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타이베이역에서 이란역으로 가려면 몇 가지 대중교통수단이 있는데, 하나는 지난 주 소개해 드렸던 쉐산 터널(雪山隧道)을 경유하는 고속버스, 다른 하나는 지룽과 신베이시를 경유하는 기차입니다. 고속버스를 선택한 경우 출퇴근 시간, 금요일과 일요일 등 러시아워를 피하면 1시간 이내 도착할 수 있고, 기차를 선택한 경우 약 1시간 반 정도 걸리지만 타이완 동북부의 해안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재미가 있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이 선택한 코스는 기차여행입니다. 이란역은 타이완 기차역 중 아주 특별한 존재인데요. 이란역에서 나가자마자 기차역 위에 머리를 내민 기린, 하늘을 나는 기차, 그리고 토끼 모양의 풀숲 앞에 버스를 기다리는 소년소녀 등 대향예술장치를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토끼굴에 떨어진 앨리스처럼 여객들은 순간에 동화속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여기는 이란 출신인 유명 그림책 작가 지미 리아오(幾米 Jimmy Liao, 본명 랴오푸빈 廖福彬)의 작품으로 꾸며진 원더랜드, 지미공원입니다.
'숲의 기차역' 이란역 - 사진: 지미 개인 페이지
20여 년 동안 70여 종의 출판물, 180여 권의 외국어 작품을 출판한 지미는 중화권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까지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타이완 동화 작가입니다. 타이완, 홍콩, 벨기에, 스페인, 스웨덴, 포르투갈 등 나라의 중요한 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지미란 이름은 영어 이름인 지미(Jimmy)에 자신이 좋아하는 한자를 연결시켜 만들어진 필명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취지 아래 성인 독자를 겨냥해 현실적인 스토리와 환상적인 장면을 결합하고 지미만의 환상세계를 구축합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그림을 통해 어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시적인 표현으로 그림책을 또 다른 문학의 장르로 만들어 냅니다.
광고회사에서 10여 년 동안 일해온 지미는 병에 걸린 후 집에서 휴양하면서 일러스트와 그림책을 창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세가 호전됨에 따라 1998년부터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向左走,向右邊走)》,《지하철(地下鐵)》, 《달과 소년(月亮忘記了)》, 《별이 빛나는 밤(星空)》등 그림책을 출판해 점차 회자가 됩니다. 지미의 작품들은 동화책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영화, 연극, 뮤지컬, 드라마, 애니메이션, 전시회, 대형예술장치 등으로 각색되어 다양한 형식으로 더욱 널리 알려졌습니다. 지미공원은 바로 지미의 대표작들을 현실로 옮기는 마법의 공간입니다.
2013년 고향 이란에 보답하고 폐 공간을 활용해 관광산업을 촉진시킨다는 의미에서 지미는 이란역 앞 광장과 폐기된 철도국 기숙사를 개조해 타이완 첫 번째 지미공원을 설립했습니다. 지미공원에는 주로 세 개의 공간이 있는데, 우선은 《별이 빛나는 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숲의 기차역(森林火車站)’과 ‘별밤의 기차(星空火車)’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은 외로운 소녀와 신비스러운 소년의 만남을 그려내며 이 세상에 나만 홀로 있다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만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는 성장 이야기를 다룹니다. 소녀와 소년은 서로를 지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마음의 탈출구입니다. 두 사람은 어릴 적 소녀가 살았던 할아버지의 옛집을 구하려고 모험을 떠났습니다. 책에서 등장한 숲, 기차, 별이 빛나는 밤 모두 이란역에 재현되고 백에 있는 기린은 마치 숲의 관리원처럼 여행 중인 소녀와 소년, 그리고 이란을 오가는 여객들을 수호합니다.
지미광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별이 빛나는 밤》의 주인공들 - 사진: 지미 개인 페이지
다음에 ‘별밤의 기차’가 소재하는 위치는 이란역 맞은편의 ‘띠위띠위당아(tiu tiu tâng 丟丟噹, 丟丟銅仔) 숲의 광장'입니다. 띠위띠위당아란 이란의 타이완어 동요에서 유래하고 기차가 터널을 지나갈 때 터널 위에서 떨어진 물방울의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입니다. 해당 광장은 이란으로 이주한 건축사 황성위안(黃聲遠)의 작품으로 옛 이란의 명칭 쥬츙(九芎)성을 상징하는 쥬츙 나무, 즉 남방배롱나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세기 청나라 정부는 이란을 관리하기 위해 남방배롱나무를 성벽으로 하고 ‘이란성’을 구축했습니다. 황성위안은 이란의 역사와 지미의 작품을 연결시켜 《별이 빛나는 밤》의 주인공들이 남방배롱나무 사이에서 하늘을 나는 기차를 타고 두 사람만의 여행을 떠나는 장면을 재현합니다. 매일 오후 5시에 불을 켜면 지미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져 수많은 독자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가져옵니다.
여러 태풍과 새의 둥지로 인해 2022년 별밤의 기차는 개축공사를 실시해 지미의 다른 작품에 등장한 캐릭터의 예술장치가 추가되었습니다. 《숲속의 비밀(森林裡的秘密)》의 토끼는 트럼펫을 불면서 기차를 맞이하고 있고, 《미소짓는 물고기(微笑的魚)》에서 작은 어항을 안고 있는 남자는 “집에 데려다 줄게”라고 중어걸리며, 《지하철(地下鐵)》의 눈이 안 보이는 주인공은 대합실에서 기차를 잘 못 타거나 역을 잘 못 내리는 여객을 동반합니다. 지미의 유니버스는 띠위띠위당아 광장에 펼쳐집니다. 이제 소녀와 소년은 더 이상 외롭지 않은 거죠.
2022년 별밤의 가치 공사 후 추가된 토끼 캐릭터 - 사진: 지미 개인 페이지
이어서 이란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지미광장이 보일 수 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지하철》과《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向左走,向右走)》 등 작품에 기초해 만들어진 지미광장에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소녀와 소년, 소년이 좋아하는 수족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여객들의 짐들, 그리고 지미 작품 중 아주 대표적인 장면, 서로 엇갈리는 왼쪽으로 가는 여자와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가 있습니다.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는 어른들의 사랑을 묘사하는 지미의 첫 번째 그림책이자 그를 오늘의 위치에 있게 만들어준 매우 중요한 작품인데요. 1999년 출판 후 책 제목은 사랑의 대명사가 되어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형식으로 각색되며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해당 작품은 도시에서 옆집에 살지만 습관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가서 영영 만나지 못하는 남녀의 사랑을 그려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우연히 공원에서 만나 전화번호를 적어 서로에게 주었으나 큰 비로 인해 종이가 젖어 결국 연락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책 마지막에 각각 여행을 떠나는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장면이 나오고 독자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살아 있는 한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죠.
지미의 대표작《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向左走,向右走)》 - 사진: 지미 개인 페이지
지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중국 시인 쉬즈모(徐志摩)의 ‘우연(偶然)’이라는 시를 항상 떠올리는데요.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우연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죠. 결말이 좋든 나쁘든, 그 순간은 언제나 찬란하게 빛나는 거죠. 지금 이 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쉬즈모(徐志摩) - 우연(偶然) [번역 출처]
나는 하늘의 한 조각 구름
이따금 그대의 일렁이는 마음에 모습이 비치더라도
놀랄 필요 없어요.
기뻐할 필요는 더더욱 없고요.
순식간에 흔전도 없이 사라질 테니까요.
그대와 나는 어두운 밤바다 위에서 만났지만,
그대에게는 그대의,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으니,
그대가 나를 기억해도 상관없지만,
가장 좋은 건 잊어버리는 거예요.
우리가 만났을 때 서로 나누었던 그 눈부셨던 빛조차도!
我是天空裏的一片雲,
偶爾投影在你的波心——
你不必訝異,
更無須歡喜——
在轉瞬間消滅了蹤影。
你我相逢在黑夜的海上,
你有你的,我有我的,方向;
你記得也好,
最好你忘掉,
在這交會時互放的光亮!
이란역 앞 광장에 이어 지미의 작품들은 이란 시민광장, 이란 자오시(礁溪), 타이베이 신이구(信義區), 신베이시(新北市) 단수이(淡水), 비탄(碧潭), 심지어 일본, 중국 상하이까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란에 가지 못해도 여러 곳에서 지미 작품의 대형예술장치를 볼 수 있습니다.
타이베이 신이구(信義區)에 있는 지미 버스 - 사진: 지미 개인 페이지
엔딩곡으로 동명영화로 만들어진 《별이 빛나는 밤》의 동명OST를 띄어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가수는 타이완 가장 대표적인 록 밴드 메이데이(Mayday, 우웨톈 五月天)입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