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세상이 아니었으면 겪지 않았어도 될 일이요”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경성크리처>에서 경성 제일의 전당포를 운영하던 장대주가 한 병원에서 생체실험 대상자가 된 조선인을 목격한 후 내뱉은 명대사인데요. 총 10부작으로 작년 12월 22일에 공개된 <경성크리처>는 파트 1 공개 직후에는 큰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지난 1월 5일 10부작의 후반부인 파트 2를 공개하자 한국과 타이완에서는 1위를 찍었고, 일본에서도 10위 안에 드는 흥행 성적을 보였습니다.
1945년 경성에서 벌어진 부녀자 실종 사건을 주제로 한 <경성크리처>는 경성의 한 병원인 옹성병원에서 일본 부대가 조선인, 특히 부녀자를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하고, 끝내는 인간 체내에 들어가면 흉악한 괴물로 만들어내는 기생충을 개발해 한 여성에게 투입시키면서 시작합니다.
이 드라마는 1940년 중국 하얼빈시에 있었던 731부대를 모티브로 해서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731 부대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인체실험을 포함한 각종 생화학무기개발 등의 업무를 하던 일본 제국 육군 소속 부대이죠. 인체실험의 대상을 '마루타'라고 불렀고, 이 희생자 중에서는 전쟁 포로 중국인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소수의 한국인, 미국인, 러시아인, 몽골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끌려가 희생을 당했습니다. 통나무라는 뜻의 ‘마루타'. 일본 제국 731 부대는 사람을 사람이 아닌 일종의 재료, 즉 실험대상으로 대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조선인들이 형무소에 수감되어 누명을 쓰고 고문을 받는 장면도 종종 등장합니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사람의 목숨 따위는 중요치 않게 생각했던 일본 관료들의 또 다른 모습이죠. <경성크리처> 6회에서 장대주와 함께 전당포를 운영하던 나월댁은 같이 일하는 갑평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손톱, 발톱, 생으로 뽑혀본 적 없지예? 불에 지져진 적도, 전기고문을 당한 적도 엄꼬요. 거꾸로 매달린 사람 콧구멍에 고춧가루 탄 물을 한도 끝도 없이 디비 부으면 우예되는지 압니꺼. 거까지 가믄 더 이상 사람이 사람일 수가 없는 기라예. 개가 되라믄 개가 되고, 지렁이가 되라면 지렁이가 되고. 가족이고 동지고 뭐고 더 이상 암것도 안빕니다."
일제강점기를 생각하면 한국인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중에 하나는 바로 이런 고문일텐데요. 실제로 당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형무소에 투옥되어 각종 고문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서대문 형무소를 견학하면서 배운적이 있었죠. 그렇다면 일제시기 타이완에서의 형무소는 어떠했을까요?
일제시기 타이완의 형무소는 타이베이, 신주, 타이중, 자이, 타이난, 가오슝, 이란, 화롄강 등 총 8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일제시기 초기의 교도소 제도는 여러 차례 개편을 거쳐 1908년 '타이완 감옥령' 제3차 개정이 공포된 이후 대체로 확립되었는데요, 기존의 ‘감옥’이라는 명칭이 1924년 '형무소'로 바뀌었고요. 규모면에서는 타이베이 형무소가 가장 컸고, 타이난 형무소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타이난 형무소에는 비적 등 중범죄자들이 많이 수용되었는데 수용인원이 너무 많아 일부 무기징역수들은 타이중 형무소로 이감시켰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타이베이, 타이난 형무소를 비롯해 자이 형무소 등은 미국 펜실베니아의 감옥 건축 형식에 따라 지어졌습니다. ‘절대적 고립구금’을 골자로 하는 펜실바니아식(Pennsylvania System) 감옥의 공간배치법칙은 서로 간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데다가 공간이 가장 큰 중앙통제실 대비 옥방은 환기와 채광이 거의 되지 않도록 설계해 수형자들은 사회복귀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1922년(다이쇼 11년)에 완공된 자이 형무소가 이러한 펜실베니아형 감옥 형태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어 그 실물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년 8월, <어반 스케처스 타이베이>에서 소개해 드린 바 있는 진화제 ‘롱진 고저스 타임 파크(Rongjin Gorgeous Time)’ 기억하시나요? 일본식 가옥이 나란히 있어 그 가옥 안은 카페, 맥주집, 식당 등 젊은이들의 먹거리 장소가 된 롱진 고저스 타임 파크 자리가 원래 타이베이 형무소였다고 소개해 드린 바 있는데요. 현재 타이베이시에는 진화가(金華街)의 남벽(南壁)과 진산난루(金山南路) 2단의 북벽(北壁) 등 당시 담장 2개가 보존돼 있는데, 이 중 북벽에는 일본인들이 항일의사 등 범인을 처형한 뒤 시신을 운구하는 출구여서 '울음의 벽(哭牆)'이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이곳 타이베이 형무소에서 살해된 대표적인 항일 의사는 황화강(黃花崗) 전투에 참전했던 광둥 객가(客家) 뤄푸싱(羅福星)입니다.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 혈통의 자바 화교였던 그의 어머니를 닮아 유럽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뤄푸싱은 1912년 중화민국이 건국된 후 타이완 먀오리(苗栗)에 동맹회 지부를 설립해 혁명을 통해 일본의 식민통치를 무너뜨릴 것을 주장하다 이듬해 체포되었습니다. 이 사건과 연루된 수천 명이 조사를 받았는데요. 일명 ‘먀오리 사건(苗栗事件)'입니다.
이 밖에 타이완문화협회의 장웨이수이(蔣渭水) 대표, 우펑 린자(林家)의 린유춘(林幼春), 대만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라이허(賴和) 등이 항일문제로 타이베이 형무소에 수감돼 있었고, '항일삼맹' 중 한 명인 젠다스(簡大獅)도 이곳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의사 출신인 장웨이수이 씨는 타이베이 형무소 감방의 위생 상태가 양호하고 일반 가정보다 깨끗하다고 칭찬했지만 일본인들의 형벌 수법은 가혹했다. 펑후 태생의 변호사였던 오우칭스(歐清石)씨는 일본인과 협력하기를 꺼려하다 투옥되었고, 오우씨는 각종 고문을 당한 자신을 묘사한 <옥중음(獄中吟)>을 썼죠.
1917년 타이완의 남부 지역인 펑후에서 태어난 오우칭스는 1930년 3월 와세다 대학 전문부 법과를 졸업하고 1931년 일본 고등문관행정과 및 사법과 시험에까지 합격하죠. 변호인으로서 도쿄에서 3년간 근무한 뒤 1933년 타이완으로 돌아온 오우 씨는 타이난에 로펌을 차리고 변호사로 활동하다 변호사 조합 부회장에도 선출되었죠. 타이완에서의 첫 선거인 1935년 시의회 선거에서 오우 씨는 타이완지방자치연맹의 추천을 받아 민선 타이난 시의원에 당선되기에 이릅니다.
1937년 일본이 제2차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타이난에 방위단을 조직하자 타이난 시 정부는 오우칭스에게 방위단장을 요청하고 일본계 변호사 이토를 단장으로 임명했는데, 오우 씨는 이토 간사의 태도에 불만을 품고 협력을 거부했습니다. 이러한 오우 씨를 일본 당국은 '국적(國敵)'으로 간주하고 추적·감시하기 시작했는데요. 이후 중국군의 타이완 상륙을 유도한 혐의로 1942년 8월 체포되었고, "일본 제국을 전복하고 대만을 통치하려는 음모”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이후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타이베이 감옥에 수감해야했습니다. 타이완 광복이 얼마 남지 않은 1945년 5월 31일 연합군의 타이베이 대공습으로 결국 옥중에서 사망하고 말았고, 그가 남긴 <옥중음>만 남게 되었습니다.
辛苦十年博一經,為民護法幾周星。
家山冷落風拋絮,身世飄搖雨打萍;
縲絏窗中悲萬緒,伶丁影裏淚千零,
人生自古誰無死,留取丹心照汗青。
<경성크리처>의 시즌 2가 올해 공개될 예정인 가운데, 시즌 2 예고 영상에서 일본 군부대 실험실에 영어로 ‘TAIWAN’이라 적힌 용기가 등장하고, 타이완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유명 유튜버인 ‘유찡(有璟)'도 출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즌 2에 대한 타이완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