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밥의 민족’이라 불릴 만큼 밥에 진심인 한국인은 밥으로 통하는 인사말이 참 많죠. 사람을 만나자마자 “밥을 먹었어요?”라고 인사하고, 헤어질 때는 “나중에 밥 한 번 먹자”로 대화를 끝냅니다. 밥없이는 살 수 없듯이 밥은 한국인의 일상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밥을 주식으로 하는 타이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이완어 속담에 “밥먹을 때는 황제나 다름없다(食飯皇帝大)”는 말이 있는데, 아무리 급한 일이 있더라도 밥은 언제나 최우선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밥을 맛있게 잘 먹는 사람은 복이 많고 항상 행운이 따른다고 여겨집니다.
그럼 문학은요? 책을 즐겨읽는 사람은 독서광 또는 책벌레, 심지어 독서 오타쿠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는데, 밥처럼 복의 상징이 될 수 없나요? 중국 송나라 시인 황정견(黃庭堅)은 “사흘 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추해진다”고 말했습니다. 책은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을 담은 중요한 기록으로 지혜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압축하거나 문장을 정교하게 다듬음으로써 문학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밥처럼 문학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 없나요? 혹은 문학을 평범하게 만들 수 없나요?
타이완 문예지 《연합문학(聯合文學)》이 타이완 최대 마트인 취안리엔(全聯)과 손잡아 지난 1월부터 오는 4월 11일까지 ‘먹을 수 있는 문학: 빵과 문학의 만남(閱讀麵包嚼文學)’ 특별 프로젝트를 선보여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취안리엔 자체 브랜드에서 출시한 총 30종의 빵은 포장에 예쁜 글이 실려 있는데요. “눈으로 문학을 맛보고, 입으로 빵을 읽는다(用眼睛嚼文學、用嘴巴讀麵包)”는 취지 아래 《어린 왕자》, 《모비딕》, 《카라마조프의 형제》등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문학작품 뿐만 아니라 타이완 작가 20명이 초청되어 각자 좋아하는 빵을 위해 글을 썼습니다.
과거 방송에서 소개해 드린 바 있는 작가 우샤오러(吳曉樂), 양솽즈(楊双子), 홍아이주(洪愛珠), 천쓰홍(陳思宏), 샤오이후이(蕭詒徽) 외에 작가 옌수샤(言叔夏), 홍홍(鴻鴻), 마오치(毛奇), 중원잉(鍾文音), 황리쥔(黃麗群), 마신(馬欣), 루이안(盧怡安), 장우이중(張維中), 리하오(李豪), 성하오우이(盛浩偉), 양자셴(楊佳嫻), 장타이위(姜泰宇)와 라디오 DJ 마스팡(馬世芳), 평론가 와리(瓦力唱片行), 싱어송라이터 천산니(陳珊妮) 등이 참여했습니다.
프로젝트 기획 과정에 관해 왕충우이(王聰威) 《연합문학》 편집장은 “마트에 진열된 빵은 연합문학이 독자들에게 추천하고자 하는 책이며, 빵 포장에 있는 글은 책 표지에 표시된 줄거리처럼 빵의 맛을 총괄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디자인 담당자 궈링위(郭苓玉) 디자이너는 “문장을 포장에 올려놓은 과정은 독서를 실체화하는 것이고, 타이완 아침가게에서 파는 밀크티 컵에 적혀있는 농담처럼 우리의 눈길을 쉽게 끌 수 있다”며, “컬러 디자인의 경우 대부분 빵의 맛을 직접 연상시키는 색상을 선택했고, 딸기빵은 핑크색, 초콜릿빵은 진한 갈색으로 하여 책표지를 디자인하듯 빵의 특색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 샤오이후이와 성하오우이도 각각 소감을 밝혔습니다. 샤오 작가는 “예전에 친구와 같이 전병에 시를 쓰고 말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시집을 만들고 싶었는데, 이번 프로젝트에 초청되어 꿈이 이루어졌다”며, “초등학교 때 매달 용돈은 10뉴타이완달러(한화로 약 420원, 2024/3/5 기준)밖에 없어서 학교 매점에서 빵만 샀었는데, 이와 같은 씁쓸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를 써봤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럼 프로젝트에 관한 소개는 여기까지 잠시 멈추고 이어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타이완 대표 음악 프로듀서이자 싱어송라이터 천산니(陳珊妮)의 노래 ‘대단한 평범인이 되기(成為一個厲害的普通人)’를 띄워드리겠습니다. 천산니의 노래는 문학성이 강한 가사를 통해 삶과 철학을 음악으로 풀어낸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성 작가는 “애초에 빵을 주제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마트 측은 작가들이 자유롭게 창작하도록 보장해서 결국 빵과 관련이 없는 작품도 통과됐다”며, “때로는 직설적인 표현보다 우회적인 은유가 문학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데, 이번 프로젝트는 문학을 존중한다는 최고 원칙 덕분에 좋은 케미스트리를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빵을 통해 얻은 영향분은 음식이 준 물리적인 양분과 독서가 준 정신적인 양분을 동시에 의미한다”며 프로젝트 취지의 이중성을 긍정했습니다. 이에 궈 디자이너는 “문예창작과 출신이면 문학은 성스러운 공간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는데, 현실은 대부분 사람이 실생활에서 문학을 접하기가 매우 어렵고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문학의 접근성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사실 《연합문학》이 식품업체와 콜라보하여 한정 상품을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21년 카라멜 캔디 업체 창립 60주년을 맞아 《연합문학》은 ‘사계절 캔디 프로젝트’를 선보인 바 있는데요. 사계절에 맞는 특수 맛과 포장 외에 타이완 시인 12명이 작성한 사랑의 시도 마련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맛을 선택해 운세뽑기처럼 오늘의 사랑 운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당 콜라보의 성공으로 지난 2022년 2차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사계절에 이어 이번은 20대, 30대, 40대, 50대 유명인 중 각각 대표 한 명을 뽑아 해당 세대를 위한 문장을 준비했고, 또 치밀한 통계 작업을 거쳐 각 세대를 대표하는 맛을 선정했습니다. 생각과 달리 20, 30대는 비교적 어른 입맛으로 여겨진 다크 초콜릿, 모카커피, 40대는 차, 50대는 달콤한 딸기맛을 선택했습니다.
《연합문학》이 지난 2021년카라멜 캔디 업체와 협력해‘사계절 캔디’를 선보인 바 있다. - 사진: 연합문학
문학과 식품의 만남하면 타이완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료의 하나인 ‘음빙실차집(飲冰室茶集)’을 절대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음빙실차집은 타이완의 국민 밀크티로 홍차밀크티, 녹차밀크티, 우롱밀크티 3가지 맛이 있습니다. 브랜드명은 중화민국 건국 초기의 계몽 사상가 량치차오(梁啟超)의 서재 ‘음빙실(飲冰室)’에서 비롯되며, 1920년대의 문예 분위기를 현대로 가져오기 위해서 ‘시와 봄빛으로 차를 마신다(以詩歌和春光佐茶)’는 슬로건을 내세웠습니다. 음빙실차집은 해마다 시 공모전을 개최해 수상작을 음료 포장에 싣습니다. 정통에 충실한 작품 외에 인터넷 시대에 맞고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창의적인 시도 많이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민초파와 반민초파 분쟁처럼 3가지 맛은 각각 팬덤이 있어서 그 맛의 특성에 맞게 쓰는 것도 수상 여부를 결정하는 포인트입니다.
매년 시 공모전을 개최하는 밀크티 브랜드 '음빙실차집(飲冰室茶集)' - 사진: 안우산
앞에 소개해 드린 다양한 콜라보 프로젝트를 통해 이제 문학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건조하고 딱딱한 글을 두려워한다면 맛있는 빵, 달콤한 캔디, 또는 한 번 마시면 멈출 수 없는 타이완 국민 밀크티부터 시작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慢讀食光】全聯READ BREAD x 《聯合文學》雜誌〉,聯合文學。
2. 〈四季之詩牛奶糖 台灣森永X聯合文學雜誌〉,聯合文學。
3. Mr. Yesterday,〈【冷知識週刊】第八十七號:飲冰室茶集的主人是飲冰室主人?〉,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