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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이 공존하는 세상' 팡훼이전(房慧真)《딸기와 잿더미》

  • 2023.05.22
포르모사 문학관
타이완 에세이작가이자 기자 팡훼이전(房慧真)의 최신 에세이집《딸기와 잿더미》- 사진: Eslite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2022년 중화민국 내정부가 발표한 인구통계에 따르면 타이완의 신이민 및 신이민 자녀 인원수가 100만 명이 넘었습니다. 같은 해 신이민 문예 작품 공모전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400년 후 신이민은 타이완인의 선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이민이 타이완의 중요한 일부가 되고 있는 가운데, 신이민 자녀의 정체성 문제도 주목되고 있습니다. 내정부에 따르면 2018년 40%의 타이완 신이민 자녀는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모국어를 할 줄 모릅니다. 신남향(新南向) 정책의 추진과 함께 동남아가 핫한 시장으로 부상되고 있지만 신이민 자녀가 겪고 있는 곤란은 여전히 시급한 이슈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타이완 작가 팡훼이전(房慧真)이 바로 신이민 자녀입니다. 글을 다루는 그는 어렸을 때부터 중국어를 혐오하는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즐겁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1960년대 타이완 화교 우대 정책에 따라 타이베이에 위치하는 국립사범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 타이완 여자와 결혼해 타이완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인도네시아 화교 유학생들이 출국한 것은 인도네시아 국적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반드시 타이완에서 버티고 중화민국 국적을 취득해야 했습니다. 중국어에 서투른 화교 학생들에게 영어학과는 최선의 선택인데, 이러한 배경 하에 팡웨어전의 아버지는 그의 중국어 교재나 작문 대회 상장을 볼 때마다 눈에 항상 쌍심지를 켜고 화냈습니다. 

아버지와의 긴장관계로 인해 팡훼이전은 학창시절 때 늘 서점, 영화관, 음반가게에서 시간을 보냈고 일찍부터 다양한 문예작품을 접하게 되어 글쓰기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팡훼이전은 2022년 출판된 최신 에세이집 《딸기와 잿더미》에서 16살 때 노골적인 장면으로 큰 논란을 야기해 상영 금지를 당했던 일본 영화 <감각의 세계>를 본 적이 있고 2020년 4K 버전이 재개봉했을 때 영화관에서 다시 관람했지만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청소년 시절의 모험들을 ‘돌잡이’로 묘사했습니다.

타이완 대표적인 잡지 ‘이주간(壹週刊)’과 비영리 독립언론 ‘보도자(The Reporter)’에서 일해 온 팡훼이전은 날카로운 관찰력과 세련되는 필치를 통해 높이 평가받는 기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2017년 인물 보도를 수록한 에세이집 《나 같은 기자(像我這樣的一個記者)》를 출판해 이름이 더욱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2011년 잡지사에 입사하기 전에 팡훼이전은 기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타이완 최대 온라인 서점 보커라이(博客來)와의 인터뷰에서 “타이완에서 에세이의 대종은 가정, 청춘, 좌절 등 성장 이야기에 관한 작품인데 이는 작가에게 매우 소모되는 것이고 3, 4권을 출판하면 인생을 거의 다 썼다”며 “기자가 된 것은 경험을 쌓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자신이 너무나 순진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기자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고 언급했습니다. 

기자 직전에 팡훼이전은 에세이 작가입니다. 2007년부터 《일방통행길(單向街)》, 《작은 먼지(小塵埃)》, 《하천(河流)》등을 잇달아 출판해 삶에 대한 통찰을 빛나는 글로 승화했습니다. 2016년 에세이 <딸기와 잿더미>를 통해 연도 에세이 대상을 수상했고 2022년 동명 에세이집을 출판했습니다. 《딸기와 잿더미》는 챕터 5개로 구성되며 각각은 일상을 기록하는 ‘뜬세상(浮世)’, 취약계층을 묘사하는 ‘괴짜(畸人)’, 외국에서 보고 들은 경험을 담는 ‘흔들림(顛簸)’, 자신의 성장 과정, 직장과 가정 이야기를 수록하는 ‘뒤돌아보기(回眸)’,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인종학살 비극을 다루는 ‘끝(盡頭)’입니다. 다음에 책에 수록된 몇 가지 이야기를 뽑아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선은 ‘뜬세상’에 수록된 <요재(聊齋)>입니다. 요재는 청나라 초기 포송령(蒲松齡)이 지은 괴기소설집 《요재지이(聊齋志異)》에서 유래했는데, 팡훼이전은 괴기소설의 기법을 통해 회사를 괴상한 호텔, 직장인을 호텔에 묵는 유령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휴지가 없거나 세면대에 물때가 있는 등 작은 일을 가지고 욕하지 못할 정도로 청소원들이 항상 일찍부터 사물실을 깨끗이 청소하는데, 일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은 단지 자리에 가족이나 여행 사진을 붙여 인질로 삼을 수 밖에 없으며, 평생이 걸리고 그들의 몸값을 준비한다'고 작성했습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거죠.

이어서 ‘괴짜’에 등장한 <거지(乞者)>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팡훼이전은 사회 어두운 곳에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평생 불안감을 품고 있는 아버지에서 비롯했다고 했습니다. 중국 영화 <피의 매미(血蟬)>에서 주인공 부부가 다리를 다친 아이를 구입해 매일매일 아이를 데리고 기차역에서  구걸하는데요. 예성과 달리 부부는 아이를 학대하지 않고 오히려 아이를 잘 돌보고 약도 발라 줍니다. 팡훼이전은 ‘아이를 산 부부는 아이를 착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회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는 것은 그들의 살길’이라고 작성했습니다. 해당 문구를 보고 저는 일본 영화 <어느 가족>을 떠올렸습니다. 이 영화는 혈연관계가 없는 사회 취약계층들이 한 집에 사는 이야기를 다루며 가족 관계, 빈곤 문제, 사회 계급 등 이슈를 탐구했습니다. 가족이 아닌 가족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상부상조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인간성을 보여줬습니다.

마지막은 책 제목의 동명 에세이 <딸기와 잿더미>입니다.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소장인 루돌프 회스(Rudolf Franz Ferdinand Höß)가 하루에 평균 7000명의 유태인을 살해했던 것으로 게슈타포 장관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루돌프 회스의 손자가 12살이 되기 전에 할아버지의 행위에 대해 전혀 몰랐고 풍족한 나날을 지냈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정원에서 딸기를 따면서 그에게 “반드시 딸기를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당부했는데 그는 가족의 역사를 알고 나서야 비로소 할머니의 말 뒤에 숨겼던 진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딸리 위에 있는 잿더미는 유태인의 시신을 태웠던 화장로에서 나왔습니다. 루비처럼 빛나는 딸기와 유태인의 잿더미. 극도의 대조를 통해 잔혹한 역사 진상은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팡훼이전은 ‘이 “진보적인” 세상로 돌아와야 인류의 막대한 악의를 알아차릴 수 있다’고 작성했습니다.  기자의 훈련에 기초해 냉정한 눈으로 사회의 빛과 어둠을 관찰하고 문명이 만든 폐허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의 글자들은 선악이 공존하는 꽃송이가 되어 길가에서 묵묵히 세상을 바라봅니다. 앞으로 팡훼이전의 작품들은 한국에서 출판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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