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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양수이신(楊水心) 여사의 첫 도쿄 여행 1

  • 2023.01.17
대만주간신보
2014년 출판된 『양수이신 여사 일기』의 표지. 그녀의 일기는 현재 1928년, 1930년, 1934년, 1942년 4권이 남아있다. - 사진 출처: 중앙연구원대만사연구소(中央研究院臺灣史研究所)

일제시기 타이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대만주간신보>의 진행자 서승임입니다. 저는 현재 국립대만대학교 음악학연구소에서 일제시기 타이완의 음악 역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 경험을 갖고 있는 한국인의 관점에서 일제시기 타이완 역사를 들여다보며 흥미로웠던 점이 있는데요. 바로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개인 일기를 중요한 사료로 여기며 잘 보존하고 있고, 심지어 대중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한 개인의 일상을 써내려 갔던 일기가 시간이 지나면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되죠.  타이완도 한국도 2000년대 이후 역사학자들의 관심이 '일상사'로 옮겨간 가면서 구술사나 일기 연구가 활발해졌습니다. 정치외교사나 사회경제사 등 하나의 '전체사'를 구현하기 위한 기존의 접근은 정작 역사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의 구체적 경험과 욕망, 가치관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죠. 일상사는 사회 구성요소인 개인, 가족, 마을 등 작은 단위들을 대상으로 이들의 감정, 가치관, 경험, 사고방식 등을 서술하면서 인간 경험의 다양성과 문화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오늘 <대만주간신보>에서는 타이중 우펑에 살았던 양수이신의 일기를 들여다봅니다. 장화 출신 양수이신(楊水心, 1882-1957)은 타이중(臺中) 우펑 린가(霧峰林家)의 유명 인텔리자 정치운동가인 린셴탕(林獻堂)과 결혼 후 일생을 타이중 우펑에서 지냅니다. 그녀의 일기가 특별한 이유는 일제시기 소수였던 타이완 지방 유지의 처가 쓴 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기를 통해 당시 타이완 지방 유지 계층의 생활 양식과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과 지위, 나아가 일기의 주된 내용인 친족, 친구 간 활동 등 일상사에 소재가 되는 내용들을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양수이신 여사 일기’ 중 그녀가 1928년 처음으로 도쿄로 가게 된 경위와 여정을 소개합니다. 

쇼와 3년인 1928년 8월 1일 오전 9시, 양수이신은 딸(林關關), 하인(陳秋福)와 함께 지룽에서 미즈호마루(瑞穗丸)를 타고 일본에 갈 준비를 합니다. 세명은 새벽 1시 25분에 야간 기차를 타고 타이중에서 출발해 아침 6시반이 되서야 타이베이 기차역에 도착했고, 잠시 친구들과 송별식을 갖고는 지룽 항구에 도착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끝내 일본 행 선박에 올라탔죠. 거대한 선박을 보자 양수이신의 마음은 흥분되면서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여행은 그녀가 처음 배를 타고 일본으로 향하는 여정인데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일본 여정이 도쿄에서 요양중인 남편 린셴탕을 돌보러 가는 것이었기에 남편의 몸상태가 어떤지, 곤경에 빠지진 않았는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5월 말, 양수이신은 린셴탕이 도쿄에서 보낸 전보를 받았습니다. 린셴탕은 이미 유럽과 미국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도쿄로와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전했습니다. 양수이신은 남편이 드디어 1년여에 걸친 유럽과 미국 여행을 마쳤으니 곧 도쿄에서 타이완으로 넘어와 재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며칠이 지나 형님(陳岑)으로부터 남편이 일본에서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을 것이라곤 생각치 못했습니다. 그녀는 그날 오후 급한 마음에 일본에 있는 남편에게 병세를 묻는 전보를 보낼 것을 부탁했습니다. 다음 날 오후 남편에게서 온 전보를 받았고 거기에는 “마음 놓아요.” 라고 써있었으나, 양수이신은 남편이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답장한 것이라고 걱정하며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양수이신은 집 사무원(林坤山)에게 가 도쿄로 가는 준비를 위해 선박 표 구매를 부탁했고, 장화 친정집에 있는 오빠(楊吉臣)에게도 도쿄로 가서 남편일을 돌보아야겠다고 전했습니다. 

6월 하순, 아빠 린셴탕과 함께 세계 일주를 한 둘째아들이 우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세 부자가 유럽과 미국에서 여행한 일들과 도쿄에 계신 아버지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양수이신은 남편이 현재 일본에서 어떻게 요양 하는지에 대해서는 완전한 소식을 알 수 없기에 마음은 여전히 불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며칠 후, 다시 친정인 장화로 가 친구와 함께 장화 천공단(天公壇)에 가서 기도도 하고 기부도 했습니다. 6월 말과 7월 초 도쿄에서 보낸 남편의 전보에는 도쿄로 오지말라는 부탁과 도쿄행 선박도 취소했으면 하는 내용이 있었으나  양수이신은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어 가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양수이신은 얼른 도쿄로 가 남편을 돌보면서 직접 두 눈으로 보아야 안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의 도움으로 배 표를 예매한 후 집안일을 정돈하고 연이어 친구들과 작별의 인사를 하고는 드디어 도쿄 여행 길에 올랐다. 첫 여행 길이 물론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해상에 바람과 파도는 고요하고, 항해는 순조로워서, 잠시 딸이 배멀미를 한 것 외에는 괜찮았다. 쉬는 시간에 그녀는 갑판 위에서 산책을 하거나 망망대해의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다. 딸, 하인과 말고도 같은 배에 탄 다른 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의 외로움도 달랠 수 있었다. 배는 일본 모지(門司)항을 거쳐 고베항에 도착했습니다. 셋째아들(林雲龍)이 마중 나와 모자는 기쁘게 만났고, 고베의 한 여관에서 휴식을 가졌다. 양수이신은 그제서야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인 1927년 남편이 직접 유럽과 미국 여행을 가야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던 게 생각났습니다. 그 때 너무 많은 생각이 복잡하게 들었지만, 남편이 1910년대 즈음 11살인 장남과 9살인 둘째아들을 데리고 도쿄로 유학갈 때부터 두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여행을 가겠다고 표현했던지라 거절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장남(林攀龍)은 1925년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과를 졸업하고 계속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 갔고, 차남(林猶龍)은 1926년  도쿄상업대학(현 히토츠바시대학一僑) 을 졸업했습니다. 원래 둘째아들이 졸업했을 당시 세계 일주를 실현하려고 했으나 온갖 일들로 인해 1927년 봄으로 미뤘고, 린셴탕은 각종 일들을 처리한 이후 당국에 여권을 신청하고 선박 표를 예매했습니다. 린셴탕의 친구들은 여행 소식을 듣고는 이런 장기 여행 대신 그 돈을 모아  『대만민보』(台灣民報) 출판에 사용하라고 권했지만, 런던에서 유학하는 장남도 있고 해서 그는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남편이 이번 여행을 위해 출발 전에 많은 일들을 처리 하고, 많은 사람들의 여행 기사를 보며 여행기록을 쓰는 기술을 연마하면서 이전 사람들이 갔던 여행지를 직접 찾는 등, 열심한 모습을 보니 양수이신도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죠. 그래서 1927년 5월 15일로 세 부자는 함께 유럽 미국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여행 중 세 부자는 집으로 전화를 하거나 전보를 보내 상황을 알려주어 양수이신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고, 여행을 시작한 해 8월 말부터 린셴탕은 『대만민보』에  「환구유기」(環球遊記) 시리즈 기사를 등재해 양수이신은 열렬한 독자가 되어 남편 여행의 실황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927년 8월 27일 유럽에 있는 남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9월 1일 친구를 통해 의사를 불러 진찰했고 진단이 치통이라해서 다음날 둘째 아들과 함께 치과에 간 린셴탕은 아픈 치아를 뽑아야 완치된다 한 치과의사의 말에 동의해 치아를 뽑았습니다. 왼쪽 관자놀이의 욱신거림이 완화되자 산책을 나가기도 했으나 왜인지 그 날 저녁이 되자 왼쪽 뇌 뒤쪽의 신경통이 더욱 심해졌고, 심지어 왼쪽 콧구멍에서는 고름이 흘러나오면서 악취까지 풍겼습니다. 두통의 원인이 오로지 치통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죠. 결국 코의 염증이 생겨 고름이 생긴 것이 원인이라는 것을 안 린셴탕은 결국 일주일 뒤인 9월 8일 낯선 외국의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했습니다. 수술 후 14일이면 퇴원 수속 절차를 밟아도 된다고 했지만, 13일 밤 갑자기 숨을 못쉬고 피투성이를 토해내기도 했습니다. 새벽 2시가 넘어서도 피가 멈추지 않았고  4시가 되어서야 겨우 지혈이 되었다. 린셴탕은 17일 오전이 되어서야 드디어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타이중에 있는 양수이신이 남편과 아들로부터 직접 받은 편지나 전보에는 모든 것이 평안하기에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양수이신은 그런 줄로만 알았다. 남편 린셴탕이 유럽 여행 중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남편의 「병중기사」(病中記事)를 보고 나서야 알게된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수술할 때 겪은 고통을 생각하니 양수이신은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유럽일주 후 도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양수이신은 자신의 첫 도쿄행을 결정합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양수이신이 1928년 도쿄에서  겪은 이야기와 타이완에 돌아와 활동한 내용에 대해 소개합니다. 

 

참고문헌

劉世溫, <燈火闌珊處: 楊水心的東京之旅>, 張隆志主編 《跨越世紀的信號2: 日記裡的台灣史十七二O世紀》, 2021, 213-219.

楊水心女士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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