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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도 세레나데 1/2

  • 2022.08.30
타이베이 토크
여성 사상범을 다룬 다큐영화 '류마거우15호-流麻溝十五號'는 작년(2021년)11월14일 뤼다오(綠島)에서 정식 촬영에 들어갔다. -사진: 탄타이완영화 제공 via CNA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2.08.30.

-진행: 노혁이, 백조미

-녹도 소야곡

녹도의 슬픈 역사, 대만의 슬픈 역사 (1/2)

流麻溝十五號라는 영화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1950년대 대만의 백색테러白色恐怖 시기, 여성 사상범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그런데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포승줄에 묶여있는 청년들의 사진을 함께 보았다.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딱 봐도 웃을 상황이 아니라 좌우에 군인?간수?들이 붙잡고 있는 범죄자의 모습인데, 웃는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더 충격적이었다. 바로 사형집행 직전의 사진이라는 것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저렇게 웃는 얼굴은 도대체 뭘까. 궁금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1950년대 타이완 여성 정치사상범의 사실 사건을 각색한 다큐영화 '류마거우15호-流麻溝十五號' 홍보 이미지. -사진: 탄타이완영화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이 이야기를 하려면 두가지 이야기를 해야한다.

먼저 녹도, 그리고 백색테러.

우선 녹도. 정말 아름다운 섬이고, 그 훌륭한 경관은 아시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만한 섬. 요즘에는 스쿠버다이버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일본 강점기에 이 외딴 섬에 감옥이 생겼고, 국민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곳에 중범죄인, 특히 사상범들을 가두던 곳이었다. 1951년부터 70년까지 보안사령부의 갱생지도소, 그리고 72년부터 87년까지는 국방부 녹도 감훈 교도소.

1950년대 이곳 감옥의 이름이 무섭다. 新生訓導處신생훈도처. 그야말로 좌익 사상범을 데려다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개조하는 곳이었다. 오전에는 사상개조를 하면서 수업을 받고, 오후에는 자급자족을 위해 돼지를 키우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감옥.

대만은 백색테러, 즉 백색공포의 시대가 있었다. 1949년 장제스 국민당 정권의 계엄령 발령부터 시작되어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되기까지, 국민당 정권은 불순분자를 뿌리뽑고 권위주의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해 반체제 인사들에대한 숙청과 박해를 가했다. 14만명이 군사법원에 기소되어, 모두 3천~8천여명이 처형되었다는 집계가 있다.

한국도 이와 비슷한 슬픈 역사가 있다.

1947년 3월1일부터 1954년 9월까지 일제 패망이후 반란을 일으킨 남조선로동당의 인민유격대와 국군/경찰이 충돌하면서 밤에는 인민유격대와 좌익이 마을주민들을 죽이고, 낮에는 국군과 경찰이 나타나 의심이 되면 민간인을 처형했던 사건, 민간인 희생자들이 2만5천에서 3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1947년 2월 28일, 대만의 228사건. 대만 전역에서 일어난 민중봉기 사건., 중화민국 정부 관료의 폭압에 맞섰던 사건. 3만여명이 희생된 사건.

228사건 이후에 내전을 반대하거나 국공 평화 회담을 주장하거나 평화 건설과 민생 문제를 개선하라고 요구하는 사람이나 언론은 무조건 중국 공산당의 간첩, 파괴 분자, 음모 분자로 간주되었다.

백색공포의 시대는 참 슬픈시대이고, 수많은 사람의 자유, 사상, 언론이 제한되었던 시기다. 하지만 무작정 비난을 하기에는 그 배경은 복잡하다.

국공내전에서 국민당 군대는 430만, 공산당은 126만. 숫자로는 비할 수가 없는 내전이었다. 게다가 국민당군은 미군으로부터 전투기와 탱크를 지원받는 등 공산당군을 화력으로 압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국민당군 8백만을 전멸시키며 공산당이 승리. 패전의 가장 큰 원인중에 하나로 공산당의 스파이 활동을 꼽는다. 국민당군의 작전계획이 고스란히 노출이 되면서 공산당에 번번히 패배를 했기 때문. 그때 장제스는 이런 말도 했다고 들었다. 1천명의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1명의 공산당을 놔둘 수가 없다”

국민당 정부는 패전으로 타이완에 옮겨오면서, 공산당, 특히 좌익의 활동에 아주 대단히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 국민당 세력에 비판적이거나, 인권을 주장하고, 좌익 사상에 조금이라도 물든 기색이 보이면, 모두가 공산당 첩자라고 잡혀갔다.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하면 보통이 10년…

그렇게 녹도에 좌익사상범들이 모이게 되었다.

당시 사상범들은 20대, 30대. 엘리트들. 의사, 선생님 등. 이들은 자신의 사상이 왜 그렇게 커다란 범죄가 되었는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낮에 사상개조를 받으면서도, 좌익 사상에 더 매달렸다. 이때 몰래 숨겨온 펜과 종이로 사회주의 좌익사상서를 필사하고 다른 동료들에게 몰래 독려를 하는 일을 했는데, 이때 쓴 쪽지와 필사가 발각되었다.

1954년의 재반란안再叛亂案

한국전쟁이후, 대만은 미국에게 반공의 가장 모범적인 모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당시 1인1사양심구국운동一人一事良心救國運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정치범들이 혈서를 쓰고 정부를 추대하라는 요구. 그리고 한국전쟁때 잡혀온 중공군 포로들이 대만에 오면서 이들은 반공/멸공구호를 문신으로 새기는 일들이 있었다. 정치범들의 반대. 중공군 포로들은 대륙에 있는 가족들을 걱정. 해당 정책들이 실패하면서 정부가 예민하던 시기.
원래 1명이 사형을 받았는데, 장제스는 ‘엄중히 재심하라’는 명령. 결국 14명이 사형선고를 받고 총살을 당했다. 저 웃는 얼굴의 14명은 사형을 언도받고 신원확인을 위해 사형 직전과 직후의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저렇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33세, 32세, 29세, 26세, 25세… 60대 1명을 빼고, 20대가 7명, 30대가 6명이었다. 이들은 왜 웃었을까? 총살이라는 가장 엄중한 형벌 앞에서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같이 다 웃고 있다. 말도 안되는 판결에 웃음으로서 항거한 것일까? 오랜 여운이 남았다.

지금은 참 좋은 시대.

100년전에 태었났다면? 50년전에 태어났다면? 요즘 어떤 고민들을 하면서 살까?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하는 고민 말고.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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