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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시립 미술관 ‘와일드 80년대’ 전시회

  • 2023.02.22
랜드마크 원정대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에서 열린 ‘와일드 80년대’ 전시회 - 사진: 안우산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228사건 기념일을 앞서 최근 몇 주 동안 지속적으로 228사건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1947년 228사건의 폭발로 타이완은 약 2개월 동안의 계엄을 유지했고 그 후 장제스 정권이 국공 내전에서 잇따라 패퇴함에 따라 국민당 정부는 반공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1949년에 타이완 전역에서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38년 간의 백색 테러를 겪은 끝에 1987년에 드디어 계엄령을 해제했습니다. 같은 해 한국도 6월민주항쟁을 통해 민주화의 서막을 열었죠.

거의 40년이 이어진 독재정권의 그림자 안에서 타이완인은 자유를 누리지 못했는데 당시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어떻게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했을까요? 저희 방송국 근처에 있는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은 작년 12월부터 오는 2월 26일까지 1980년대 타이완 문화예술계의 발전에 관한 전시회 ‘와일드 80년대: 분야를 넘어드는 영감의 빛   (狂八〇:跨領域靈光出現的時代, The Wild Eighties: Dawn of a Transdisciplinary Taiwan)’을 개최했습니다. 이 전시를 통해 마침 계엄령 해제 전과 후 생기발랄한 1980년대의 타이완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해당 전시회는 전시 구역 5개가 있고 각각 ‘혁신과 실험(前衛與實驗)’, ‘정치와 금기(政治與禁忌), ‘번역과 혼종(翻譯術與混種)’, ‘현지화, 글로벌화와 아이덴티티(在地、全球化與身份認同)’, ‘ 합류와 전진(匯流與前進)’입니다. 

우선 ‘혁신과 실험’ 구역에서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의 개관으로 전시를 시작했습니다. 1983년에 설립된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은 한창이던 현대 예술 운동에 대응하여 창립된 타이완 최초의 공립 미술관입니다. 안내원은 미술관 개관 당시의 신문을 보여줬고 제목에 여(女)’, 단(短), 다(多) 등 한자가 있는데요. ‘여’는 여자의 여고 미술관의 첫 관장 수뤠이핑(蘇瑞屏)을 가리킵니다. 수 관장은 원래 타이완 국립고궁박물원에서 근무했고 미술관의 설립으로 전임되었습니다. 다음에 단은 짧다는 뜻이고 미술관 개관 전에 준비시간이 매우 짧은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는 많다는 뜻이고 개관 시 동시에 오픈된 10개의 전시를 뜻합니다. 재미있고 짧은 제목을 통해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 개관 당시의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미술관은 예술을 체계화하는 중요한 장소고 계엄령 발효부터 장기적으로 억눌린 예술가들은 드디어 공식적인 예술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민주화가 다가옴에 따라 예술가들은 점차 국가의 홍보 수단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독재정권을 비판하며 예술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시된 작품 중 화가 린쥐(林鉅)은 90일 동안 스스로를 유리방에 갇혀있고 소량의 과일과 우유로 삶을 유지하며 외부와의 모든 교류를 차단하고 그림에만 집중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파격적인 행위예술로 당시 보수적인 사회에 도전해 큰 주목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1980년대에 많은 서양 문화가 타이완에 들어와 예술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요. 타이완 다다이즘(Dadaïsme)의 선구자 리밍셩(李銘盛)은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 홀에서 대변을 보는 것으로 당시 경직된 사회와 예술 체제를 비판했습니다. 이 작품을 봤을 때 다다이즘 대표 예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Fountain)을 처음 접했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여전히 매우 혁신적인 예술이죠.


90일 동안 스스로를 유리방에 갇혀있고 그림에만 집중하는 실험을 한 화가 린쥐(林鉅) - 사진: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


타이완 다다이즘(Dadaïsme)의 선구자 리밍셩(李銘盛)은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 홀에서 대변을 보는 것으로 당시 경직된 사회와 예술 체제를 비판했다. - 사진: 안우산

다음에 ‘정치와 금기’ 구역에서 정치가 어떻게 예술에 간섭하는지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첫 번째 등장한 주인공은 타이완 유행가요 대부라 불리는 가수 뤄다유(羅大佑)입니다. 언론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던 시절에 노래, 책, 방송 등 모든 예술문화 작품이 반드시 정부의 사전 심사를 통과해야 발표할 수 있었는데요. 이를 비판하기 위해 뤄다유는 '즈후저예(之乎者也)'라는 노래를 선보였습니다. 즈후저예란 고문에서 자주 쓰이는 조사고 뤄다유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즈후저예야?'라고 하듯이 정부가 국민의 자유를 억누르는 것을 비꼽니다. ‘한쪽 눈만 뜨고 숨을 내쉬고 귀를 감으면 모든 사람이 기뻐한다’는 가사도 풍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구역에 아주 흥미로운 사건 하나가 있는데요. 1983년에 예술가 리짜이치앤(李在鈐)의 대형 조형물은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 개관 전시회에서 전시되었습니다. 1985년에 미술관은 어떤 제대 군인으로부터 이 조형물을 특정 각도에서 볼 때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별과 매우 유사하다는 고발을 받았으며 미술관 측은 작가의 허락 없이 직접 붉은 조형물을 은색으로 칠했고 분쟁을 야기했습니다. 예술계 인사들이 미술관의 무단과 창작 자유의 침해를 비난하고 결국 1986년에 미술관은 작품을 원래 붉은색으로 다시 칠했습니다. 당시 이러한 사건은 아주 흔한 일이었는데 예술가들이 정부가 정해진 불합리한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습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별과 매우 유사하다는 고발을 받은 예술가 리짜이치앤(李在鈐)이 창작한 대형 조형물 - 사진: 안우산

이어서 ‘번역과 혼종’, ‘현지화, 글로벌화와 아이덴티티’, ‘ 합류와 전진’ 구역에서 세계가 타이완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 영향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예술 형식을 드러낸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안내원이 이 구역들을 소개하기 전에 우선 관객들에게 질문을 했는데요. ‘여러분에게 집이란 무엇인지 우선 마음 속에 생각해 봅시다. 당시 타이완인에게 집은 중국일 수도 있고, 타이완일 수도 있고, 일본일 수도 있는데요. 이따가 작품을 통해 예술가가 집에 대한 정의를 알 수 있습니다’고 했습니다. 안내원의 말을 듣고 저는 먼저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했는데요. 저와 같은 세대들은 대부분 타이완에서 태어나 타이완인으로서 자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치시대, 장제스 정권, 본성인과 외성인 대립 등을 겪어온 세대에게 이 질문은 매우 복잡하고 일시에 답하기 힘든 문제죠. 전시를 관람하면서 어떤 작품은 산수화 기법으로 중국에 있는 고향의 모습을 제현하고 또 어떤 작품은 필름 카메라를 통해 타이완의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그 중 구두 형식의 조각품 2개가 매우 눈에 띄었는데요. 하나는 양쪽이 다 구두 앞머리인 작품 '주저(躊躇)'입니다. 글로벌화 시대에 우리는 매일매일 세계 곳곳에서 오는 정보를 접할 수밖에 없고 지나치게 많은 정보 때문에 방향을 잃거나 망설이는 경우가 종종 있겠죠. 이 작품은 당시 타이완, 혹은 타이완인의 처지를 생생하게 표현했으며 40년 뒤에 살고 있는 우리도 쉽게 공감할 수 있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미래에 대한 막막함은 삶의 영원한 숙제인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구두 안에 입이 있는 작품입니다. 중국어에서 새로운 신발을 신을 때 발에 맞지 않아 발을 다치는 경우 ‘발을 물다(咬腳)’는 표현을 사용하는데요. 당시 타이완이 외부의 자극을 받고 잘 수용할 때도 있고 발에 맞지 않듯이 악영향을 초래할 때도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때 스스로에 적합한지 잘 생각해야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 구두 작품들은 타이완의 처지를 잘 표현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습도 함께 그려냈네요.    


양쪽이 다 구두 앞머리인 작품 '주저(躊躇)' - 사진: 안우산


구두 안에 입이 있는 조각품 - 사진: 안우산

전시회 제목 ‘와일드 80년대’와 같이 80년대는 미지와 가능성으로 가득 차고 매우 와일드한 시대였습니다. 228사건과 거의 40년 간의 백색 테러를 겪고 나서 80년대의 타이완은 활기차고 환한 모습으로 새로운 출발을 향한 모든 준비를 끝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앞으로 기회가 되시면 저희 방송국 뿐만 아니라, 타이베이 시립 미술과에 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엔딩곡으로 뤄다유(羅大佑)의 ‘즈후저예(之乎者也)’을 띄어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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