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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양수이신(楊水心) 여사의 첫 도쿄 여행 2

  • 2023.01.24
대만주간신보
1934년 양수이신이 친필로 쓴 서신 중 일부. 백화자를 배운 양수이신은 알파벳으로 민남어를 기록할 수 있었다. - 출처: 중앙연구원대만사연구소(中研院臺史所檔案館數位典藏)

일제시기 타이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대만주간신보>의 진행자 서승임입니다. 지난 주에는 타이중(臺中) 우펑 린가(霧峰林家)의 유명 정치운동가 린셴탕(林獻堂, 1881-1956)과 결혼한 양수이신(楊水心, 1882-1957) 여사의 일기를 들여다봤었죠. 1927년 남편 린셴탕과 두 아들이 유럽 여행하는 도중에 남편이 아파 타지에서 수술까지 했다는 소식을 기사로 접한 양수이신은 걱정을 금할 수 없었죠. 여행을 마친 남편이 일본 도쿄에서 요양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1928년 8월 1일 그녀는 두려움을 무릎쓰고 도쿄로 향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지난 이야기에 이어 양수이신이 도쿄 도착해 겪은 에피소드와 타이완 타이중으로 돌아간 양수이신의 활동에 대해 소개합니다.

1928년 8월, 처음으로 도쿄에 온 양수이신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사람을 청해 편지를 써서 타이완에 있는 친지들에게 안부를 전했습니다. 도쿄에 거주하는 친지들의 방문을 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숙소에 머물여 쉬었고, 남편과 자녀들과 그 동안 못나눈 서로의 근황과 집안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독이 풀리고 기운도 돌아왔습니다. 게다가 도쿄에서 직접 본 남편의 건강에도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양수이신은 타이완에서부터 몇 개월 간 품어왔던 남편의 건강에 대한 근심, 걱정을 하늘로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들, 딸을 데리고 멋진 도쿄 여행을 시작합니다. 

양수이신이 도쿄에 도착했을 때인 1928년은 5년 전인 1923년 발생한 관동대지진으로 시가지의 60%에 가까운 가옥이 전소되는 처참한 재해 이후 대대적인 복구가 한창 이루어지는 중이었습니다. 비록 도심 곳곳에 몇몇 건축 공사가 여전히 진행중이었지만, 대부분의 건물들은 이미 복구 혹은 재건축이 완료되어 마침 도처에는 생기가 넘치고 번영된 새로운 도시의 면모가 묻어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양수이신은 우선 도쿄 번화가의 중심인 긴자(銀座)에 도착했습니다. 넓은 길 위로 즐비한 상점들, 깔끔한 거리들이 그녀의 눈에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러 상점 중 가장 먼저 텐쇼도(天賞堂) 들러 손목시계를 바꿨습니다. 텐쇼도는 메이지 12년인 1879년 긴자에 생긴 가게로 텐쇼도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수입 시계와 축음기, 레코드, 그리고 각종 귀금속 등 타이완에서는 보기 드물거나 전혀 볼 수 없는 물건들이 즐비했습니다. (텐쇼도는 무려 현재까지도 가게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어 미츠코시(三越) 백화점에 들렀습니다. 다양한 볼거리와 전문 컨시어지 서비스도 있어 환경이 매우 쾌적했다고 양수이신은 기록했습니다. 미츠코시 백화점에서는 구경하다 지치면 식당에서 쉬면서 정식을 먹기도 하고, 특색있는 간식 거리를 즐길 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백화점이 당시 타이완에는 아직 없었던 터라, 양수이신은 도쿄 백화점의 쇼핑 환경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참고로 타이완 최초의 백화점인 기쿠모토(菊元) 백화점은 1932년 말에 생겼죠.

이후 간다(神田) 진보초(神保町)로 가 각종 서점들을 구경하고, 그 외에도 신주쿠(新宿), 히비야(日比谷) 공원, 아사쿠사(淺草), 요코하마(橫濱) 등지의 관광지를 돌아다녔습니다. 제국호텔에서 차를 마시며 춤도 감상하고, 우에노 공원에서 박람회를 관람하는 등 자연 풍경과 함께 현대 서양 건축과 전통 일본식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 풍경을 보면서 일본의 풍속과 민정을 깊이 체득하고 일본의 전통과 현대 문화의 정신을 음미했습니다. 영화 관람은 양수이신이 평소에 타이완에서도 즐겨했던 여가활동인데, 일본영화, 서양영화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한 그녀는 도쿄에 있는 동안 자주 극장에 가서 일본과 서양 영화를 보거나 연극 공연을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9월 초, 양수이신이 도쿄에 온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갈 무렵,  남편은 게이오기주쿠 대학(慶應義塾大学)에 가서 니시노 추지로(西野忠次郎, 1878-1961) 박사의 진찰을 받았습니다. 다행히도 별다른 심각한 질병 없이 약만 복용하면 되고 이제 남편이 온천에 가서 휴양해도 된다는 말을 들은 양수이신은 더욱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0월 8일 호라이마루(蓬萊丸)를 타고 고베항을 떠나 타이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생애 첫 도쿄 여정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타이완에서는 주로 타이중 우펑의 자택에서 생활하거나, 장화의 친정 방문을 하는 것이 전부였던 양수이신에게 이번 도쿄 여행은 쇼핑, 명소 투어, 친지 방문, 박람회와 미술 전시회 관람, 영화와 연극 공연 관람, 다양한 미식 체험 등 매우 다채로운 일정이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풍부하고 다양한 도쿄 관광을 통해 양수이신은 일본 도시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되었고, 새로운 문화를 직접 접하면서 시야와 식견을 넓힐 수 었었습니다. 훗날 1932년 장남인 린판룽(林攀龍)의 주도로 설립한 ‘우펑일신회’(霧峰一新會)라는 문예단체 활동에 참여할 능력과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공개 강연에도 나서는 데 좋은 토대가 되었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1882년 장화(彰化)의 인텔리 가문 출신 양안란(楊晏然)의 장녀로 태어난 양수이신은 어려서부터 글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양안란은 당시 일반적인 아버지와 달리, 여자가 책을 읽고 글을 쓸 줄 아는 것이 중요한 재능이라고 생각해 일찍부터 양수이신과 자매들을 모두 서당에서 교육 받게 했습니다. 1898년 17세 나이에 자신보다 한 살 위인 우펑 인텔리 가문의 린원친(林文欽)의 장남 린셴탕과 혼인한 양수이신은 슬하에 3남 1녀를 두며 살고 있었습니다. 우펑구 구청장(1901), 타이중청 고문(1911), 대만총독부 평의원(1921)을 지내면서 동시에 대만문화협회(台灣文化協會, 1921)를 조직해 총리로 선출되면서 공과 사에 바쁜 나날을 보내던 정치가 남편 린셴탕으로 인해  집안에는 빈객이 자주 드나들어 손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의례였고, 양수이신은 평소 끊임없는 손님에 응대하고 남편을 도와 각계각층의 친구들을 접대하는 일을 했습니다. 헌신적인 내조를 아끼지 않았죠. 

양수이신은 비록 근대 서양식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성격이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서 남편이 운영하는 대만문화협회에서 개최하는 다양한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여름학교’에 참가해 백화자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차이페이훠(蔡培火, 1889-1983)의 가르침 아래 알파벳으로 민남어(閩南語)를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입으로 말하는 언어를 직접 손으로 쓰는 수준”에 이르자 백화자를 원활하게 사용해 자신의 일기를 쓸 수 있게 된 것이죠. 또한, 일상이나 외출을 할 때에도 여가 시간을 이용해 『국어독본』(國語讀本)을 읽으며 일본어도 공부했습니다. 

게다가 1928년 첫 도쿄 여행까지 다녀 온 양수이신은 ‘우펑 일신회’에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우펑 지역 문화운동에 참여합니다. “우펑 지역 내의 문화를 촉진하고 참신한 기운을 널리 보급해 점차 자치의 정신을 확산시켜 새로운 대만 문화의 건설을 기약하는 것”이 목적인 우펑 일신회에서는 인근 마을의 글자를 모르는 남녀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각양각색의 문화활동과 체육활동을 주최했습니다. ‘한(漢)'문화를 보존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데 중점을 두었죠. 

양수이신은 위원회, 정기총회, 환영회, 바자회, 부녀친목회, 영화상영회, 하계강습회, 운동회 등 일신회가 주관하는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특히 매주 정기적으로 열리는 ‘일요강좌’는 특히 여성의 연설을 훈련하기도 했는데, 이곳에서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청중이 되기도 했고, 여러 차례 기조연설을 맡아 자신의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홍콩 여행담', '남부 여행담', '중국 여행담' 등 그녀의 여행 경험은 많은 사람들과 공유가능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여성과 문화', '남녀협력', '여성의 책임', '기회', '최근의 소감', '감정과 이성' 등 비교적 논설적인 주제의 내용도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양수이신이 고집 끝에 남편을 간병하러 도쿄로 여정을 선택한 과정은 린셴탕 부부 간의 깊은 애정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도쿄의 실제 도시 풍경, 더 나아가 양수이신이 몸소 보고 느낀 그녀만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특히 양수이신에게서 보여지는 행동력, 적극성, 독립성 등은 여성에게도 기회가 주어지면 가정생활 이외에 공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능력을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양수이신 여사의 일기가 우리에게 남긴 소중한 역사의 한 장면을 함께 했습니다. 

 

참고문헌

劉世溫, <燈火闌珊處: 楊水心的東京之旅>, 張隆志主編 《跨越世紀的信號2: 日記裡的台灣史十七二O世紀》 , 2021, 213-219.

楊水心女士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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