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기 중반인 1925년 타이중 호우리(台中后里)에서 태어난 한 사내 아이는 자신의 가족인 하카인 외에도 마을 주변으로 민난인과 일본인, 핑푸족 원주민 등이 살고 있어서 어려서부터 다양한 종족 사람들의 언어와 생활양식을 듣고 보며 자랐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접촉하며 자란 그는 이후 국립대만대학에서 역사과를 졸업하고 중앙연구원에서 란야족 원주민을 답사하면서 민족지와 인류학 연구에 매진하게 됩니다. 타이완 인류학자겸 민족학자 류빈송(劉斌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타이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문화를 해류로 본다면 타이완은 해류가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먹이가 풍부하고 물고기가 많이 모이는 크고 희귀한 어장이다. 이렇게 작은 섬에 핑푸족까지 포함하면 거의 400년 전에 타이완에 온 한족(chinese)과 이미 도피했지만 네덜란드, 스페인, 일본까지 여러 민족을 합치면 이미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20개 이상의 민족이 거주한 적이 있다. 타이완은 평탄한 섬이 아니며 높은 산이 즐비하고 지리가 복잡하여 이질성이 매우 높은 많은 문화나 민족을 보존할 수 있다. 또 세계지리의 각도에서 보면 타이완은 동서양교회의 기로에 놓여 있고, 문화의 발전과 변천 과정도 특별히 특색이 있어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타이완은 정말 사회과학의 일종의 ‘보물섬’이다!”
20여개 이상의 민족인 거주한 바 있는 보물섬 같은 타이완 섬. 이 섬의 중요한 민족 중 하나는 바로 원주민입니다. 중국 대륙에서 넘어 온 차이니즈, 한족과 달리 그 전부터 타이완 섬에 거주했던 원주민은 오스트로네시아족으로, 원주민들은 주로 타이완 섬 동쪽 고산 지대에 삽니다. 현재 2023년 타이완 정부 기준으로 법정원주민족은 모두 16족이 있습니다. 원주민족 이름을 하나씩 소개하면, 아메이족(阿美族), 타이야족(泰雅族), 파이완족(排灣族), 푸농족(布農族), 베이난족(卑南族), 루카이족(魯凱族), 저우족(鄒族), 사이샤족(賽夏族), 야메이족(雅美族), 샤오족(邵族), 가마란족(噶瑪蘭族), 타이루거족(太魯閣族), 사치라야족(撒奇萊雅族), 사이더커족(賽德克族), 라아루와족(拉阿魯哇族), 카나카나푸족(卡那卡那富族)입니다.
오늘 <대만주간신보>에서는 고산 지대에 살고 있는 다양한 원주민족의 마을 곳곳을 직접 답사해 처음으로 타이완 원주민 연구의 기초를 닦았던 일본 인류학자를 소개하면서, 타이완 원주민 연구의 출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타이완 원주민 연구는 일제시기부터 지금까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일제시기는 타이완 원주민 연구의 기초를 닦은 기간입니다. 일본 인류학자 이노 카노리(伊能嘉矩, 1867-1925) 등을 통해 선행된 타이완 답사 연구는 1900년을 전후해 타이완총독부 주도의 공식 조사 업무로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1928년 타이베이 제국대학이 설립된 후, '토속인종연구실'과 '언어학연구실' 등 타이완 원주민족의 특징과 언어를 연구하는 연구소가 설립되면서 조사와 연구를 이어가며 귀중한 타이완 원주민의 민족지학적 자료와 연구 성과를 많이 남겼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 학자들이 타이완 원주민을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참조하고 인용하는 문헌은 바로 이 시기에 출판된 것들입니다.
2020년에 출판된 <일제시기 타이완 원주민족 연구사(日治時代台灣原住民族研究史:先行者及其台灣踏)>라는 책을 통해 일제시기 타이완 원주민 연구를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 해석한 일본 학자 가사하라 마사하루(笠原政治)는 타이완 답사, 채집에서부터 1928년 출판한《타이완 원주민족 시스템 소속의 연구(台灣原住民族系統所屬之研究)》라는 학술저서 해석까지 원주민족 분류의 유래와 경과를 탐구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일제시기 타이완 원주민 역사를 1) 1895년 이후 이노 카노리, 토리 류조 등 선행 일본 인류학자의 타이완 답사, 2) 1900년 전후 총독부 주도의 공식 조사, 3) 1928년 타이베이제국대학 창설 이후 토속인종연구실 및 언어학연구실 설립의 조사연구, 이렇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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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소급해 연구하는 의미는 간과된 역사의 궤적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있다.” (가사하라 마사하루,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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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타이완 원주민족 연구를 선행한 세 명의 일본 인류학자에 대해 간단히 살펴봅니다. 가장 먼저, 이노 카노리(伊能矩, 1867-1925)는 타이완 연구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1895년 일본이 타이완을 점령하고 원주민 교육과 통치를 준비하기 위해 이노 카노리에게 인류학 조사 연구에 참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는 타이베이 신뎬(新店) 지역의 산 지역을 시작으로 곳곳의 계곡을 깊숙이 파고들어 각지로 이동했으며, 타이완 동남부의 헝춘(恆春), 베이난(卑南), 타이둥(台東), 치라이(奇萊) 등 깊은 산 속까지 답사했습니다. 그는 타이완 섬 한 가운데에 위치한 난터우현의 푸리(埔里) 지역을 중심으로 원주민을 남과 북으로 나누어 남부의 여러 원주민 종족들이 북부의 각 종족보다 지식 수준이 발달해 학교 교육이 성공할 것으로 기대한 반면, 북부 원주민은 난폭하고 사냥꾼의 습성이 있어 반드시 특별한 기관을 설치해야 교육에 성공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가 1899년 출판한 최초의 타이완 원주민 연구서인 <대만번인사정(臺灣番人事情)>이 책은 타이완 원주민이 체계적으로 분류된 최초의 완전한 논술이며 한화된 핑푸족도 처음으로 독립적으로 구체적으로 소개했습니다. 이 책에서 이노 카노리는 대만 원주민을 총 8족으로 분류하고, 각 종족들의 지리분포, 인구, 토속, 관습, 생업 등 제반 현황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기술했습니다. 또한 네덜란드 시기부터 청나라까지 원주민 교육 역사를 총괄해 최종적으로 타이완총독부가 워주민의 교육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노 카노리는 가장 처음으로 타이완 원주민의 포괄적인 분류를 제안했으며, 대만 각지에서 현장 조사를 통해 수많은 현장 노트와 연구 자료를 남겼습니다. 타이베이 제국대학은 창립 초기에 1925년 사망한 이노 카노리의 유족으로부터 그가 갖고 있던 풍부한 장서와 타이완 원주민 기물을 구입하여 도서관에 소장했는데, 이곳을 ‘이노 문고(伊能文庫)’라고 불렀습니다. 타이베이 제국대학의 후신인 국립대만대학교 도서관에서 현재까지 해당 기물과 도서들을 소장, 관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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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 카노리에 이어 다음은 토리 류조(鳥居龍藏, 1870-1953)입니다. 일본 시코쿠 도쿠시마 시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류학자 토리 류조는 일찍이 일본 인류학의 아버지인 츠보이 쇼고로(坪井正五郎) 박사를 사사한 바 있습니다.
1896년 여름, 26세의 토리 류조는 도쿄제국대학에서 파견되어 무거운 촬영 장비를 가지고 일본에 할양된지 1년도 채 안 된 타이완으로 인류학 조사를 떠났습니다. 이후 1900년까지 만 4년간 4차례에 걸쳐 타이완을 조사했으며 타이완 섬뿐만 아니라 그 주변 외도인 란위(蘭嶼) 섬과 뤼다오(綠島) 섬 등지에서도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타이완의 가장 높은 산인 옥산(玉山)을 원주민과 함께 등반했고, 중앙 산맥을 가로질러 산 속 깊은 미개한 지역까지 들어가 타이완 원주민들에 관한 사진과 현장 조사 기록을 남겼습니다.
토리 류조는 타이완 섬에서 타이완 원주민을 연구한 이후 중국 남서부까지 확대하여 타이완 원주민과 중국 남서부 소수민족에 대한 비교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타이완 원주민 연구가 끝난 1900년 이후에는 동북아시아로 연구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면서 쿠릴열도, 사할린, 동시베리아, 몽골, 중국 동북에서 한반도까지 그의 발자취가 남아있고 방대한 양의 고고학과 민족지 논문을 썼습니다. 대표적인 연구로 바로 동북아시아에서 처음 발견한 고인돌 연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후 토리는 1939년 베이징 옌징대학 석좌교수로 초빙되어 1951년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재직했으며, 2년 후 82세의 나이로 도쿄에서 사망했습니다.
토리 류조의 수많은 논문, 강의 원고, 서신 중에서 타이완과 가장 관련된 부분을 발췌한 책이 2021년 타이완에서 출판돼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探險台灣:鳥居龍藏的台灣人類學之旅》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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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토리 류조가 ‘타이완 원주민 조사의 1인자'라고 칭송한 다른 일본인 학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모리 유시노스케(森丑之助 , 1877-1926)다. 그는 앞서 설명한 이노 카노리, 토리 류조와 함께 일본인 최초로 타이완 원주민 조사에 나섰고, 이들 중 가장 많은 시간, 무려 30년을 타이완 땅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진 못했지만 사교적이고 호탕한 성격으로 원주민 마을 현장에서 원주민들과 가장 가깝게 지낸 학자로 유명합니다. 오히려 그는 원주민을 터부시하는 일부 일본 경찰과 관리 등 타이완에 거주하는 일본 상류 계층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1877년 교토에서 태어나 나가사키 상업학교를 수료한 모리 유시노스케는 중국어에 능통해 육군 통역 차 타이완에 와 1896년 화롄(花蓮)에서 토리 류조를 만나 함께 타이완 원주민 조사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조수와 안내자, 통역의 역할을 주로하면서, 토리 류조로부터 인류학 지식과 사진 촬영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1905년 식산국의 직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타이완 산간 지역을 답사할 수 있었습니다. 특유의 개성과 타이완 마을의 현장을 유독 사랑하는 모리 유시노스케의 열정은 당시 일본 정치인이나 군인들의 시야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인에게 원주민은 야만적이고 흉악한 존재였으며, 식민 정부는 지배를 목적으로 원주민을 빠른 시일내에 정복해 교화시키는 방식으로 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리 유시노스케의 견해는 달랐습니다. 그는 타이완 원주민들을 순수하고 온량하며, 외세의 위협을 받았을 때에나 자신의 인종과 땅을 보호하기 위해 죽음과 투쟁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비호하며 식민 정부의 올바른 이해와 존중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산림자원을 침범해 아무렇게나 벌목을 하는 일본 정부에게 원주민들이 그 땅에 살며 자신의 땅을 보호하기 위해 갖고 있는 특정한 금기사항이나 규정을 소개하기도 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끝내 일본 정부과 협상이 되지 않았던 모리 유시노스케는 1926년 투신했고, 4년 뒤인 1930년 타이완 원주민들의 최대 항일 사건인 우서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 서승임 徐承任 ([email protected])
참고문헌
鳥居龍藏 저, 楊南郡 역, 《探險台灣:鳥居龍藏的台灣人類學之旅》, 遠流, 2021.
笠原政治저, 陳文玲역, 《日治時代台灣原住民族研究史:先行者及其台灣踏查》, 國立臺灣大學出版中心,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