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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맛 곧 어머니의 손맛’ 홍아이주(洪愛珠) 《올드걸의 쇼핑 코스(老派少女購物路線)》

  • 2023.05.15
포르모사 문학관
2021년 출판되자 몇 달 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한 음식 에세이집《올드걸의 쇼핑 코스(老派少女購物路線)》는 타이완 ‘음식 문학’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직접 책표지를 디자인한 저자 홍아이주(洪愛珠)는 타이완에서 기쁜 일을 연상시키는 따뜻한 붉은색 배경에 장수를 기원하는 복숭아 모양의 생일 축하용 빵인 서우타오(壽桃)를 배치해 전통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 사진: Eslite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어제는 5월의 둘째 주 일요일, 국제 어머니날이었습니다. 이 날에는 타이완에서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어머님께 선물을 드리는 것은 예사입니다. 어머니하면 많은 타이완인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어머니가 직접 만든 요리, 즉 어머니의 손맛이겠죠. 아픈 아이를 위해 정성을 다해 만든 닭곰탕, 과정은 간단하지만 맛은 전혀 간단하지 않은 토마토달걀볶음, 가장 대표적인 타이완 집밥요리이자 최고의 밥도둑 러우짜오(肉燥, 간 돼지고기 조림 요리)와 루러우(滷肉)... 어머니의 솜씨는 집이란 무엇인지를 정의해 줍니다. 

제20회 타이베이 문학상 에시이부문 대상을 수상한 타이완 작가 홍아이주(필명 洪愛珠, 본명 홍위쥔洪于珺)가 2021년 음식 에세이집 《올드걸의 쇼핑 코스(老派少女購物路線)》를 출판해 불황의 늪에 빠졌던 타이완 출판계에서 생기를 가져왔는데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요리 솜씨를 물려받은 홍아이주는 고향 신베이시 루저우(蘆洲)의 현지 음식부터, 밥, 죽, 면 등 타이완의 주식을 거쳐 명절 음식, 홍콩 음식, 동남아 음식까지 타이완의 다양한 음식 문화를 그려냈습니다. 타이베이 문학상 심사이자 타이완 매우 대표적인 에세이 작가 졘전(簡媜)은 ‘병세가 위독한 어머니를 위해 기억의 장막을 열어 외할머니의 청춘시대부터 조손삼대가 함께 걸어왔던 쇼핑 코스를 기록하고, 책 마지막에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문득 손을 놓고 백 년의 큰길에 사방을 둘러보니 나만 홀로 남았다”고 작성해 시간의 흐름과 쓸쓸한 마음으로 마침표를 찍었다’며 수상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본업이 그래픽 디자이너인 홍아이주는 암에 걸렸던 어머니로 인해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패션잡지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직접 어머니를 병구완했던 홍아이주는 자신의 상태를 안정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예술 형식을 시도했으나, 유독 글쓰기를 통해 힐링이 되어 어머니를 모시는 것처럼 글자들은 스스로의 동반자가 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평생 각양각색의 미식을 맛보았던 어머니는 위독한 순간에 오히려 어릴 적에 자주 먹었던 담백한 음식만 땡겼다고 했습니다. 외할머니의 솜씨를 복각하도록 홍아이주는 조손삼대가 자주 다녔던 타이베이 다다오청(大稻埕), 디화(迪化)가, 그리고 용러시장(永樂市場)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 때부터 요리는 단순한 취미에서 사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홍아이주는 인생의 맛은 곧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홍아이주의 외할머니는 전통적인 식재료를 많이 파는 다다오청(大稻埕) 출신이므로 명절 요리, 전통 음식, 고급 식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공장을 운영했던 남편의 손님이나 직원을 접대하기 위해 10인분 이상의 요리를 준비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습니다. 넓은 안목과 깊은 식견을 갖춘 부모 아래 자란 홍아이주의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요리 실력을 이어받아 유일무이한 가족의 맛을 살렸습니다. 직장인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벽 4시에 일어나 홍아이주와 동생들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아침을 준비하고 8시에 출근했는데, 심지어 한 달 동안 중복되지 않은 아침을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요리에 대한 열정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까지 못했을 거죠. 홍아이주의 반친구들이 점심시간마다 홍아이주의 도시락에 어떤 요리가 나올지 항상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로 인해 홍아이주는 어렸을 때부터 여성은 무궁한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전통적인 타이완 대가족에서 자라 20살에 되어야 처음으로 어머니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엄격한 교육 속에서 어머니에 반항하기 위해 홧김에 “앞으로 향을 들지 않고 기독교로 개종하겠다”고 말했지만, 지금 홍아이주는 누구보다도 더 자주 절에 갑니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해마다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정성 들여 직접 준비하는 홍아이주는 타이완 최대 온라인 서점 보커라이(博客來)와의 인터뷰에서 ‘음식을 예쁘게 올리는 것은 필수이며 밥은 제사 당일 이른 아침에 짓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꽃도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이러한 전통 의식은 자신을 지탱해주는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족을 잃은 상처를 겪으면서 홍아이주는 전통과 구식의 힘을 깨닫게 되어 책 제목에 ‘올드걸’이라고 붙였습니다.

출판 당시 몇 달 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한 《올드걸의 쇼핑 코스》는 타이완 ‘음식 문학’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는데요.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홍아이주가 직접 디자인한 책표지를 본 적이 있었을 겁니다. 타이완에서 기쁜 일을 연상시키는 따뜻한 붉은색 배경에 장수를 기원하는 복숭아 모양의 생일 축하용 빵인 서우타오(壽桃)를 배치하고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손맛, 그리고 전통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련되는 폰트, 붉은색과 하양색이 구성한 색의 조화를 통해 각 시대에 분투하는 여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타이완 음식문학 대가 수궈즈(舒國治)는 추천서문에 ‘홍아이주는 먹는 것에 대해서만 잘 쓰는 게 아니라, 그냥 다 잘 쓴다’며 높은 평가를 했습니다. 또한 ‘책을 읽은 후 ’허우샤오셴(侯孝賢) 감독에게 선물하고 싶은데, 온가족이 동그란 식탁에 앉아서 식사하는 장면을 좋아하는 허 감독은 잔잔한 시선으로 홍아이주가 묘사한 타이완의 음식 문화를 바라볼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홍아이주는 겉으로 보면 음식 문화를 썼지만 사실은 가족과 인생을 썼습니다. 왜냐하면 요리의 맛과 인생의 맛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죠. 이에 수궈즈는 ‘대부분 타이완 식당은 밥을 중시하지 않은데 홍아이주는 오히려 적지 않은 편폭을 할애해 쌀, 밥, 밥솥 등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며 미쉐린(Michelin)의 타이틀을 남용하지 않고 단지 집밥요리를 생생하게 그려냈다’며, ‘이처럼 겸허하고 넓은 마음은 “조급해서는 안 된다”는 대기만성의 철학을 보여주며, 책 제목은 쇼핑 코스지만 사실은 소녀들의 성장 코스이고 모든 여성에게 “자신만만하게 살아가면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작성했습니다.

올드한 라이프 스타일을 선호하는 홍아이주는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적부터 어른신과 잘 어울리는 편이고 80세가 넘은 이모와 함께 있을 때 항상 소녀처럼 타이완어로 수다를 떨면서 밥을 준비한다’며, ‘코로나 팬데믹 때 넷플릭스 대신 영화 DVD나 책을 많이 보고 신경을 써서 한끼 한끼를 잘 먹었는데 인터넷 시대의 초조감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가 점점 서구화되고 많은 전통 문화가 포기되고 있는 가운데, 나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주목 받지 못했던 것을 발굴하고 싶다'고 언급했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우세한 문화 때문에 점차 사라지고 있는 타이완의 전통 음식 문화는 수시로 실전될 수 있고 홍아이주는 타이완의 전통 음식 뿐만 아니라, 타이완인의 정서, 가치관, 가족관계까지 담아냈습니다. 사람 모두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현시점에서 좀 구식인 것, 좀 올드한 것도 나쁘지 않은 거죠.


한국음식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묘사하는 에세이집《H마트에서 울다(CRYING IN H MART)》- 사진: YES24

작년 출판하자 타이완에서 화제가 되었던 에세이집《H마트에서 울다(CRYING IN H MART)》가 《올드걸의 쇼핑 코스》와 일맥상통인데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 미셸 자우너(Michell Zauner)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란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한국음식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묘사했습니다. 앞으로 《올드걸의 쇼핑 코스》는 한국에서 출판되면 《H마트에서 울다》와 함께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엔딩곡으로 타이완 가장 대표적인 서민 음식 루러우판을 주제로 한 노래 ‘타이완 루러우판(台灣滷肉飯)’을 띄어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가수는 천레이(陳雷)입니다. 해당 노래는 반복되는 가사를 통해 루러우판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후렴에 나온 가사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타이완인은 루러우판과 깊은 정을 가지고 있다. 루러우판을 먹으면 일하는 사람들은 힘이 생기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 수 있다. 루러우판은 타이완 역사의 일부이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에 타이완에 오시면 타이완의 가장 대표적인 맛, 루러우판을 맛보세요!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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