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228 평화의 날 시리즈를 마치고 이번 주부터 타이베이시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신베이시(新北市)를 주제로 다양한 랜드마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인구가 가장 많은 타이완 도시인 신베이시는 원래 타이베이현(台北縣)이라 불렸고 2010년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신베이시로 개청되었습니다. 한국분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이른바 예스진지, 즉 예류(野柳), 스펀(十份), 진과스(金瓜石), 지우펀(九份) 등 여행지 모두 신베이시에 위치합니다.
수도인 만큼 타이에이는 일자리가 많은 반면에 먹고살기가 어렵고 물가, 집값이 매우 비싸 신베이시에 거주하고 매일 타이베이시로 통근, 통학하는 경우가 예사입니다.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경기도와 비슷한 곳이죠. 신베이시 시청인 반차오(板橋)는 2011년부터 매년 12월부터 1월까지 개최하는 크르스마스 랜드로 큰 인파를 끌어모으며 예술, 문화, 교육 등 분야에서 신베이시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랜드마크는 바로 타이완 첫 번째 다큐멘터리 전시관, 즉 다큐멘터리를 주제로 전시 및 방영 행사를 거행하는 푸종15(府中15) 전시 센터입니다.
스토리가 중심인 영화에 비해 다큐멘터리는 흥행가치나 제작규모 면에서 항상 약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방송학과를 촐업한 저도 대학교 수업을 통해 다큐멘터리를 배우는 게 아니라 교외 캠페인에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4년 동안 관련 수업이 기껏해야 3교시밖에 없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발전을 추진하는 취지에서 2011년 신베이시의 승격을 따라 신베이시 문화국은 반차오시 문화교육관이었던 푸종15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푸종15란 명칭은 주소 ‘푸종로 15호(府中路15號) ’에서 유래합니다.
2011년 타이완 가장 권위있는 영화시상식 금마장(金馬獎) 다큐멘터리 부문의 심사를 맡은 한국 감독 이창동도 푸종15의 성립을 긍정하며 더 많은 타이완 다큐멘터리 인재를 육성하기를 바란다고 언급했습니다. 2018년 푸종15의 오픈 7주년을 맞아 신베이시 시장은 동양인으로 최초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타이완 감독 리안(李安)을 멘토로 요청해 그와 함께 타이완 다큐멘터리 발전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다큐멘터리의 상시 방영, 좌담회, 원크숍 뿐만 아니라, 푸종15는 특정 집단을 위한 ‘유모차 영화관’, ‘연장자 영화관’, ‘시작장애인 영화관’ 등’ 특별 자리를 마련해 모든 사람이 즐겁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2012년 4월부터 애니메이션 방영 및 전시가 시작되고 푸종15는 타이완에서 비교적 주목을 받지 못하는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산업의 기지가 되려고 예술문화 활동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신베이시는 ‘다큐멘터리 우호 도시(紀錄片友善城市)’를 구축하기 위해 2011년부터 ‘신베이시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해마다 개최하고 경기를 통해 입선된 다큐멘터리 감독과 관련 학과 학생에게 촬영 자금, 자원 및 노출 플랫폼을 제공합니다. 2022년 타이베이 영화제 대상, 다큐멘터리상, 편집상과 관객투표인기상을 수상한 <신과 인간의 집(神人之家)>은 바로 신베이시 다큐멘터리 영화제의 보조금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입니다.
<신과 인간의 집> 좌담회에서 감독 루잉량(盧盈良)은 촬영과정을 언급했다. -사진: 안우산
루잉량(盧盈良) 감독은 도박에 중독된 아버지, 평생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형,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머니 때문에 십여 년 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어머니가 루잉량에게 전화를 걸고 스스로와 아버지의 생전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는데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요청으로 루잉량은 얘상치 못하게 여러 해 만에 다시 고향에 돌아갔고 형 아즈(阿志)를 주인공으로 <아즈>라는 단편 다큐멘터리를 찍었으며 결국 신베이시의 보조금을 얻었습니다.
아즈는 어렸을 때부터 신과 소통할 수 있어 동네 사람이 어려움을 겪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항상 아즈를 찾습니다. 성실하게 살아온 아즈는 적극적으로 남을 도와주지만 평생 뜻을 얻지 못했습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오랜 세월이 흘러가도 집안 사정은 하나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집은 저주받은 것 같다”고 생각한 루잉량은 자신이 한동안 부재하던 집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찾기 위해 카메라로 가족을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농부인 아즈가 무엇을 심든 늘 실패로 끝났습니다. 영화 중 아즈가 심은 토마토가 태풍으로 모두 썩게 되어 아즈의 아들은 펑펑 울면서 아즈한테 ‘왜 아빠가 신한테 안 물어보냐’고 질문하자 아즈의 얼굴에는 일순간 한 가닥 쓴웃음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신의 대변인으로 마을의 구세주로 여겨지는 아즈조차 신이 존재하는지 확실하지 않겠죠. 저는 좌담회에서 루 감독에게 촬영이 끝난 후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확답을 찾았는지 질문했는데요. 이에 그는 “확정한 답은 없고 우리 형의 생할도 촬영 때문에 좋아지지 않지만 가족 간의 거리는 확실히 좁혀졌다. 다만 우리 집 모시는 신이 또 무엇을 말했는지 여전히 알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배우면서 저는 다큐멘터리가 맡은 역할을 깨닫게 되었는데요. 다큐멘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질문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즈의 아들은 “삼촌 덕분에 우리 집은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신과 인간의 집> 관람 후 ‘신이 존재한다/존재하지 않는다’기 보다 ‘신보다 인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촬영하는 과정에서 아들, 동생, 감독 등 다양한 캐릭터로서 어떻게 개관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지에 대해 감독은 “사실 편집 단계에 들어서야 감독으로서의 주제의식이 나타났는데 촬영 시 아들과 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아예 포기했다”며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과거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을 때 촬영 대상과 거리 유지를 잘 못해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따라서 감독이 똑같은 곤란을 겪은 것을 알게 되어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당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확실하지 않아 수많은 영상을 반복하게 보더라도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파트너하고 지도교수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주제의식을 찾아냈습니다.
<신과 인간의 집>의 촬영 과정에서 루잉량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도박에 중독한 아버지는 다른 가족에게는 큰 부담이었는데 막상 자리를 비워 여전히 큰 공허감을 가져올 수 밖에 없겠죠. 루잉량은 “<신과 인간의 집>의 가장 근본적인 제작 목적은 내가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가족은 나의 정체성 확립과 이렇게 긴밀하게 연관된 것을 촬영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가족들과 완전히 화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스스로와 점차 화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거울처럼 제작자의 마음을 비춥니다. <신과 인간의 집>으로 루잉량은 과거의 자신이 어떻게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낸 것을 알게 되고 스스로와 대화하는 자리를 얻었죠.
푸종15와 신베이시 다큐멘터리 영화제 덕분에 많은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는데요. 다큐멘터리는 인간이 세상과 대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매개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영화관에서 다큐멘터리를 보기 힘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푸종15는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발전에 계속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있으시면 푸종15를 추천드립니다. 엔딩곡으로 집에 관한 노래 ‘집에 간다’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가수는 왕제(王傑)입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府中15。
2. 謝璇,「與紀錄片為伍:府中15新北市紀錄片放映院開幕」,放映週報。
3. 賴筱桐,「府中15七周年 李安出席台灣電影職人展VIP之夜」,自由時報。
4. 新北市紀錄片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