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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타이완 3인의 조선 방문

  • 2023.01.10
대만주간신보
『대만신민보』(臺灣新民報)1933년 10월 4일자에 실린 3인의 조선 시찰 관련 보도(오른쪽부터 양자오자, 예칭야오, 예롱종) - 사진: 중앙연구원대만사연구소(中央研究院臺灣史研究所)

일제시기 타이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대만주간신보>의 진행자 서승임입니다. 지난 주 조선인 무용가 최승희의 타이완 공연에 관한 방송은 잘 들어셨나요? 지난번에는 도쿄에서의 인연을 바탕으로 최승희가 1936년 타이완을 방문해 순회 공연을 가진 이야기를 들려드렸다면, 이번에는 타이완인이 조선을 방문한 이야기를 들려드고자합니다. 

쇼와 8년인 1933년  10월, 타이완의 양자오자(楊肇嘉, 1892-1976)는 예롱종(葉榮鐘, 1900-1978), 예칭야오(葉清耀, 1880-1942)와 함께 부산을 시작으로 대구, 경성, 금강산, 원산, 성흥, 평양까지 총 13박 14일 동안  조선의 주요 도시를 방문했습니다. 

일제 식민 치하에서 타이완의 지방 자치와 문화 발전을 염원하고 적극 실천했던 양자오자는 1930년 8월 '대만자치연맹'(台灣自治聯盟)을 설립해 타이완과 일본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3년 뒤인 1933년, 오바마 조코(小濱淨鑛, 1886-1948) 타이완 총독부 내무국장은 양자오자에게 자신이 조선의 지방 자치 실정을 조사하기 위해 조선을 직접 시찰했고, 타이완에서도 조만간 조선에서 하는 방법을 모방해 실시할 것을 암시하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러자 양자오자는 조선에서 실시하는 지방자치제도가 궁금해 직접 조사할 필요성을 느껴, 대만자치연맹 제13회 이사회의에서 예칭야오,예룽중과 함께 조선에 직접 방문해 시찰하기로 결정합니다. 같은 해 10월 3일 타이중에서 출발해 4일 지룽에서 미즈호마루(瑞穗丸) 객선을 타고 타이완을 떠난 셋은 10월 8일 부산을 시작으로 경성을 거쳐 평양까지 조선의 주요 도시를 방문했습니다. 

양자오자를 비롯한 타이완 3인의 조선 방문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조선의 지방 자치 제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대만의 지방자치 제도 설립과 발전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양자오자와 함께 조선 방문에 나선 예룽중은 자신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타이완이 조선보다 먼저 식민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제도, 제국대학 설립, 지방자치제도, 징병제 실행 등 정치제도 설립의 측면에서는 주로 조선이 앞서고 타이완은 느리다. 이번 시찰의 목적은 조선의 선진 경험을 연구하기 위함이다." 라고요. 

셋은 10월 8일 일요일,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경상남도 내무부장의 관사를 방문해 경상남도 의회 의원을 역임한 김장태(金璋泰,  1886-1956)와 대담을 가졌습니다. 같은 날 부산 발 기차를 타고 대구로 간 셋은 대구 밤거리를 산책하며 당시 대구가 부산보다 훨씬 번화하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러면서 상업지구에는 일본인이 많지만 조선인도 적지 않다며 조선인의 구매력이 꽤 높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적기도 했습니다.

이튿 날인 10월 10일, 이들은 대구발 밤기차를 타고 경성으로 향합니다. 다음 날 아침 7시에 경성에 도착했고, 오후에 일간지 『동아일보』사장 송진우(宋鎭禹, 1890-1945)를 만납니다. 『동아일보』뿐만 아니라 『경성일보』와 일본 신문인 『오사카아사히』와 『오사카마이니치』 신문의 경성 지국도 방문, 당시 조선의 주요 언론사들을 찾아가 주요 인사들을 만났습니다. 12일  저녁에는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가 이들 셋을 데리고 명월관(明月館)에 가 기생의 노래와 춤을 관전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1903년 개업한 명월관은 궁중 요리를 민간에 선보인 요릿집이자 다양한 부류의 주요 인사들이 활동하던 식당이었죠. 지난 주에 소개했던 무용가 최승희도 당시 이곳의 단골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3일에는 『동아일보』 직원의 도움으로 조선인이 직접 경영하는 경성의 중앙고등보통학교와 경성방직주식회사를 방문했습니다. 다음날인 14일에는 영등포쪽으로 넘어가 농가 몇 호를 직접 방문해 농민들의 실제 생활도 탐방했고요. 15일 저녁 경성발 금강산행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향합니다. 18일 오전까지 금강산에서 등산을 하며 구룡폭포, 해금강, 금강산 4대 사찰인 신계사 등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금강산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제가 1930년대 타이완인의 진술과 기록을 통해 금강산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어 재밌는데요. 예룽중은 자신의 일기에서 동행한 양자오자가 뚱뚱한 체격으로 인해 금강산 등반을 힘들어했으며, 해금강은 상상했던 것 만큼 그렇게 좋지 않다는 등의 솔직한 심정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18일 기차로 금강산을 출발해 도착한 원산의 조선인 시장에서는 무척 더럽고 가난한 조선인들을 보고, 19일에는 성흥(成興)에서 경성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는 조선인 강원도 지사의 위엄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20일 개성을 떠나 평양에 도착한 이들은 도청에 가서 재무부장과 지방과장을 만나고, 평양에 소재한 상공회의소의 조선인 부회장과도 대담했으며, 기생학교, 빈민촌도 방문했습니다.  

양자오자, 예롱종, 예칭야오는 조선의 주요 도시를 방문해 각 지방 도시의 정경계 인사부터 조선 서민들의 일상까지 같은 식민지였던 조선의 면모를 구석구석 시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시찰에 관해 양자오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조선의 주요 인사 및 민간의 자치 단체들은 지방자치를 쟁취하기 위해 방문한 이웃나라 타이완의 "투사(鬪士)"를 극진히 환대했으며, 자신들은 법안 제정부터 세칙을 실시하고 실제 각계 각층에 빠짐없이 적용하는 구체적인 업무들을 배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고요. 조선 시찰을 마친 양자오자는 바로 일본 도쿄로 가서 나카가와 켄조(中川健藏, 1875-1944) 당시 타이완 총독과 오바마 조코 내무국장에게 이를 공유하고 일본 수상,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1858-1936)에게도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본 척무성에서는 타이완의 지방자치는 아직 시기 상조라며 당장 허가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11월 양자오자는 타이완으로 돌아와 '조선 지방자치 제도 고찰 보고서'를 작성해 타이완 사람들도 참고할 수 있도록 하고, 이듬해 5월 자신이 설립한 '대만자치연맹'을 일본 도쿄로 본사를 이전해 일본 내 타이완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해 일본 정부를 자극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타이완 지방자치 제도 설립에 열정을 받친 양자오자는 조선뿐만 아니라 만주국, 필리핀 등의 귀추로 실시간으로 주목했습니다. 그 와중에 이들의 조선 방문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1930년 이전 타이완의 주요 일간지인 『대만일일신보』(臺灣日日新報)에 실린 조선 관련 기사는 주로 '쌀 수출 경쟁자', '항일운동', '폭동', '폭민' 등과 같이 부정적인 측면이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조선을 조력자로 삼은 타이완 지식인들의 태도는 상당히 주목할 필요가 있죠. 

조선 방문을 마치고 이듬해인 1934년 5월, 다시 일본에 간 양자오자는 일본에 타이완 동포들의 수가 급증한 것을 발견했고, 도쿄 호치신문사 대강당에서 일본 거주 타이완인 천 여 명을 모아 '대만동향회'(台灣同鄉會) 개회식을 개최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유학중인 타이완 음악가, 장원예(江文也), 가오츠메이(高慈美) 등을 섭외해 이들을 데리고 같은 해 8월 향토방문연주회를 진행하기로 결정하죠. 1933년 가을 부산을 시작으로 경성을 거쳐 평양까지 조선을 순회하며 조선의 지방자치를 시찰한 양자오자는 이듬해 여름 타이완의 주요 음악가들을 이끌고 타이베이, 타이중, 타이난 등 타이완의 7개 도시를 순회하며 각 도시의 주요 공회당에서 음악회를 가졌습니다.   

 

참고문헌

葉榮鐘, 《葉榮鐘日記. 上冊》, 臺中市: 晨星發行, 2002, 65-69.

楊肇嘉, 《楊肇嘉回憶錄. 二》, 臺北市 : 三民書局, 1970, 275-280.

황선미, “일제강점기 대만 지식인에게 비친 조선”,  <中語中文學> 73, 2018, 339-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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