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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타이완에도 골프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 2024.03.26
대만주간신보
1919년에 공식 개장한 단수이 골프장은 타이완 최초의 골프장이다. '타이완골프클럽' 회원들을 도와주던 초기 캐디의 모습.

‘골프장 투어’가 있을 정도로 타이완에는 여러 지역에 다양한 골프장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인천이나 김포공항 외에도 청주공항, 김해공항 등 지방의 다양한 국제공항에서도 자유롭게 타이완을 건너올 수 있다보니, 골프를 좋아하는 전국 각지의 한국 사람들에게 타이완은 골프여행으로도 괜찮은 관광 코스이죠. 타이베이에서 멀지 않은 타오위안 다시(大溪)의 다시 골프 컨트리 클럽(Ta Shee Golf&Country Club)은 2018년 세계 100대 골프장에 타이완 골프장 중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곳으로, 리덩후이 전 총통이 애용하던 곳으로도 유명하고요. 단수이(淡水)에 소재한 타이완 골프 컨트리 클럽(Taiwan Golf & Country Club)은 100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깊은 골프장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골프장 역사가 100년이나 되었다니요? 100년 전은 타이완이 한창 일본으로부터 지배를 받던 시기인데 말이죠. 그렇다면 일제시기에도 타이완에 골프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는 건데요.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는 타이완의 첫 골프장과 일제시기 타이완의 골프 역사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타이완에 골프가 처음 도입된 시기는 1918년입니다. 축구, 야구 등 많은 서양의 구기 종목들이 당시 일본을 통해 타이완에 처음 들어왔는데요. 그런데 골프는 다른 운동과는 경로가 조금 다릅니다. 

일본 최초의 골프장은 고베의 해발 800미터 료코산 정상에 있는 골프장으로, 1903년에 세워진 고베 골프클럽은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영국인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골프장이 타이완의 최초 골프장 설립과는 무관하죠. 타이완으로 날아 온 첫 골프공이 오히려 일본에서가 아닌 필리핀에서 왔다고 합니다. 

타이완에서 골프는 마쓰오카 도미오(松岡富雄, 1870-?)라는 한 일본 상인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규슈 구마모토의 구 무사, 즉 사족(士族) 출신인 마쓰오카는 33세에 타이완 총독부 당무국에 부임해 타이완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타이완에 오자마자 골프로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먼저 설탕 산업에 뛰어들어 설탕 회사 이사가 되었고, 이후에는 타이중 지역의 타이완 신문사 사장이 되었죠. 그렇게 타이완에서 자본을 계속 축적하던 마쓰오카는 1917년 타이완 외에도 필리핀의 마닐라와 민다나오 섬으로 자신의 사업을 확장시켜 갑니다. 그렇게 두 지역에 모두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고 타이완에 돌아오던 해인 1918년, 마쓰오카의 짐에는 골프채, 골프공, 그리고 골프화가 있었습니다. 

타이완의 골프 역사는 이시이 미츠시로(石井光次郎) 전 일본 중의원 의장의 회고록, ‘88년을 회상하다’에 보다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918년 4월 당시 서른 살도 채 안된 나이로 타이완 총독의 비서관을 맡았던 이시이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돌아온지 며칠 되지 않은 마쓰오카의 초대로 당시 민정장관, 타이완은행 총경리와 함께 한 고급 식당인 이른바 ‘요정(料亭)’ 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이때 마쓰오카는 이들에게 골프채와 골프공, 그리고 가죽제 골프화를 선물했는데요. 선물과 동시에 마쓰오카는 식당 안 다다미방에서 드라이버 시범을 보이며 골프의 룰을 자세히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식사 자리에서 골프 용품을 선물하고 골프 룰에 대해 설명한 마쓰오카는 이 운동이 매우 큰 장소가 필요하다며 이 둘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 크기의 골프장을 당시 타이완에서는 찾기가 어려워 이 날 마쓰오카의 계략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죠. 

그리고 한 달 뒤, 일본 미쓰이 물산(三井物產) 주식회사 소속 이노우에 노부토기(井上信) 골퍼가 제1회 일본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후 타이완을 방문하자, 타이베이 체육계의 애호가들이 민정장관의 관저(현 총통부 앞 우측 주차장)에 모여 이노우에 선수의 시범을 보고 그 자리에서 골프를 배웠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이시이 미츠지로 비서관은 이후 잡초로 무성한 한 연병장(현재 타이베이 청년공원 일대)을 떠올렸고, 육군 경리부장을 찾아자 연병장을 이용해 골프장을 만들 수 있도록 설득했습니다. 이시이 비서관은 자신이 배운 골프 지식을 바탕으로 일꾼들을 불러 길이 200야드(약 183미터), 폭 60야드(약 55미터)의 N자형 골프장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세 개의 찻잎 항아리를 흙 속에 넣어 세 개의 홀을 만들고 대나무 막대기에 붉은 천을 묶어 구멍 표시 막대를 만들어 타이완 최초의 골프 코스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정식 골프장은 아니었죠.
이렇게 이노우에 선수의 타이완 방문으로 타이완 총독부 간부들 사이에서 골프가 유행하게 되자, 골프를 정식으로 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 단수이 세관장이 단수이 지역에 청나라 연병장 터 사용을 건의해 1918년 7월 타이완 은행 총경리가 서면으로 육군 경리부장에게 차용을 신청, 정식으로 타이완 최초의 골프장을 단수이에 짓게 되었습니다. 단수이에 세워진 타이완 최초의 골프장은 6홀 코스 자리였습니다. 

골프장이 완공되자 1919년 6월 타이베이 주요 관직과 유지 약 120명을 초청해 개막 행사를 거행했습니다. 타이완 은행  총결리는 참석자들의 도시락을 기증했고, 육군참모총장의 축사에 이어 민정장관의 시구로 친선 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그렇게 1919년 6월 단수이 골프장이 공식 개장하면서 타이완 골프 역사의 서막이 본격적으로 열렸습니다. 단수이 클럽은 1922년 9홀로 구장을 늘렸고, 이듬해에는 클럽하우스까지 완공했죠. 그리고 단수이를 시작으로  1937년까지 타이완에는 신주, 타이중, 자이, 가오슝, 화롄강 등 전국 각지에 골프장이 세워졌습니다.  

같은 해 11월 ‘도쿄골프클럽’의 정관을 참고해 정식으로 ‘타이완골프클럽’을 창설해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죠. 타이완 전국에 소재한 골프장은 클럽 회원제를 통해 운영되었는데, 입회금은 50엔으로, 당시 중하급 공무원이나 교직원의 두달 치 월급이었죠. 게다가 골프채를 마련하려면 그의 몇 배가 되는 돈을 들여야했으니, 골프의 귀족적 성격은 일제시기부터 타이완에 굳어졌고, 골프를 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소수 중 소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타이완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 중 일본 고위직 관료 외에도 타이완 사람이 있었을까요? 

단수이 클럽의 기록을 보면, 1937년까지 타이완인 회원이 전혀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당시 타이완의 최고 부자였던 반차오 린가(板橋林家) 출신의 린슝즈(林熊徵, 1888-1946 현, 화난은행 회장 린밍청(林明成)씨의 아버지), 린슝광(林雄光), 린송서우(林松壽), 린바이서우(林柏壽, 전후 타이완 시멘트사 회장) 등 소수의 재력가들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타이완의 또 다른 유명 집안이죠, 우펑 린가(霧峰林家)의 사위가 있었습니다. 전후 가오슝 시장을 역임한 천치촨(陳啓川, 1899-1993)은 가오슝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그도 회원에 있었습니다. 천 씨는 1934년 11월 단수이 클럽에서 타이완인 최초로 홀인원을 기록했다는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일제시기 타이완 골프 역사를 보면, 학교에서 학생들이 하던 축구나 야구와 달리 골프는 당시 타이완 사회에서 가장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상류층 만이 즐길 수 있었던 운동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타이완 최초의 프로 골프 선수는 이들중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고상하게 취미생활로만 삼아서는 프로 선수가 되기 어렵죠. 타이완 최초의 골퍼는 의외로 단수이 클럽 한 켠에서 소를 방목하던 한 소년이었습니다. 단수이 출신의 천칭수이(陳淸水, 1910-1994), 일본인 코치를 스승으로 모시고 가족들의 뒷바라지로 훈련을 이어가다 1934년 일본 관동 프로 골프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 3년 만에 전일본 오픈에서 우승을 하는 기염을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까지 대중화되고 보편화된 골프. 타이완으로 골프 여행을 오신다면, 100년도 넘은 타이완의 골프 역사를 한 번 기억해보시는 것 어떨까요? 
 

서승임 徐承任 ([email protected]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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