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의 대표적인 역사도시 타이난으로 떠납니다. 타이난에는 타이난 기차역을 시작으로 현재 타이완문학관으로 사용하는 구 타이난주청, 현 타이난미술관 1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구 타이난 경찰서,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 타이난 지방법원, 하야시(林) 백화점 등 일제시기 건축물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데요. 현재 타이난시 중심에 남아있는 일제시기 건축물을 소개하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으로 타이난 신학원에 대해 알아볼까요?
넷플릭스 드라마 <스칼루>(SEQALU 斯卡羅 포르모사 1867)에 등장하는 타이난 신학원
19세기 말 타이완 최남단 헝춘반도에서 타이완 원주민과 미국과의 전쟁 및 협상을 다룬 드라마, 스칼루(SEQALU 斯卡羅 포르모사 1867)는 지난 2021년 타이완의 주요 방송사인 공영방송(公共電台)에서 대하 드라마로 소개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요. 차이잉원 총통의 극찬과 2021년 타이완 넷플릭스 시청률 1위는 물론 한국에서도 원작 소설이 <포르모사 1867>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지난 2023년 8월 출판되어 한국의 주요 일간지인 조선일보에서 선정하는 이 주의 책으로 소개된 바 있습니다.
원작 소설 <구이레이화>(傀儡花, 2016)에서 첸야오창 작가는 역사에서 잊혀진 사건, 즉 1867년 미국의 해병대의 군사 행동으로 타이완의 원주민과 전쟁한 사건과 그리고 이들이 국제 조약을 맺은 사건을 소개하는데요. 1867년 발생한 로버호 사건을 시작으로 그 뒤로 이어지는 50여 년간의 일본 식민통치 그리고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동아시아의 지각 변동까지, 19세기 말 타이완 섬 남단에서 시작된 사건이 불어오는 20세기 전반의 굵직한 역사들을 조망하는 새로운 관점을 가져다 줍니다.
<스칼루>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2021년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버전의 제5화를 보면 타이완에서 좌초된 미국 상선 로버호에 탔던 선원들이 원주민과의 싸움에서 목숨을 잃자 이를 안 미국인들이 타이완으로 건너와 거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때 촬영 장소가 바로 ‘타이난 신학원’ 건물입니다.
영국 장로교회 선교사와 타이난 신학원
타이난 신학원은 19세기 말 타이완으로 선교하러 온 영국 장로교회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건물입니다. 1865년 영국 장로교회는 제임스 맥스웰(Dr. James Maxwell) 박사를 타이완에 파견했습니다. 맥케이 박사(George Leslie Mackay)를 시작으로 캐나다 장로교회 선교사들이 타이완 북부, 지금의 단수이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 1872년이니, 영국 장로교는 이보다 7~8년 앞서 타이완 남부인 타이난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했죠. 제임스 맥스웰 박사는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가장 먼저 예배당과 선교자 양성을 위한 교육시설을 만들기 시작했고 1876년이 되자 토마스 바클레이 목사(Rev. Dr. Thomas Barclay)를 초대 교장으로 ‘타이난 신학교’(台南神學校)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은 10명에 교사는 3명으로 매우 작은 규모로 시작했죠. 바클레이 목사는 당시 성경을 타이완어로 번역하는 작업과 로마자 병음으로 표기하는 백화자 운동을 추진했는데요. 뿐만 아니라 동시대 영국의 제판 인쇄술을 도입해 1885년부터 ‘타이완교회공보(台灣教會公報, Taiwan Church News)'라는 타이완 역사상 첫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1884년 청불(프랑스-중국)전쟁이 일어나 프랑스 함대가 타이완을 봉쇄하자 신학교는 잠시 문을 닫았고, 1895년에는 일본군이 타이완을 침공하자 결국엔 폐교를 선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에도 영국 선교사들은 선교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에는 신자와 학생 수가 급증해 학교 건물을 짓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건축을 위한 자원이 턱없이 모자랐던 나머지 바클레이 목사는 영국으로 돌아가 천 파운드를 기부 받았고, 결국 토지 매입에 성공해 1903년 지금의 타이난 신학원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일본 사학자 고마고메 다케시의 식민지 타이완 영국 장로교 학교 연구
일제시기 타이완의 영국 장로교의 활동을 연구한 일본의 저명한 사학자 고마고메 다케시(駒込武)는 타이완의 기독교계 학교를 역사의 축으로 영국인 선교사, 일본인 관료, 타이완인 기독교도 간의 관계를 고찰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는 1930년대 일본 관료 야스타케 다다오(安武直夫)가 타이완 문교부장으로 재임하던 당시 타이완 영국 장로교계 학교가 직면한 일본의 신사참배 문제를 연구했는데요. 야스타케가 1935년 조선의 평안남도지사로 이동하면서 타이완에서 벌어진 신사참배 문제가 식민지 조선에서도 발생, 당시 조선에서 주로 선교활동을 했던 미국인 선교사들이 이미 타이완에서 벌어진 신사참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영국인 선교사와 긴밀하게 연락하면서 야스타케 관료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는 사실을 밝혔는데요. (<생활 속의 식민지주의> 2007)
그는 이후 <‘타이완인의 학교’라는 꿈'> (《臺灣人之學校之夢》 2019, 일어 원서는 《世界史のなかの台湾植民地支配――台南長老教中学校からの視座》 2016)이라는 연구서를 발간해 타이난 신학원을 비롯해 영국 장로교가 일제시기 타이난 선교활동 중 벌인 전도 교육 사업을 영국인, 일본인, 타이완인이라는 삼각형의 구도에서 각각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특히 일본 식민시기 중 ‘타이완 교육령’이라는 교육 제도 하에 미션스쿨이라는 사립학교가 어떻게 협상가능한 형태로 존재했는지, 그 뒤에서 타이완 학생 및 신도들의 열망은 어떠했는지 매우 자세하고 꼼꼼하게 서술합니다.
폐교 및 복교
1940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타이완의 영국 장로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간섭이 심해졌습니다. 결국 일본인을 학교의 교장으로 임용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이를 승낙하지 않은 신학교는 결국 폐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수업을 중지하거나 폐교되는 상황까지 이르렀으나, 전쟁이 마무리되고 1948년 타이완 장로교 남부 총회에서는 만장일치로 복교를 결정했고, 교명을 ‘타이난 신학교’에서 지금의 ‘타이난 신학원’으로 변경해 첫 타이완인 목사인 황장후이 목사(黃彰輝, Rev. Shoki Coe)를 교장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개교 150주년 (2019년)
지난 2019년에는 타이난 신학원에서 개교 150주년을 맞아 최초의 타이완인 원장인 황장후이 목사(黃彰輝, Rev. Shoki Coe)의 이름으로 신학원 내 기념도서관을 개관했습니다. 개관한 날에는 황 목사는 물론 그 전에 타이완 선교를 위해 힘쓴 영국의 여러 선교사들을 기리는 감사예배를 열었고, 현재 타이난 신학원의 도서관은 무려 9만 권 이상의 책을 소장하고 있어 타이완 신학 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타이난 신학원을 들어가보면 캠퍼스 곳곳에서 유럽의 고전 건축물 양식 색채를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문을 들어가자 마자 펼쳐지는 예배당과 교사 건물은 밝은 회색 빛을 지닌 2층짜리 건물로, 그 외관은 둥근 아치와 끝이 뾰족한 첨탑, 장미 문양의 장식 등 로마네스크과 고딕 양식의 요소가 어우러져 마치 중세 유럽 광장의 한복판에 와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들이 이곳 타이난 신학원 캠퍼스에서 웨딩 촬영을 많이 한다죠. 1903년 설립되어 지금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타이난 신학원 건축물. 이 역사적인 건축물의 존재는 우리로하여금 그 속에 담긴 많은 사람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다시금 새길 수 있게 합니다. 일제시기가 단순히 일본인과 타이완인의 관계만을 담은 역사가 아닌 또다른 ‘이방인'인 영국인과의 갈등, 협상, 조정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타이난 신학원 건물은 말해줍니다.
서승임 徐承任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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