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영화는 무엇인가요? 딱 하나만 꼽자면 저는 애니매이션 영화 <코코>를 꼽겠습니다. 멕시코의 최대 명절인 ‘망자의 날’을 배경으로 한 <코코>는 신비로운 사후세계를 다루며 흥겨운 축제 분위기 속에서 죽음을 재해석했습니다. 죽음을 금기시하는 환경에서 자란 저에게는 충격적이면서도 매우 반가운 영화입니다. 죽음이라는 것, 꼭 슬퍼야 할까요?
멕시코 전통에 따르면 죽은 자들은 매년 11월 1일과 2일인 망자의 날에 인간세계로 찾아오는데,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멕시코사람들이 10월 31일 저녁 캔들, 해골, 꽃 등으로 무덤을 장식하고 묘지에서 하룻밤을 잡니다. 이어 길거리에서 만수국을 뿌리고 등불을 켜서 조상들의 귀가길을 밝힙니다. 집에서는 제사상을 차려 망자의 사진을 놓고 영혼을 상징하는 촛불을 켭니다. 축제 기간 동안 모두가 해골 분장을 하고 성대한 퍼레이드에 참여해 죽은 자들을 기념합니다. 이토록 화려하고 초현실적인 카니발을 통해 죽은 자와 산 자가 하나가 되어 생명의 순환을 이뤄냅니다.
카니발 형식의 망자의 날과 달리, 타이완 전통 장례식은 눈물의 의식입니다. 유교 문화에서 우는 것은 감정 표현 뿐만 아니라 효도를 판단하는 기준인데, 장례식에서 울지 않으면 불효로 여겨질 수 있어 ‘대곡녀(哭喪女/孝女효녀)’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곡녀는 유가족 대신 울어주는 사람으로, 대부분의 경우 고인과 아는 사이가 아니라 배우처럼 연기력이 필요하고 때로는 고추, 민트 등 눈물을 유발하는 물품을 쓰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장례 관련 직업과 마찬가지로 불길하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대부분은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사업입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면서 지금은 농촌지역에서만 볼 수 있으나 이러한 슬픈 분위기는 이미 타이완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대곡녀 외에 초상집을 지나면 똑바로 쳐다보지 말고 피해서 다녀야 한다는 당부도 매우 전형적인 타이완 장례식 문화인데요. “죽음은 곧 슬픔이다”, “죽음은 불길한 것이다”라는 개념이 어릴 적부터 제 머릿속에 박혀 있었습니다. 따라서 죽음을 삶의 일부로 여기고 축제를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빈 망자의 날을 알게 되자 속에서 막혔던 무언가가 시원하게 뚫린 기분이었습니다. 애니매이션 <코코> 뿐만 아니라 블랙코미디 서사로 죽음을 제해석한 타이완 에세이이자 동명영화 <세븐 데이즈 인 헤븐(父後七日)>도 저에게 큰 충격을 가져온 작품인데요. 작가 류쯔졔(劉梓潔)는 이 작품을 통해 2006년 린룽싼문학상(林榮三文學獎) 에세이 대상, 그리고 2010년 금마장 각색상을 받았습니다. <코코>보다 훨씬 전에 나온 작품이지만 저는 몇 년 전 외할머님과 외할아버님께서 잇따라 돌아가신 후에야 에세이와 영화를 찾아서 봤습니다. 중국어 제목을 직역하면 ‘아버지의 사후 7일 간’인데, 저자는 유머스러운 필치로 타이완의 도교 장례문화를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런데 왜 ‘7일 간’일까요? 저자 아버지의 장례식이 7일 동안 치러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타이완인은 고인의 영혼이 사후 7일째에 집으로 돌아온다고 믿습니다. 타이완 내정부에 따르면 타이완의 장례식은 평균 13일이 소요되며, 장례식 길이는 길일 선택, 지방 풍습, 가족 논의 등에 의해 결정됩니다. 종교와 민족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보편적인 타이완 장례식은 고인 안치, 빈소 설치, 부고 알림, 입관, 영결식, 운구(출빈), 화장, 고인 봉안 등 8가지 절차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븐 데이즈 인 헤븐>에서도 비슷한 절차를 거쳤습니다. 우선 고인 사망 후 장례식장 또는 자택으로 이송하고, 자택으로 이송할 경우 시신냉장고를 빌려써야 합니다. 이어서 장례식장이나 자택에서 빈소를 설치하고 부고를 알립니다. 7일째에 불사를 치르는 경우도 있고, 7일 이내 장례를 마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입관은 고인을 목욕, 분장시키고 관 속에 넣는 절차입니다. 입관 이후 고인은 ‘빈’객이 되어 출’빈’, 즉 운구를 기다립니다. 이 때 영결식이 시작되며 가족을 대상으로 한 가제(家祭)와 일반 지인을 대상으로 한 공제(公祭)로 나뉩니다. 마지막으로 화장을 거쳐 납골당에 고인을 모십니다.
절차만 보면 그렇게 복잡해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일은 쉬울 리가 없죠. 류쯔졔는 타이완 언론 womany(女人迷)와의 인터뷰에서 “《세븐 데이즈 인 헤븐》을 쓰기 전에 나는 수동적인 상태에 처해 있었는데, 장례식의 기이한 광경을 보고 너무 놀라서 쓰기 시작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저자는 에세이의 첫머리에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여정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한 마디를 통해 장례식 기간에 벌어진 많은 황당한 일들을 끌어냈습니다.
이 여정의 첫번째 역은 구급차인데요. 저자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저택으로 이송하는 동안, 구급차 기사는 저자에게 예수님을 믿느냐 부처님을 믿느냐고 물은 후 녹음테이프를 뒷면으로 돌려 다시 카세트에 넣자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이 때 저자는 “그럼 정면은 ‘할렐루야 할렐루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집에 도착한 후 장녀인 저자는 도사의 지령에 따라 수시로 상복을 입고 비통하게 울부짖어야 하는데, 밥을 먹다가, 이를 닦다가, 화장실에 가다가 도사의 목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제쳐놓고 관으로 뛰어가야 했습니다. 영화에서 구체화된 이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흘째가 되던 날, 영결식에 쓸 아버지의 사진 때문에 집안이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캐주얼한 사진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고, 정장을 입은 사진로 하자는 의견도 있고, 결국 사진 편집 프로그램의 강한 기능 덕분에 분쟁을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닙니다. 친척들이 보낸 ‘캔탑’이 강한 햇빛에 견디지 못해 터졌는데, 온 가족이 집에서 나와 무너진 캔탑을 치우고 끈적끈적한 사이다 비를 맞았습니다. 캔탑(罐頭塔)은 통조림이나 캔음료를 겹쳐 쌓아 만든 탑으로, 이웃간의 공조를 보여주는 장례용품입니다. 장례식 화환과 비슷한 겁니다.
통조림이나 캔음료를 겹쳐 쌓아 만든 타이완 장례용품 캔탑(罐頭塔) - 사진: https://wanyi888.tw/?sid=8918
어처구니없는 일련의 사건 끝에 7일째를 맞았습니다. 저자는 아버지의 영혼을 찾으면서 아버지의 몸을 화장로로 보냈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후 긴장이 풀리자 온 가족은 자금을 모아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짜와 시간, 그리고 화장의 순서 번호로 로또를 샀는데, 당첨금이 꽤 나왔습니다. 이때까지 저자는 전혀 슬픈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대곡녀처럼 울었을 때도 연기자 같았습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서야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시 비행기를 타고 있는 저자는 면세품을 판매하는 승무원을 보고 아버지에게 담배 한 갑을 사려고 생각하던 중 아버지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이 때 착륙준비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기장의 목소리는 아버지처럼 들리며 마치 이 터무니없는 여정의 종착지를 예고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국 배우 캐럴 버넷(Carol Burnett)은 “비극에 시간이 더해지면 코미다가 된다(Carol Burnett)”고 말했습니다. 류쯔졔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감정적인 서사를 택하지 않고, 웃음이 터지게 하는 필치로 뿌리 깊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죽음을 재해석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 꼭 슬퍼야 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엔딩곡으로 <세븐 데이즈 인 헤븐(父後七日)> 영화에서 주인공과 아버지가 함께 부른 노래, ‘상심주점(傷心酒店)’을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관점에서 죽음에 접근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드립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劉梓潔,《父後七日》。
2. 張堪節,「世界文化遺產之一墨西哥亡靈節:溫柔看待死亡、優雅慶祝生命,一探背後由來與象徵意義」,太報。
3. 「喪事流程天數平均13天,但你曉得喪禮流程儀式有哪些嗎?」,冬瓜行旅。
4. 蔣亞妮,「專訪劉梓潔:我們是沒有足夠大故事的一代,但我們不是末世」,女人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