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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무엇인가… 천스홍(陳思宏) 《괴상한 곳(鬼地方)》

  • 2023.09.11
포르모사 문학관
타이완 작가 천스홍(陳思宏)의 두번째 장편소설 《괴상한 곳(鬼地方)》 - 사진:Eslite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이번주 목요일은 귀신의 문이 닫히는 날, 음력 7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한 달 동안 인간세계에서 머문 귀신들을 저승으로 보낼 수 있도록 이날에 과자, 라면, 캔식품 등 간편한 제물로 제사를 지냅니다. 풍성한 중원푸두(中元普渡)와 다르게, 저승에서 11개월을 보내기 위해서는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고 휴대하기 편한 식품이 필요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작품은 중원절을 배경으로 한 소설 《괴상한 곳(鬼地方)》입니다. 타이완에서 황폐하거나 살기 어려운 곳이 ‘귀지방(鬼地方)’이라 불리는데요. 타이완섬을 ‘귀도(鬼島, 귀신의 섬)’로, 한국을 헬조선으로 묘사하는 것도 비슷한 상황이죠.  2019년 타이완 작가 천스홍(陳思宏)은 고향 장화(彰化) 융징(永靖)을 ‘귀지방’으로 묘사해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괴상한 곳》을 출판했습니다. 융징은 타이완 중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소설이 출판되자 타이완 문학의 최고전당인 금정장(金鼎獎)의 문학도서상과 타이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2020년 《괴상한 곳(鬼地方)》으로 타이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타이완 작가 천스홍(陳思宏) - 사진: CNA

뿐만 아니라 《괴상한 곳》은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뉴욕 타임스 북 리뷰(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에서 한 미국 평론가(Peter C. Baker)는 “이 소설은 꽉 찬 캐리어처럼 인물, 추억, 아쉬움, 선택, 결과, 비밀, 역사, 정치, 성 등 요소를 담고 있고 캐리어를 조금만 열어도 더러운 옷이 안에서 흘러넘친다”며 “인생은 늘 엉망진창인데 저자는 소설을 통해 이 부분을 잘 살린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또한 지난 1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Le Monde)도 북 리뷰 1면에 타이완 중원절 행사인 ‘수등 띄우기(放水燈)’의 사진과 함께 《괴상한 곳》을 크게 보도했습니다. 현재 해당 소설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그리스어, 폴란드어, 이탈리아어, 태국어, 한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 10개 언어의 판권이 팔렸으며, 한국판은 번역 중에 있고 곧 한국 독자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괴상한 곳》 영문판(좌)과 불어판(우) - 사진: CNA

《괴상한 곳》의 중인공 천톈홍(陳天宏)은 이름부터 저자 천스홍과 매우 유사합니다. 똑같이 다자녀 가정의 막내아들로서 남존여비(남자를 중시하고 여자를 경시하는 관념)의 사회 분위기에서 태어났고, 똑같이 남성 동성애자로서 고향에서 미움받아 먼저 타이베이로 도망간 다음에 독일에 정착하게 되었고, 똑같이 작가로서 글씨기에 몰두합니다. 유일한 차이점은 소설 주인공이 독일에서 애인을 죽였고 감빵생활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감옥에서 석방된 후 갈 곳이 없어 부득이하게 고향 장화 융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집에 도착한 날은 마침 중원절입니다.

이야기는 7남매와 부모의 시각으로 전개되며 천씨 집안의 비밀과 상처를 차근차근 드러냅니다. 중화민국 정부의 토지개혁 정책 때문에 대지주에서 일반 백성으로 몰락된 천씨 가문, 평생 묵묵하고 감정을 숨긴 아버지, 여섯째 아이가 비로소 남자아이를 낳은 어머니, 중학교를 그만두고 일찍부터 공장에서 일한 큰 딸, 고향을 떠나 타이베이에서 심심한 삶을 사는 둘째 딸, 유명한 아나운서와 결혼 후 가정폭력을 당한 셋째 딸, 다섯째 딸을 질투해 정신병에 걸린 넷째 딸, 7남매 중 가장 예쁜 아이로 태어났지만 결국 자살한 다섯째 딸, 정치에 투신하다 공금 횡령으로 감옥에 가둔 큰 아들, 그리고 외국에서 살인죄를 저질러 고향에 돌아온 작은 아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처럼 챕터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끝까지 읽으면 추리물 못지않은 저자의 교묘한 기법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타이완 속담에 “家家有本難念的經(집집마다 읽기 어려운 경전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한국어로 “집집마다 모두 어려운 일이 있기 마련이다”고 합니다. 천씨 집안의 가장 큰 어려움은 가족 간 소통의 부재입니다. 저자는 자살한 다섯째 딸의 시각을 통해 이렇게 작성했습니다. ‘천씨 가족들이 가장 잘하는 게 입을 다무는 거다. 바람이 쌩쌩 부는 중원절은 심상치 않다. 마침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가 계셨던 ​​옆집에 불이 났을 때, 내가 살아졌을 때, 큰 동생이 소환장을 받았을 때, 작은 동생이 독일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쉬. 바람이 불면 개구리, 흰개미, 귀뚜라미, 도마뱀붙이 모두 입을 다문다. 융징 지방은 침묵에 빠진다.’ 

저자는 소설 후기에서 “감추고 싶은 기억과 아픔은 그림자처럼 따라왔고, 과거는 귀신처럼 세상 곳곳에 존재한다”며 “어쩌면 우리 모두 귀신일지도 모른다”고 작성했습니다. 천씨 가족에게 고향은 삶의 터전이 아니라, 귀신이 가득차고 일찍 떠나면 떠날수록 좋다는 괴상한 곳입니다. 그러나 막내의 귀국으로 온 가족이 다시 고향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천톈홍이 고향에 돌아온 이유는 구원을 위해서도, 참회을 위해서도, 해답을 찾기 위해서도 아니다. 귀향은 그를 숨막히게 하지만 그는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날카로운 글로 주인공이 직면하는 현실을 묘사했습니다. 

저자를 발굴한 출판사 편집은 “문학소설이 작가 스스로에만 관심을 보이는 자아탐닉, 혹은 형식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 천스홍의 작품은 다르다”며 “생생하고 강렬한 필치로 캐릭터에 입체감을 부여해준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괴상한 곳》에는 10명 이상의 인물이 등장했지만 읽기에 전혀 혼란스럽지 않고 오히려 캐릭터마다의 독특한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절묘한 경지에 이른 비유법을 통해 이야기를 활발하게 풀어냅니다. 치킨의 향기를 뱃살에서 두드리는 북소리로, 누나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뜨거운 프라이팬에 튀긴 베이컨으로, 영화를 처음 본 경험을 귀신을 본다는 것으로… 다양하고 신선한 표현을 통해 소설의 재미를 극대화합니다.

2019년 저자는 금정장 시상식에서 “고향을 ‘괴상한 곳’으로 말하는 게 풍자가 아니고 모든 곳이 괴상한 곳일 수 있다”며 “이 상은 나와 같이 시골 출신, 성적 지향으로 인해 평생 고군분투하는 사람에게 바친다”고 말했습니다. 괴상한 곳이 그만큼 괴상한 이유는 너무 많은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향을 떠나기 위해 반평생을 분투했고, 남은 반평생은 또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애를 씁니다. 집이란 인생의 맛을 제대로 알고 나서 봐야 돌아가고 싶은 곳이죠.

엔딩곡으로 동요를 리메이크한 노래 ‘하늘이 깜깜해(天黑黑 Cloudy Day)’를 띄어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가수는 순옌즈(孫燕姿)입니다. 2000년 발매된 이 노래는 1980-90년대생의 노래방 필수곡이자 성장의 대명사입니다. 한국 가수 로이킴도 커버한 적이 있습니다. 가사 중 ‘어른의 세계 뒤에는 항상 이런 상처가 있는걸까?’, ‘나는 지나가버린 순수하고 작은 행복이 그리워’, ‘나는 지금 집에 돌아가고 싶어’ 등 글귀들이 바로 《괴상한 곳》의 주인공이 말하고 싶어하는 말이죠.

《괴상한 곳》 한국판이 출판되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적극 추천드립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2023農曆七月鬼門關(9/14)怎麼拜拜?供(祭)品、金銀紙該如何準備?鬼門關習俗/禁忌小心不要犯!」,冬瓜行旅。
2. 陳思宏,《鬼地方》。
3. 尹俊傑,「紐時評小說「鬼地方」 讚作者陳思宏處理混亂手法」,中央社。
4. 董柏廷,「《鬼地方》榮登法國大報頭條 知名作家:我要瘋了!」,自由時報。
5. 「2020金典沙龍3-陳思宏分享會側記」,台灣文學獎。
6. 凌美雪,「《鬼地方》寫家鄉獲金鼎獎 陳思宏:我是來自永靖的gay」,自由時報。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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