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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895>, 타이완 하카인의 항일운동

  • 2023.02.28
대만주간신보
1895년 타이완 섬을 침략한 일본 근위대에 저항하는 하카인 - 사진: 영화 의 한 장면

지금까지 <대만주간신보>를 약 두 달 간 진행하며 타이완의 항일 사건에 대해서는 한 번도 다룬 적이 없었습니다. Rti 한국어방송의 지난 프로그램에서는 타이완의 항일 관련 소재를 다룬 적이 여러차례 있었습니다. 타이완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인 1930년 ‘우서사건(霧社事件)'을 다룬 영화 ‘사이더커 바라이'(2011, 賽德克巴萊, Warriors of the Rainbow: Seediq Bale)의 개봉 소식을 전하며 관련 사건을 소개하기도 했고(2021/03/11 '전정한 사람이 되자' - 사이더커 바라이), 타이완 항일 작가인 라이허(賴和)가 1925년 <타이완민보>에 연재한 단편소설 ‘저울 하나’(一桿稱仔)에서 일본 정부의 경제약탈 정책과 무고한 타이완인을 괴롭힌 일본 경찰을 비판하면서 식민 통치에 과감히 반항을 호소하는 문학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2021/03/12 라이허 대표작 - 저울 하나) 타이완의 2.28운동, 한국의 3.1절을 맞아, 두 날에 희생된 수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오늘 <대만주간신보>에서는 일제시기 타이완에서 일어난 항일운동 중 이전 프로그램에서 소개하지 않았던 중요한 한 사건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타이완에서 최초로 하카 언어로 제작된 영화 <1895>(Blue Brave: The Legend of Formosa in 1895)는 1895년 청일전쟁 당시 타이완의 하카(客家, 객가)족 마음의 이야기를 그린 리차오(李喬) 작가의 소설 <이 땅에 대한 사랑>(情歸大地)을 원작으로 합니다. (하카족 출신 문학 거장 리차오)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한 댓가로 타이완에 상륙한 일본군을 대항하기 위해 항일 의병군을 조직한 하카인들을 다룬 이 영화는 2008년 개봉 당시 충성심과 의리가 있는 하카인의 특징과 당시 타이완 본토 문화를 잘 그려내어 타이완인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청일전쟁이 청나라의 패배로 끝나고 1895년 3월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면서 타이완섬이 일본으로 넘어가자 그 해 5월 추펑자(丘逢甲)를 비롯한 몇몇 타이완인들은 자체 민주국 수립을 주장하며 탕징송(唐景崧)을 총통으로 ‘타이완민주국(臺灣民主國)'을 설립합니다. 타이완 중서부 먀오리현(苗栗縣) 출신 하카족 신사인 남자주인공 우씨(吳湯興)는 타이완민주국으로부터 의용군의 지도자가 되라는 명령을 받고는 지역 주민들을 모아 의용군을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근위군은 가장 먼저 지룽항에 입성해 지룽을 점령했습니다. 이 때 루강 출신 구시엔룽(辜顯榮)은 타이베이 멍자 가문을 대표해 지룽에서 타이베이로 들어오는 일본군을 환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본군은 타이베이마저 점령했고 서서히 남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우씨가 이끄는 하카 의용군은 타이완 중부 문턱인 타이중과 먀오리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타이완 산악 지형을 잘 알고 있었던 이들은 게릴라 전술을 사용해 일본군에 대항했죠. 위협을 느낀 일본 친왕 요시히사 신노는 타이완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타이완민주국의 군대가 지원하기 전까지 우씨가 조직한 의용군은 일본군에 저항해야 했지만, 식량과 보급품 부족은 물론 일부 중국 장교들의 탈영으로 인해 상황이 많이 불리해졌습니다. 게다가 타이완 군대의 저항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 친왕은 ‘무차별 소탕’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일본 친왕은 전쟁을 조속히 끝내기 위해 먀오리보다 아래에 있는 장화현(彰化縣)의 바과산(八卦山)으로 의용군을 유인했습니다. 바과산으로 향한 의용군은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전쟁은 끝났습니다. 남진하던 일본 친왕도 결국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리는 항일 전쟁의 중심에는 타이완 하카인이 있습니다. 하카인은 현재 타이완에 살고 있는 한족(Han Chinese) 중 하나로, 타이완 인구의 다수인 또 다른 한족 민난인(閩南人)과의 인구 비율은 약 85대 15 정도 됩니다. 2010년 사용언어에 따른 인구 비율을 보면 타이완어라 불리는 민남어는 사용자는 81.9, 하카어는 6.6, 원주민어는 1.4, 기타 2.0죠. 이처럼 여전히 하카어를 구사할 줄 아는 하카인은 타이완 인구에 1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 소수이지만, 그들의 역사는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4세기 경, 중국 동진(東晉) 시기 황하 이북의 산시성, 허난성, 안후이성 주민들이 여진족과 몽골의 침략으로 남쪽으로 이동해 강남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살던 토착민들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 중국 강남의 지방정부는 북방에서 내려온 한족을 가리켜 ‘외지 사람'을 뜻하는 ‘객적(客籍)’이라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 용어가 현재 하카, 즉 객가(客家)라는 이름의 유래입니다. 하카 이름의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카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주와 유랑을 대표합니다. ‘아시아의 유태인'이란 별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니죠. 오랜 시간 동안 외부의 침입과 다른 집단의 권력 문제로 인해 이주를 많이 한 탓에 하카인들 사이는 매우 끈끈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렇게 화북지역에서 넘어와 화남지역인 광둥, 푸젠, 장시성 등에 거주하던 하카인들 중 일부는 청나라 강희, 용정, 건륭제 시대에 타이완으로 이주했다고 알려져있으며, 현재 타이완의 하카인 대부분은 이 시기에 이주한 사람들의 후손입니다. 지난 구정 연휴인 춘절, 먀오리현 난좡(南莊)에 사는 하카족 황(黃)씨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가족은 길이가 무려 5미터가 넘는 긴 종이에 손수 가족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 족보를 직접 쓰신 황씨에 따르면 이 집안 조상의 기원은 무려 기원전인 춘추전국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타이완에 넘어와서 정착한 타이완 1세대는 자신의 조부모로 1850년대에 태어나셔서 1870년대에 타이완에 건너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가족의 뿌리를 그 무엇보다 중시하고 사람 간의 끈끈한 의리와 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하카인들에게 있어 1895년 일본군의 타이완 입성은 침략이자 말그대로 ‘강점'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화 속 타이베이를 점령 후 남진하던 일본 친왕은 “진짜 본도인들이 드디어 출현했다.(終於出現了 真正的本島人)”라고 언급하며, 타이완 중부에서 맞닥뜨린 하카족의 대항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냅니다. 영화는 일본의 첫 식민지인 타이완에 입성해 타이완을 점령해가는 일본 친왕과 군대의 고민, 그리고 자신들의 가족과 영토를 지키기 위해 한 몸 아끼지 않는 강인한 하카인의 입장을 균형있게 다룹니다. 특히 영화는 친왕을 보위하는 의사로 함께 타이완에 건너 온 일본인을 화자로 삼아 하카족과 몸을 부딪히며 싸우는 근위대와는 거리를 둠으로써 비교적 문학적으로 다루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그리는 일본인들이 한국인의 눈에는 어느 정도 ‘미화'되었다고 보일 수도 있을 만큼, 타이완 점령에 대한 일본 측의 고민, 번뇌 등도 함께 다룹니다. 첫 식민지를 맞닥뜨린 일본인이 저항하는 하카인을 다루기 위해 고민하고 때로는 나약해보일 수도 있는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영화는 식민자와 피식민자 양쪽의 고군분투를 비교적 중립적으로 다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거듭된 전쟁으로 인해 사망자가 속출하자 일부 하카 가족 구성원은 그저 가족의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일본인이라 한들 상관없지 않겠냐며 저항을 그만 둘 것을 설득하지만, 젊은 하카 남성들의 패기와 자긍심, 그리고 자신의 영토를 절대 일본인에게 내어줄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은 가족들도 꺾지 못했습니다. 

1895년 을미년, 타이완에서 발생한 역사상 최대 전쟁으로 1년 안에 타이완 전섬에서 사망한 의용군은 1만 2천명이 넘었고, 결국 하카인들이 타이완 중부를 일본에 내어줌으로써 일본 친왕과 근위대는 전 타이완을 점령, 본격적으로 타이완의 일본 식민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타이완은 일본 제국의 첫 번째 식민지가 되었고, 그 역사는 1945년 8월까지 무려 50년이나 이어졌습니다.  

어쩌면 하카인들의 항일 전쟁 결과는 시작 전부터 정해져 있었을 지 모릅니다. 서양식 무기로 중무장한 많은 수의 일본군과 전장에 나선 사람 수도 적은 데다 무기 마저 전통적이었으니 말이죠. 당시 전장에 선 하카인들도 그 사실을 알았을테지요. 그러나 나와 내 가족, 내 고향을 소중히 생각하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하카인들의 뚝심과 의지는 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어 과감히 전장에 뛰어들게 했습니다. 타이완 하카인들의 투지를 보며 한국의 일제강점기 역사에서 우리가 목격한 한국인의 항일운동이 떠올랐습니다. 한반도 도처뿐만 아니라 저 멀리 만주에서까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과감히 맞서 싸우던 한국인들이요. 2023년 3월 1일, 제104주년 3.1절을 맞아 가족의 안위와 나라의 안녕을 위해 일본 제국에 대항한 순국선열들을 기리고, 불가피하게 일본의 침략과 식민 역사를 겪은 한국과 타이완의 공통된 역사를 기억하고자 오늘 <대만주간신보>에서는 1895년 타이완 하카인들의 항일운동을 다뤄보았습니다.

영화 <1895>, 타이완 항일운동의 한 단면과 타이완 하카인들의 투지, 그리고 한국과는 사뭇 다른 일제 침략에 대한 현재 타이완인들의 관점 등을 두루 엿볼 수 있는 좋은 영화입니다.

 

영화 <1895>(상) YouTube

영화 <1895>(하) YouTube

 

- 서승임 徐承任 ([email protected])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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