 일어난 921대지과 르웨탄 원주민 사오족(邵族)의 쟁취 때문에 월하노인 신상은 사오족의 성지인 라루섬에서 르웨탄 북부에 있는 사찰 룽펑궁(龍鳳宮)으로 옮겨졌습니다. 난터우의 성공 사례로 인해 타이완 곳곳에 월하노인을 모시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월하노인의 전설은 유래가 오래되었지만, 타이완에서 이와 관련된 제사는 최근 십 몇 년에 들어 생긴 겁니다.
1999년 921대지진으로 무너진 타이완 첫 월하노인 신상 - 사진: 타이완 문화 메모리 뱅크
921지진 후 르웨탄 북부에 있는 사찰 룽펑궁(龍鳳宮)으로 옮겨진 타이완 첫 월하노인 신상 - 사진: 르웨탄 홈페이지
그런데 사람들이 왜 갑자기 월하노인을 믿고 신앙하게 된 건가요? 옛날 사회에서 부모의 뜻을 따라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매우 보편적이었는데, 근대에 접어들며 자유연애는 점점 주류가 되었습니다. 또한 교육 수준 향상, 성평등 인식 대두, 혼인과 출산에 대한 관념 변화 등으로 결혼은 더 이상 대를 잇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감정에 기초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혼인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1980년대의 타이완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어냈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당시 타이완의 방송계에서 짝짓기 예능이 쏟아지면서 연애와 혼인의 형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나갔습니다. 결혼이 급선무로 간주되지 않은 가운데, 사람들의 초혼 연령이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만으로 올바른 인연을 찾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종교 또는 신앙의 힘에 의지하기가 쉽죠. 월하노인은 바로 이러한 배경 아래 사람의 멘터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리나 2000년대 이후 인터넷의 발달로 월하노인께 절한 후 팽생을 맡길 만한 사람을 만났다는 후기와 경험담이 공유되면서 월하노인을 모시는 것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이 되었습니다. 특히 빠르고 쉬운 연애에 익숙한 MZ세대에겐 전통 신앙을 통해 운명에 기초한 연애를 시작한 것은 매우 신선하고 낭만적인 방식입니다. 따라서 일반 사찰과 달리 월하노인을 모시는 절에 가면 20-30대의 젊은이가 많습니다.
그럼 이어서 타이완의 대표적인 월하노인 사찰과 절하는 방식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부분 사찰에서 월하노인은 주요의 신이 아닌 주신(主神)에 부속된 신입니다. 따라서 월하노인께 절하기 전에 반드시 주신께 인사를 드려야 합니다. 타이베이에 위치한 룽산스(龍山寺 용산사)와 샤하이 청황묘(霞海城隍廟 성황묘)를 예로 들자면, 전자의 주신은 관세음보살이고 후자의 주신은 성곽의 수호신이자 저승의 판관 성황신(城隍)입니다. 절하는 방법과 순서는 사찰마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과일, 과자, 사탕 등 제물을 미리 준비해야 하고, 절할 때 월하노인께 간단하게 자기소개한 다음에 원하는 대상의 조건을 자세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월하노인의 허락을 받으면 붉은 선을 얻을 수도 있는데요. 붉은 선을 받으면 가지고 다녀도 되고 베개 아래 놓어도 됩니다. 만약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면 같은 사찰에 가서 월하노인께 다시 절하고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합니다. 이 때 사찰측의 지시에 따라 붉은 선을 태우면 됩니다. 추가로 싱글이 아니어도 사랑에 관한 문제가 있으면 누구나 월하노인께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타이베이 다다오청(大稻埕)에 있는 샤하이 청황묘(霞海城隍廟 성황묘) - 사진: 교통부 관광국
타이베이 완화(萬華)에 있는 룽산스와 다다오청(大稻埕)에 있는 샤하이 청황묘는 초보자의 좋은 선택입니다. 타이베이 시내에 위치해 도착하기 쉬운 것 외에 체계적인 절차와 안내가 잘 되어 있어 진입장벽이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또한 샤하이 청황묘에서는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직접 타이완에 오지 않아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월하노인마다 각각 취향이 달라서 우선 사찰측과 절차를 확인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정월 대보름날, 칠석, 그리고 월하노인의 생신인 음력 8월 15일에 절하면 소망성취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합니다. 기회가 있으시면 타이완에 오셔서 월하노인의 신력을 느껴보세요.
엔딩곡으로 월하노인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로맨스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月老)>의 OST ‘만약(如果可以)’을 띄어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의 흥행으로 해당 노래는 한국어 버전과 일본어 버전도 출시했습니다. 가수 웨이라안은 한국어를 전혀 못하지만 이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그럼 청취자 여러분, 모두 좋은 인연을 맺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蕭名君,〈台灣月老信仰之研究〉。
2. 龍鳳宮,日月潭觀光旅遊網。
3. 溫宗翰,「幽冥之人定婚配?你所不知道的臺灣月老信仰」,民俗亂彈。
4. 你的在線月老,霞海城隍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