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폭염, 폭우, 홍수, 가뭄, 산불 등 이상기후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보면 이러한 현상은 인류가 생존과 발전을 위해 고향을 오염시킨 자업자득인 셈입니다. 그럼 만약 인류가 재난영화처럼 갑자기 사라진다면 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미국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Alan H. Weisman)이 작성한 과학논픽션 《인간 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에서는 인간이 사라진 지 1일 후부터 50억 년 후까지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다루고 있는데, 인류멸망으로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생물체의 번성은 물론 저자는 인류가 남긴 흔적에 대해 많은 편폭을 할애했습니다.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소에서 원자로 노심에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발전기가 비상 연료까지 소모하면서 작동을 멈추면, 냉각수는 끓어 증발해 버릴 겁니다.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자 전 세계 400여 곳의 원자력 발전소가 과열되어 불타기 시작하고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유출될 겁니다. 인간이 사라져도 인간이 남긴 죽음의 재는 망명처럼 전 세계를 떠돌아다는 겁니다. 이 책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과학책을 소개하는 한국 유튜브 채널 ‘북툰’이 제작한 관련 영상을 추천드립니다.
지구에 비해 극히 짧은 역사를 가진 인류는 이 행성을 지배하면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영화로 각색되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SF소설 《듄》처럼, 우리는 끝이 없는 탐욕과 이기심, 유전자까지 지배하려는 자만심, 구세주를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어리석음 등으로 스스로를 멸망시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며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통해 세상을 탐구한 이 소설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미미한 존재에 불과함을 일깨워 줬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사라진다면 인류의 문명에도 종말이 찾아올까요? 《인간 없는 세상》에서 작가가 말했듯이 인간이 남긴 흔적은 세월의 힘으로 서서히 사라질 겁니다. 최근 인류 문명의 붕괴를 막기 위해 미국 아치미션재단(Arch Mission Foundation)은 영어판 위키백과에 수록된 600만 편의 글,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중 7만 권의 전자책,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작품 등을 달로 보내는 ‘아치 루나 아트 아카이브(Arch Lunar Art Archive)’ 프로젝트를 선보였습니다. 세 차례 시도 끝에 지난 2월 22일(현지시간) 인류 지혜의 결정체를 실은 ‘오디세우스’가 성공적으로 달 표면에 착륙했습니다. 미국 우주선으로는 1972년 12월 아폴로 17호 이후 52년 만이고 민간기업으로서는 세계 최초입니다. 주최 측은 프로젝트에 선정된 작품들은 나노기술로 니켈 금속 디스크에 조각되어 있으며 달에서 5천 만 년 이상 보존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이 중에서는 타이완 작가와 예술가의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술계에서 눈부신 성과를 보인 아티스트들 외에 타이완 시인 ‘눈을 삶는 사람(煮雪的人)’이 지은〈달의 박물관〉은 달에 발을 디딘 유일한 중국어 신시입니다.
우주선에 실은 니켈 금속 디스크 - 사진: 아치미션재단 홈페이지
지난 2018년 발표된〈달의 박물관〉은 미국 조각가 포레스트 마이어스(Forrest Myers)가 팝 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Andy Warhol)을 비롯한 아티스트 5명과 함께 이미지를 유심카드 크기의 세라믹 웨이퍼에 새긴 뒤, 몰래 아폴로 12호에 붙여 달에 보낸 동명 프로젝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눈을 삶는 사람은 페이스북에서 “이 시는 추상적인 달을 이야기하는데, 실제의 달에 오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며, “지금 달에는 두 개의 달의 박물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나의 일부는 달에 있고 나는 달에서 눈을 삶는 사람”이라며 재치있는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이름부터 독특한 매력을 선보인 눈을 삶는 사람은 2010년 19살의 젊은 나이로 시의 간행물 《뜨거운 시간(好燙詩刊)》을 발행해 편집장을 맡았습니다. 국립타이완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천젠난(陳建男) 교수에 따르면,《뜨거운 시간》은 시의 새로운 구조와 형식을 추구하며 평온함에서 기발함을 보는 미학을 주장하고, 지난 2020년부터는 팟캐스트에서 시를 낭독함으로써 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눈을 삶는 사람은 지난 2021년 〈달의 박물관〉을 수록한 시집 《발버둥치는 조개류(掙扎的貝類)》를 통해 타이베이국제도서전 문학상 후보에 오랐는데, 이는 문학상 개최 이래 후보에 오른 첫 시집입니다. 그는 소설과 시를 결합한 ‘소설시’라는 기법으로 저자와 서술자 간의 거리를 두게 하고, 독자들이 스스로 작품을 해석하도록 창작해 왔습니다. 시인 샹양(向陽)은 “ 눈을 삶는 사람은 타이완의 소설시를 개척한 첫 번째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이미 달나라에 간〈달의 박물관〉에서 서술자가 달을 탐구하기 위해 ‘월’이라는 마을에 갔는데, 한 마을주민은 서술자에게 “달을 알려면 기차를 타고 달의 박물관에 가야 하고, 월을 알려면 이곳에서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데, 나는 여기서 평생 살아도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마을에 1년 동안 머무른 서술자는 결국 기차를 타고 달의 박물관에 갔다 왔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습니다. 그는 “나는 월이라는 마을을 방문했으나 달은 멀어져만 간다”고 말하자 뒤에 서 있는 역무원은 “달이라는 곳, 오직 이곳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강렬한 햇빛과 달리, 부드러운 달빛은 어머니처럼 신비로운 힘을 지닌다고 여겨집니다. 예로부터 세계 곳곳에 달에 관한 전설, 신화, 신앙이 적지 않고 달에 대한 탐구도 끝이 없습니다. 도대체 달이란 무엇인가요? 인류가 달에 발을 디딘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달을 알지 못합니다. 이 시는 소설같은 서사를 통해 달에 대한 무궁한 상상을 그려냈습니다.
한편 이번 프로젝트에 미국 조각가 제프 쿤스(Jeff Koons)의 작품 ‘월상(Moon Phases)’도 있는데요. 해당 작품은 투명한 입방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5층 구조에는 지구와 우주에서 볼 수 있는 125개의 월상 조각이 있습니다. 모든 월상 조각 위에는 석가모니, 예수,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마릴린 먼로, 제인 오스틴 등 인류 문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달로 보낸 조각 뿐만 아니라 보다 큰 사이즈의 월상 조각은 지구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글과 예술품 외에 시대정신을 잘 담은 노래들도 함께 달로 떠났는데요. 주최 측은 “평화가 절실히 필요한 지금, 우리는 사랑의 뜻을 지닌 노래들을 달로 보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럼 엔딩곡으로 이미 달나라에 있는 락앤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노래 ‘Can't Help Falling in Love’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달에 오를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랑이 가득한 메시지가 이미 달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앨런 와이즈먼,《인간 없는 세상》
2. Nova Spivack, <Third Time’s a Charm — Lunar Library Successfully Lands on the Moon — Backup of Human Civilization Will Last for Up To Billions of Years>
3. 煮雪的人,〈我的作品被送上了月球〉。
4. 煮雪的人,〈月球博物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