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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자에서 매국노로… 이란(宜蘭) 사윈의 종(莎韻之鐘)

  • 2023.05.10
랜드마크 원정대
타이야족 소녀 사윈(莎韻)을 기념하기 위한 이란(宜蘭) 사윈의 종(莎韻之鐘) - 사진: 위키백관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이번주부터 함께 떠날 곳은 타이베이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이란(宜蘭)입니다. 2006년 타이베이와 이란을 연결하는 베이이 고속공로(北宜高速公路)의 준공 덕분에 타이완 동북부에 위치한 이란은 접근성 문제를 대폭적으로 개선했습니다. 디스커버리 채널(Discovery Channel)은 베이이 고속공로 중 가정 핵심적인 공사인 쉐산 터널(雪山隧道)을 ‘세계 가장 어려운 건설 공사의 하나’로 평가한 바가 있습니다. 이란의 발전에 따라 주말마다 왕복 4차로인 쉐산 터널은 항상 차가 막히는 등 심한 교통체증이 발생하는데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타이완 정부는 타이베이 난강(南港)까지만 운행하는 타이완고속철도(Taiwan High Speed Rail, THSR)를 이란으로 연정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빠르면 2025년에 착공하여 2030년에 완공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산을 끼고 태평양에 면하는 이란은 아름다운 경치와 여유로운 분위기로 유명하며 ‘이란은 타이베이의 뒷마당’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타이베이 사람이 주말에 많이 찾아가는 곳입니다. 다만 이러한 타이베이 본위의 사고방식, 중국어로 천룡인(天龍人) 사상은 이란인의 큰 불만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추가로 천룡인이라는 표현은 일본 만화 《원피스(One Piece)》에서 유래하며 귀족처럼 지방사람을 무시하는 타이베이인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타이베이는 천룡국(天龍國), 집값이 가장 비싼 타이베이 행정구역은 천룡구(天龍區) 등 표현도 있습니다.  2021년 이란 현지 마트인 시후훼이(喜互惠)가 지역 간의 분쟁을 활용해 “너네 집이야말로 뒷마당!” 등 창의적인 문구가 적혀있는 9가지 쇼핑백을 선보였고 수도 본위주의를 반격하면서 이란만의 특색을 살렸습니다. 

넓은 평원부터 높은 산꼭대기까지 다양한 천연경관을 갖고 있는 이란은 등산객의 핫플레이스이기도 합니다. 2011년 등산에 열중하는 타이완 은행가 린커샤오(林克孝)가 이란 원주민 타이야족(泰雅族)의 옛 등산로를 찾다가 실수로 절벽에서 떨여져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2000년대부터 타이야족의 잊혀진 이야기 ‘사윈의 종(莎韻之鐘)’을 되찾기 위해 타이야족 사람과 함께 이란 난아오(南澳) 산간지역을 여러 번 탐사했습니다. 애쓴 노력 끝에 그는 2009년에 타이야족 소녀 사윈이 걸었던 ‘사윈의 길(莎韻之路)’의 노선을 기록한 에세이집 《길을 찾다(找路:月光.沙韻.Klesan)》를 출판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랜드마크는 바로 린커샤오가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윈의 종(莎韻之鐘)입니다.


타이야족 소녀 사윈이 걸었던 ‘사윈의 길(莎韻之路)’의 노선을 기록한 에세이집 《길을 찾다(找路:月光.沙韻.Klesan)》 - 사진: 타이완원주민센터

린커샤오가 사윈의 종에 대해 관심이 생기는 이유는 ‘달빛 세레나데(月光小夜曲)’라는 중국어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해당 노래의 원곡은 2차 세계 대전 전후 일본의 대표적인 가수인 와타나베 하마코(渡辺 はま子)가 부른 ‘사윈의 종’입니다.  그럼 사윈은 대체 누구일까요? 한 마디로 하면 사윈은 타이완 일치시기 때 산 속에 폭우를 맞아 돌아가신 타이야족 소녀입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난 후 타이완에 주재했던 일본 경찰들이 전쟁 최전선으로 징집되었는데, 사윈은 그 중의 한 일본경찰을 도와 짐을 옮기다가 세찬 시냇물에 빠져 실종되었습니다. 수사 결과 일본경찰의 짐만 찾았고 소녀는 행방불명이었습니다. 일치시기 가장 대표적인 신문 《타이완일일신보(臺灣日日新報)》가 이에 대해 보도한 후 소녀가 소속했던 여성청년단체는 소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소녀를 애국자로 포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단순한 사고는 애국 행위로 부상해 당시 타이완 총독부의 주목까지 끌었습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의 폭발과 함께 일본 정부는 강제적인 동화 정책인 황민화 정책(皇民化政策)을 실시했습니다. 소녀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애국 영웅으로서 영화, 노래, 연극, 책, 심지어 교과서까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소녀를 표창할 수 있도록 하세가와 기요시(長谷川清) 타이완 총독은 총독부에서 소녀의 가족과 여성청년단체를 접견했고 소녀의 고향에서 사윈의 종과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사윈의 종은 일본과 타이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어 타이완 완주민을 성공적으로 관리하는 상징 및 애국자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43년 개봉한 <사윈의 종> 영화. 오른쪽은 주인공 사윈 역을 맡은 배우 리샹란(李香蘭, 야마구치 요시코, 우) - 사진: 위키백과

그러나 일본 패배 후 소녀는 하루아침에 장난처럼 애국자에서 매국노로 추락했습니다. 사윈의 종과 기념비는 파괴되었으며 1943년 개봉한 영화 <사윈의 종>도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영화에서 소녀와 일본경찰은 연인 사이로 묘사되었는데 소녀의 가족과 타이야족 장로에 따르면 당시 일본인이 원주민에게 물자 운송 등 일을 시키는 것은 매우 보편적이었고 동행자도 꽤 여러 명이 있었는데, 사윈은 일본경찰을 아예 몰랐다고 지적했습니다. 한창 칭송받았던 소녀의 이야기에 대해 “일본정부가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소녀의 이야기는 점차 잊혀졌습니다.

1980년 ‘사윈의 종’을 바탕으로 한 중국어 노래 ‘달빛 세레나데’가 발표되었습니다. 1992년 한 일본학생이 타이완에 와서 이 노래를 듣고 일본 언론에게 관련글을 투고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일본 언론들이 이 노래의 정보를 조사했던 과정에서 원곡을 찾았습니다. 그 후 일본 공영방송국 NHK가 사윈의 이야기를 취재하려고 타이완에 왔는데 십여 년을 거쳐 소녀의 이야기는 다시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일본 언론의 주목에 따라 타이완 정부는 1997년 이란 난아오에서 ‘사윈의 종 기념공원’을 설립해 새로운 종을 구축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타이완 문화단체 및 원주민 단체들이 사윈의 이야기를 주제로 각양각색의 이벤트를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학술계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2007년 국립타이베이교육대학교(國立臺北教育大學)가 일본, 한국, 중국 학자와 타이야족 사람을 초청해 난아오 중학교에서 ‘사윈의 종 식민지문화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했고 학술적, 문화적, 교육적 등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진상을 밝히며 국제교류를 통해 일본 식민지문화를 탐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 분야에서도 빛나는 작품들이 잇달아 등장했습니다. 우선은 2007년 개봉해 타이완섬 한 바퀴를 도는 자전거 여행 풍조를 가져왔던 영화 <연습곡(練習曲)>입니다. 해당 영화에서 주인공이 난아오를 지나갔을 때 유객들이 사윈의 종 기념공원을 방문한 장면을 보고 안내원의 설명을 통해 이 오래된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타이완 최초로 금마장(金馬獎)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원주민 여성 감독 천졔야오(陳潔瑤)의 첫 번째 장편영화 <달라진 달빛(不一樣的月光)>입니다. 제목부터 노래 ‘달빛 세레나데’를 암시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 영화는 유머스러운 기법으로 사윈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타이야족의 현재와 과거를 대조했습니다. 이란 난아오 타이야족 출신인 천졔야오 감독은 타이야족의 관점에서 타이야족만의 영화를 선보였고 높은 평가를 얻었습니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 사윈은 단지 이팔청춘을 즐기는 평범한 타이야족 소녀였습니다. 그러나 생을 마감한 후 정치적, 심지어 신화적으로 이용되어 자신과 전혀 상관하지 않는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애국자와 매국노 사이에 왔다갔다했던 사윈은 이제 난아오에서 편히 쉴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확답이 없지만, 적어도 타이완 사람의 마음속에 소녀의 이야기는 오래오래 남아 있을 겁니다.

엔딩곡으로 오늘 방송에서 여러 번 언급한 노래 ‘달빛 세레나데’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Tony的自然人文旅記,「宜蘭南澳.莎韻之鐘」。
2. 鄧鴻源,「關於《莎韻之鐘》的傳奇故事」,風傳媒。
3. 游明金,「莎韻之鐘研討 重返南澳歷史現場」,自由時報。
4. 張亦絢,「有人掉下去了:談《不一樣的月光:尋找沙韻》」,報導者。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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