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기 타이완에 살았던 사람들 중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인입니다. 1905년 타이완 총독부의 호구조사에 따르면, 당시 타이완 인구 총 300여만 명 중 본도인(本島人), 즉 타이완인은 297만 명, 일본인은 5만 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35년 후인 1940년 조사에서 타이완인은 약 550만 명으로 2배 좀 안되게 증가한데 반해, 일본인은 31만명으로 무려 6배나 증가했습니다. 일제시기 타이완에 살았던 타이완인과 일본인의 비율은 약 60 대 1로, 재대일본인은 비록 소수였지만, 재대일본인의 대다수는 고위직에 종사했던지라 그 영향력은 상당했었죠.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는 일본이 타이완을 통치한지 40년이 된 1935년, 통치 40주년을 기념해 타이완에 거주하던 일본인이 남긴 그 날의 기억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정부에서 기록한 지난 40년
1935년 타이완박람회
1935년 10월 10일은 총독부가 타이완 통치 40주년을 맞아 시정 40주년 기념 타이완박람회를 개최한 날입니다. *2023년 12월 19일 방송 "일본의 타이완 식민통치 40주년 기념, 1935년 타이완박람회" 매우 성대한 행사였던 박람회에는 무려 1,119,407엔의 비용이 들었고, 타이베이 주요 전시장에는 2,733,895명의 관람객이 몰렸습니다. 일제시기 50년 동안 있었던 행사 중 가장 규모가 큰 행사였죠.
타이완박람회 개최를 총괄했던 총무장관 히라츠카 히로요시(平塚廣義, 1875-1948)는 이 행사의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 타이완이 예속된지 40년이 되었다. 관민의 한결같은 노력으로 시설이 완비되고, 문화가 향상되고, 산업이 발전하는 등 그 성과가 매우 두드러지다. 현재 천황도 도민들고 모두 안정되고 즐거우니 실로 경축하지 않을 수 없다.
히라츠카 총무장관은 정부와 민간인, 관민이 하나가 되어 노력해 시설, 문화, 산업 발전을 이룬 것을 찬양하고, 타이완에 거주하는 도민들이 천황의 은택(皇澤)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을 경축합니다. 이어, 일본 제국이 어떻게 ‘전염병과 폭우의 땅(瘴癘蠻雨之地)’인 타이완을 문명 제국 발전의 ‘근거지’로 탈바꿈시켰는지 자세히 설명하며, 이것이 박람회 개최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타이완 역사학자 뤼샤오리(呂紹理)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일본식민정부가 박람회를 개최하는 주요 목적은 박람회를 통해 40년 간 타이완을 통치한 공적을 전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주최한 박람회 외에도 1935년을 전후해 한 동안 정부 관계자는 물론 민간에서도 일본의 타이완 통치 40년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총독부 관방조사과 <시정 40년 타이완(施政四十年の臺灣)>
정부가 출판한 책 중 대표적인 예로 총독부 관방조사과에서 쓴 <시정 40년 타이완(施政四十年の臺灣)>이 있습니다. 이 책의 표지에는 파인애플, 야자수, 용수(榕樹, 타이완 고무나무) 등 타이완을 대표하는 이미지 도안이 그려져있고, 첫 페이지에는 타이완 총독부 청사와 과거 청나라 때 건축된 적 있는 옛 청사 사진을 나란히 놓아 일본 통치 전후의 모습을 대조시켜 놓았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청나라 때 타이완에 비해 일본통치시기 타이완이 놀랍도록 발전, 성장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지요.
<시정 40년 타이완> 서문에는 이 책이 시정 40주년 기념 박람회 기념 출판물로서 “타이완이 일본에 예속된 이후 40년 간의 문화 발전의 궤적을 간략이 기록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자연, 인구, 통치, 교화, 재정, 산업, 무역, 금융, 교통 등 총 9개 분야로 나누어 각 분야별로 지난 40년 간 얼마나 발전, 진보했는지 그 과정을 상세히 기술합니다.
일본 관방은 매년 12월 11일, 즉 일본의 타이완 통치를 기념하는 시정기념일(施政紀念日) 마다 어용신문을 동원해 타이완의 일본 통치 후의 변화를 강조하고 청나라 때 타이완의 모습과 비교해 일본 통치의 우월성을 부각해온 바 있는데요. <시정 40년 타이완>은 이런 문명사관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방이 아닌 민간에 있는 재대일본인은 과거 40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민간에서 기록한 지난 40년
대만일일신보사의 <시정기념: 40년간의 대만(始政紀念:四十年間の臺灣)>
대표적인 예로, 일제시기 대표적인 신문사 중 하나인 <대만일일신보>사가 출판한 <시정기념: 40년간의 타이완(始政紀念:四十年間の臺灣)>을 들 수 있습니다. 타이베이와 도쿄에서 각각 열린 두 번의 좌담회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 책은 출판 목적이나 동기는 관방에서 출판한 책과 큰 차이가 없지만, 참석자들의 ‘체험담’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참석자 각각의 서로 다른 경험과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참석자는 총 8명으로, 타이완 출신 귀족원 의원이었던 구셴룽(辜顯榮)을 제외한 7명은 모두 일본인입니다. 1895년 종군하여 타이완에 온 의과전문학교 교장 호리우치 츠기오(堀内次雄, 1873-1955), 타이완 지방정부의 여러 협의회원들과 1901년 타이완에 건너 온 기자 겸 작가 오자키 호즈마(尾崎秀眞, 1874-1949)까지 말이죠. 이들은 모두 일제시기 초기인 1895년에서 1901년 사이에 일본에서 타이완으로 건너 와 타이완에서 수십 년 간 생활한 재대일본인입니다.
1895년 5월 시모노세키 조약이 비준된 후 일본이 타이완을 영유하게 된 시점을 시작으로 일본군이 타이베이를 점령 타이완 북서부에서 남부로 이어지는 토벌 과정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당시 군의관이었던 호리우치는 일본군의 타이완 토벌 과정에서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 친왕이 사망하게 된 경위를 풀어내죠.
공학교 교장을 역임한 나이토(內藤龍平)씨의 <대만 40년 회고(臺灣四十年回顧)> (1936)
<시정기념: 40년간의 타이완>이 초기 일본의 타이완 무력 점령 과정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과 추억을 다루고 있다면, 이어서 소개하는 책 <타이완 40년 회고(臺灣四十年回顧)>는 공학교 교장을 역임한 나이토(內藤龍平) 씨와 자신이 아는 60여 명의 재대일본인이 일상에서 겪은 추억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인 나이토씨는 이 책을 판매 목적이 아닌 지인들에게 증정할 용도로 “함께 과거를 회상하며 웃을 수 있는 자료”라고 소개하죠.
본문에는 교학계의 대표적인 사건이었던 즈산옌 사건(지산암 사건, 1896년 즈산옌 학당의 일본 교사 6명이 살해된 사건)이나 위생 문제 등 식민지 지배와 직결된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저자가 처음 타이완 땅을 밟았을 때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인상, 각자 직장 생활에서 겪었던 크고작은 에피소드 등을 다룹니다.
그리고 1930년 호구조사를 근거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깁니다. 조사에 따르면 10년 이상 타이완에 거주한 일본인과 아예 타이완에서 태어난 일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재매일본인의 74% 에 달했다고 합니다. 즉 3/4에 가까운 재대일본인들은 이미 타이완을 자신들의 터전이라고 간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1930년대에 이르면, 재대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생활하고 심지어 태어나기까지 한 타이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타이완 독자적인 ‘지방주의 문학’을 확립해 일본으로 전파하려는 시도가 나타납니다. 즉, 이들은 타이완을 단순히 여행을 통해 잠시 즐기다 돌아간 일본인의 관점과 달리 타이완의 ‘진정한 모습’을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다고 하죠.
나이토씨가 쓴 <타이완 40년 회고>란 책이 의미가 있는 건, 타이완 섬을 자신의 터전으로 생각하는 재대일본인이 생각하는 ‘타이완 의식’, 즉 일본 본토 사람들이 모르는 ‘진짜 타이완의 모습’을 전달하고 싶다는 재대일본인의 의무감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재대일본인을 연구한 일본 학자(鳳氣至純平)는 말합니다. 이렇게 민간에서 자신들이 겪은 타이완에서의 40년을 회고하는 것은 타이완의 지역 의식을 보여주고 싶다는 재대일본인의 ‘절박함’이 묻어 있다고요. 왜냐하면, 일본의 타이완 통치 시기 40년의 역사는 곧 재대일본인인 자신의 역사이자 곧 생명이기 때문이죠…
►참고문헌
鳳氣至純平, 日治時期在臺日人的歷史像,台北:南天書局,2020.
서승임 徐承任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