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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의 기독교 1/2

  • 2022.10.04
타이베이 토크
타이완 쟈이 아리산 저우(鄒)족 원주민족 부락의 교회. -사진: 백조미jennifer pai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2.10.04.

-진행: 노혁이, 백조미

-타이완의 기독교 1/2-

 

타이완에서의 기독교 발전사를 펼쳐보면 17세기(1620년대) 네덜란드 점령기와 스페인 점령기 때 각각 남부와 북부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시작으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가 전파된 17세기 초반 이후 타이완에서의 식민 통치권을 잃어버린 네덜란드와 스페인 사람들은 타이완을 떠나면서 기독교 발전이 중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1683년 청나라 강희 황제 시대 타이완을 판도에 넣었고, 타이난지역에 있던 정씨왕조는 사실상 멸망했으며, 이때부터 바다의 여신 마주여신을 모시는 사원들이 대폭 늘어났다. 즉 타이완에서의 대부분 종교 신앙은 당시 중국 각 지방의 신앙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전면적인 기독교 발전은 19세기 중반 영국이 당시 청나라와 불평등조약을 맺으며 문호개방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일본이 타이완을 통치할 때에는 기독교 등 종교 활동을 철저히 감시하였는데 그 당시 교회에 대한 탄압은 별로 없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따로 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졔스가 중화민국 정부를 타이완으로 임시 천도하게 되는데, 당시 본래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선교사들이 함께 타이완으로 건너오면서 기독교가 널리 전파될 수 있었다.

타이완의 기독교 신자는 전체 인구의 약 4% 정도된다. 개신교 가운데 70%는 장로교회이며, 장로교회에서는 민남어(타이완 사투리)로 예배를 드린다.

남부 핑둥의 천주교성당(만금성모성전)은 1861년에 시공하여 1870년에 주건물이 완공된 후 예배장소로 쓰여졌고 아직까지도 성당 건물이 남아있어, 현존 타이완 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건축물이다.

타이완에서의 현대 천주교 발원지는 청나라 함풍황제 9년에 세워진 남부 가오슝시에 있는 성모성전이다. 1859년에 세워졌었다.

교회로는 1916년에 세운 타이베이시 소재 제남(지난)기독교장로교회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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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면 항상 신기한 것이 있었다. 대만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사찰이 없고, 교회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만의 원주민들에게 토속신앙은 기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대만에 서양인이 들어온 것은 1624년 네델란드가 타이난에 들어오면서 남부를 점령. 38년간 대만을 통치. 또 1626년에 스페인사람들이 단수이와 지룽에 들어왔고, 스페인은 16년을 대만에서 보냈다.

그러면서 네델란드와 스페인의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했고.

그러나 1962년 정청공이 네델란드군을 몰아내면서 사실상 기독교도 네델란드사람들과 함께 대만을 떠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865년까지 200여년간 대만에서는 기독교의 선교가 중단되게 된다.

1858년은 청나라가 2차 아편전쟁에서 패해서 러시아/미국/영국/프랑스와 텐진조약을 맺은 해. 외국인의 중국 여행과 무역의 자유를 보장하고, 기독교 포교의 자유와 선교사를 보호할 것. 단수이, 타이난을 비롯해 모두 10개의 항구를 개발하는 것. 청나라는 조약 비준을 거절했지만,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텐진에 상륙해서 베이징을 점령해버렸고, 결국 1960년에 베이징 조약이 체결되면서 홍콩의 영국 할양이 추가되었던 역사.

하여튼 1860년 이후, 대만에 기독교 선교사들이 다시 들어왔다.

1860년 9월, 영국장로회는 샤먼(厦门)에서 선교하고 있던 카스테어스 더글러스(Carstairs Douglas)와 맥켄지(H. L. Mackenzie)를 대만에 파견, 선교 탐사를 하게 했다. 그들은 대만에서 민난(闽南)어가 통용되고 현지인들이 복음을 배척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대만선교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건의했다.

1865년 5월 28일, 영국장로회 소속 의료선교사인 제임스 맥스웰(James L. Maxwell)이 천쯔루(陈子路) 등 3명의 도우미와 함께 대만에 도착해 6월 16일 대만선교의 문을 정식으로 열었다. 대만에서는 이 날을 대만선교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는 타이난(台南)을 중심으로 의료선교를 전개하다가 현지인들의 심한 반발을 받아 결국 선교기지를 가오슝(高雄)으로 옮겨야 했다.

빈곤층을 중심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시작.

영국장로회는 계속 선교사들을 파송해 적극 지원했다. 맥스웰 선교사는 1868년 타이난에 병원을 설립했다. 그는 의료선교뿐 아니라 문서선교에도 상당한 공헌을 했다. 예를 들어 신도들이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영어 알파벳을 이용해 민난어를 음역한 민난어 성경을 출판했다.

북부는 남부보다 조금 늦게 캐나다 장로회 소속의 조지 맥카이(George Leslie Mackay) 목사가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1871년 12월 29일 가오슝에 도착해 언어와 풍습을 익히면서 선교 준비를 하다가 북부지역이 아직 복음의 미개지로 남아 있는 걸 발견하고 북부지역 개척을 자원했다. 그는 이듬해 3월 7일 타이베이(台北)의 단수이(淡水)에 도착했다. 대만장로회에서는 이 날을 북부교회선교일로 기념하고 있다. 맥카이 목사는 들판에서 목동들과 함께 생활하며 대만어를 배웠다. 그는 19세기 위대한 선교사의 한 사람으로 설교, 교육, 의술, 등의 은사를 갖고 북부의 선교 기지를 만들어갔다. 그중에서도 그가 배웠던 의학상식은 그의 대만선교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중요 요인 중의 하나가 됐다. 그는 전에 치과의료선교에 종사한 경험이 있어서 이가 아파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빼주며 고통을 덜어주었다. 게다가 선교사에 대한 혐오감과 적대의식을 제거하며 대만인들과 쉽게 관계를 맺어갔다. 그는 대만에서 모두 29년 동안 사역하면서 적어도 4만 개 이상의 이를 빼주었다고 한다. 2년 후 캐나다장로회는 프레이셔(J. B. Fraser) 목사를 파송해 맥카이 목사를 도와 대만 북부지역 선교를 강화했다. 그는 의사였기 때문에 맥카이 목사에게 큰 도움이 됐다. 맥카이 목사는 29년 동안 60개의 교회를 개척, 설립했으며 옥스퍼드중학교를 설립하고 많은 현지인목회자들을 양성했다. 대만장로회는 그의 선교정신을 기념해 타이베이 중심가에 한국의 세브란스병원과 같은 ‘맥카이기념병원’을 설립해 많은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1800년대 후반의 대만은 서양에 비해 문명의 발달이 더뎠던 시기. 그 당시에 신앙을 위해 대만이라는 먼 나라에 찾아오고, 대만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했던 선교사들은 정말 대단했던 사람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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