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이돌그룹을 중심으로 한 케이팝은 다양하고 세련된 음악과 강력하고 화려한 댄스 퍼포먼스로 2000년대 초반부터 아시아권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해외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세계로 뻗어나가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타이완은 한류의 본고장이자 중심지로서 역시 케이팝에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예컨대, 중국어 노래는 물론, 한국어 노래를 많이 부를 수 있는 노래방이 인기가 급상승하며, 한국 노래방 시스템을 이용하는 노래방도 잇따라 오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이베이 번화가 시민딩(西門町)이나 신이(信義)구 가면 젊은이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케이팝 커버댄스 영상을 촬영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타이완에서 케이팝은 정말 인기 많구나”라는 생각이 늘 들지만, 지난 19일 타이베이 CPC(타이완석유공사) 빌딩에서 개최된 K-pop 커버댄스ㆍ커버송 대회 참가자들의 퍼포먼스를 보고 케이팝에 대한 타이완 젊은이들의 열정과 사랑을 새삼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백명이 넘는 청중 앞에서 서투른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거나 좋아하는 아이돌의 노래 안무를 추면서 즐기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정말 빛나고 인상깊었습니다.
주타이베이 한국 대표부가 설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주최한 K-pop 커버댄스ㆍ커버송 대회는 커버댄스와 커버송 등 두 부문으로 진행됐으며, 열띤 경연 끝에 두 부문 각각 3팀(인)이 선발됐습니다. 커버송 부문의 1위 수상자 Chiu Yu Chuen은 맨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나왔고, 그는 노래를 부를 때 발음이 너무 좋았는데 알고 보니 중국문화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출신입니다. 그는 경연곡으로 여자 솔로가수 쏠의 <슬로우>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Chiu Yu Chuen은 <슬로우>는 바쁜 도시인의 빠른 걸음을 늦추게 하는 그런 노래이며, 이 노래를 자신과 같은 빠른 리듬 일색의 현대 사회에서 늘 자신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 성격의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이 노래를 선택했다”고 선곡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커버송 부문 1등 수상자 Chiu Yu Chuen(좌)과 이은호 대사(우) - 사진: 진옥순
커버송 부문 경연에 이어 커버댄스 부문 경연이 이어졌습니다. 케이팝 팬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케이팝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커버댄스 문화가 최근 10년 간 팬들 사이에서 유행이 되고 있으며, 팬끼리 커버댄스 그룹을 구성하고 영상을 녹화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도 합니다. 타이완은 이러한 그룹이 수십 개가 있을 정도로 커버댄스 문화가 굉장히 성행하는 국가이며, 이번 대회에서는 커버댄스 부문 본선 진출자의 수는 14팀으로 커버송 부문의 5팀보다는 거의 3배였습니다. 커버댄스 부문 경연에서 첫번째로 출전한 팀은 타이완 커버댄스계의 떠오르는 샛별 ENERTeeN(에너틴)’이었습니다.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난리가 났을 때 ENERTeeN은 오징어게임의 명장면 여아 인형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친 뒤 고개를 돌려 게임 참가자들의 움직임을 감지해 죽이는 장면을 모티브로 삼아 블랙핑크 멤버 리사의 솔로곡 ‘라리사’ 커버댄스 영상을 녹화해 유튜브에 올렸는데, 이 영상은 2주 만에 조회수가 775만 회를 돌파했고, 그때는 타이완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뛰어난 춤 실력과 인기로 그들은 파워폴대구페스티벌에 초청받아 대구 시민들에게 공연을 선보인 경험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날 커버댄스 부문 경연의 첫번째 출전자로서 지금 한국의 대세 보이그룹 세븐틴의 ‘손오공’ 커버 무대를 선사하며 남자 못지않은 에너지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여자니까 귀엽고 예쁜 춤만 추겠지”라는 인식을 타파하고 “여자여도 남자아이돌들이 파워폴하게 추는 춤을 멋있게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세븐틴의 손오공을 선곡했다고 ENERTeeN은 밝혔습니다.
사실상 타이완에서는 커버댄스를 하는 사람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더 많습니다. 남자아이돌 안무를 추는 젊은 여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항상 “여자 몸인데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올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그들의 춤 실력과 에너지에 매번 깜짝 놀라는 것 같습니다.
케이팝의 매력은 타이완 청소년 뿐만 아니라 학령기 아이까지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케이팝 유행에 맞춰 최근 몇 년간 타이완의 댄스학원들이 연이어 케이팝 커버댄스 수업을 내놓기 시작하였는데, 수업을 들으러 온 학생들 중에는 신기하게도 학령기 아이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 커버댄스 부문의 네번째 참가팀 10대 초반 아이들 5명으로 구성된 BBTS(BaBy Top Star)는 바로 같은 댄스학원 학생들입니다.
물론 댄스학원을 다니지 않고 스스로 배우고 연습하는 경우도 있죠. 올해로 11세인 Xu Pei Yun은 초등학교 때부터 케이팝 춤을 추기 시작했으며, 댄스학원에 가서 춤을 배운 경험이 한두 번이 있지만 대부분은 집에서 혼자 영상을 보고 따라해 보는 방식으로 연습합니다. 그는 케이팝을 좋아해서 한국에서 아이돌을 하는 꿈도 생겼는데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한국 기획사 오디션에 참가해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를 사로잡은 케이팝처럼 타이완 대중음악 ‘타이팝’도 타이완을 넘어 세계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을까? 심사를 담당한 쉬스홍(許世宏) 안무가는 “타이완 현직 가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꾸준히 활동하며 성공을 지속시키는 ‘지속성’”이라면서, ‘지속성을 높이려면 단일 영역의 천재가 되는 것보다는 느린 노래이든 신난 노래이든 케이팝 댄스이든 스트릿 댄스이든 모두 잘 소화할 수 있고, 심지어 예능 등 기타 영역도 섭렵하는 통재(通才)가 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연예인에게 또 다른 중요한 것은 지식을 쌓는 것이며, 책을 많이 읽고 전세계의 엔터테인먼트산업에 관한 소식이나 정보를 지속적으로 예의주시하며 꾸준히 자신을 성장시켜야 연예인으로서의 길에서 더 오래, 더 멀리, 더 넓게 갈 수 있다”고 쉬스홍 심사위원은 말했습니다.
타이완에서는 보컬, 춤, 퍼포먼스, 연기, 예능 등 모두 방면에서 재능을 보인 이른바 통재가 많이 나타나서 타이완 연예계와 음악계 발전을 끌어나가며 언젠가 ‘타이류, ‘타이팝’도 한류, 케이팝처럼 세계를 뒤흔드는 힘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