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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망은 귀신이 되는 것’ 간야오밍(甘耀明) 《귀신을 죽인다(殺鬼)》

  • 2023.09.04
포르모사 문학관
타이완 작가 간야오밍(甘耀明)의 첫 장편소설 《귀신을 죽인다(殺鬼)》 - 사진: 간야오밍 디지털 박물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귀신의 달 넷째 주입니다. 음력 7월의 후반부를 맞이하여 이번주와 다음주는 귀신에 관한 타이완 소설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타이완 작가 간야오밍(甘耀明)의 첫 장편소설 《귀신을 죽인다(殺鬼)》에 대해 살펴봅시다. 시즌1에서 진옥순 아나운서님께서 말씀드렸다시피, 간야오밍은 타이완 ‘포스트 향토문학(後鄉土文學)’의 선구자이자 학카(客家)문학의 대표 작가로 꼽힙니다. 

타이완 향토문학하면 이에 관한 두 차례의 논쟁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하나는 1930년대 초반 일본 식민지 시대에 발생한 ‘1차 향토문학 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1970년대 후반에 벌이진 ‘2차 향토문학 논쟁’입니다. 우선 1차 논쟁은 일본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일본 문학계에서 일어난 ‘언문일치운동(言文一致運動, 평소에 쓰는 말로 글을 쓰도록 한 운동)’, 그리고 1915년 구어체 문학을 추구하는 중국 ‘신문화운동(新文化運動)’의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습니다. 도쿄에 있었던 타이완 유학생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중국 고전문학과 고체시를 비판하면서 당시 타이완에서 가장 널리 쓰였던 타이완어(민남어, 閩南語)로 창작하는 향토문학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 운동은 타이완 문학계에서 열띤 논쟁을 벌였으나 일본 정부가 실시한 국어운동(일본어) 때문에 중단되었습니다. 다음으로 2차 논쟁은 중화민국 정부가 추진한 반공문학, 그리고 서양에서 들여온 허무한 현대주의에 대한 반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차 논쟁에서 향토문학은 ‘민족문학’이라면, 2차 논쟁에서는 농어민과 근로자의 삶에 착안해 좌파 사상을 담은 문학 장르입니다.

그럼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포스트 향토문학’은 무엇인가요? 1930년대 반식민주의의 향토문학, 그리고 1970년대 반자본주의, 반도시화의 향토문학과 다르게, 포스트 향토문학은 반대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당대 타이완 사회에 대한 기록과 성찰입니다. 타이완 작가 주요우쉰(朱宥勳)은 “포스트 향토문학은 ‘사악한 식민주의’ 또는 ‘사악한 자본주의’처럼 구체적인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고, 단지 타이완에서 일어난 일들을 쓰는 것일 뿐”이라며, “이런 의미에서 향토문학이라기보다는 ‘현실주의 문학’은 더 정확하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포스트 향토문학은 타이완 관점에서 쓴 타이완 문학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중 간야오밍은 타이완 민간 설화, 역사 사건, 문화 풍습 등을 바탕으로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의 서사를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학카 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 학카어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작품 《귀신을 죽인다》는 타이완의 일본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여러 정권을 거친 타이완의 슬픈 역사, 그리고 타이완 사람으로서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모르는 정체성 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설의 무대는 저자의 고향인 타이완 중북부 먀오리(苗栗) 스탄(獅潭)에 있습니다. 스탄에 위치한 작은 마을 ‘관뉴워(關牛窩)’은 원래 타이완 원주민 싸이샤족(賽夏族)과 타야족(泰雅族)의 마을이었는데 한족(漢族)이 중국에서 온 후 학카인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막대한 힘을 가진 주인공 류싱파(劉興帕, 약칭’파’)가 뛰어난 신체 조건으로 일본 장교에게 입양되어 타이완인 일본 병사가 되었습니다. 일본인이 되려는 파와 달리, 파의 할아버지는 청나라를 상징하는 머리스타일 ‘변발(辮髮)’을 기르고 있으며, 중국 대륙을 조국으로 삼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가 타이완을 일본에 할양하게 되었는데,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타이완 민주국(臺灣民主國)이 성립되었습니다. 파의 할아버지는 먀오리 출신인 항일운동가 우탕싱(吳湯興)을 따라 의병운동에 투신했습니다. 그러나 우탕싱은 1895년 8월 28일 전사했고 타이완 민주국은 같은 해 10월 21일 일본군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그 후 파의 할어버지는 먀오리 산속에서 ‘리퍼블릭(republic)’이라는 나라를 세워 일본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을 시작했습니다. 리퍼블릭에서 파가 일본어를 하면 곧바로 할아버지에게 질타를 받고, 일본 책이나 일본 물건을 쓰면 당장 집에서 쫓겨납니다. 국가 정체성에 있어 완전히 대립하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소설 맨 앞에 재미있는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파가 쓴 작문 <나의 소망>입니다. ‘나의 소망은 지금 당장 죽고 즐거운 귀신이 되는 것이다. 귀신이 되면 하루종일 밖에서 놀아도, 숙제를 안 해도, 밥을 안 먹어도, 샤워 안 해도 전혀 상관없다. 귀신이 되면 할아버지가 더 이상 나를 혼내거나 때릴 필요가 없다’ 

파와 할아버지는 서로의 유일한 가족입니다. 파가 태어났을 때 점쟁이는 파의 팔자가 너무 세서 의부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파의 할어버지는 타이야족 출신인 지인을 찾아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지인은 파에게 ‘Pa-pak-Wa-qa’라는 타이야족 이름을 주었고 이 이름은 타이야족과 싸이샤족 신화에서 나온 신성한 산인 ‘다바지엔산(大霸尖山)’을 뜻합니다. 

소설 후반에 미국이 타이완에 상륙할 수 있다는 소식을 받자 파가 이끈 부대가 타이완 동부로 파견되었는데, 도중에 산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궁지에 빠진 파는 의외로 다바지엔산에 도착해 큰 소리로 ‘Pa-pak-Wa-qa’를 외친 후 갑자기 길을 찾았습니다. 산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떠날 수 없는 거죠. 그러나 훈련 과정에서 집중력과 체력을 높이기 위해 파는 암페타민이 함유된 약을 너무 많이 먹었습니다. 태풍을 미국의 침략으로 착각해 결국 부하의 수류탄에 얼굴을 맞았고 한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가상의 미군에 반격하려고 할 때 일본의 무조건항복을 알리는 ‘옥음방송(玉音放送)’을 들었습니다. 진정한 일본인이 되려는 파의 꿈, 이제 끝입니다.

그러면 파의 할아버지가 세운 리퍼블릭은 여전한가요? 의무노동을 거절한 할아버지는 감옥에 감금되었고 석방된 후 심한 모욕감 때문에 스스로를 꿈에서 가두었습니다. 어느날 마을 사람들이 최신형 기차를 끌고 산으로 가는 도중에 한 사람이 다쳤는데 명령을 어기고 그를 구하러 간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이를 본 할아버기는 큰 충격을 받아 결국 오래된 반항을 끝냈고 마을 사람을 도와주러 의무노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파와 할어버지 모두 스스로의 소망과 어긋난 방향에 갔습니다. 

전통을 상징하는 파의 할아버지, 일본인이 되려는 파, 괴물처럼 생긴 최신형 기차, 파의 할아버지가 세운 ‘리퍼블릭’, 파를 살리는 동시에 죽음을 가져온 다바지엔산……소설에 등장한 인물, 물건, 장소 모두 소설 제목에 저자가 죽이려는 귀신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가치와 전통문화가 부딪히는 가운데, 소원성취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타이완만의 판타지 이야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게 바로 가장 타이완스러운 향토문학이죠.

엔딩곡으로 올해 타이완 금곡장(金曲獎) 베스트송상을 수상한 노래 ‘가장 좋았던 시간(最好的時光)’을 띄어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가수는 안푸(安溥)입니다. 파와 할아버지에게 가장 좋았던 시간은 아마도 리퍼블릭에서 함께 보냈던 날들일 거죠.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甘耀明,《殺鬼》。
2. 朱宥勳,〈從負債,變成資產:重回「台灣」的新世代文學創作〉。
3. 甘耀明數位主題館。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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