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지난 2주 동안 타이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방영하자마자 바로 국내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한 타이완 드라마 <인선지인: 웨이브 메이커스(人選之人-造浪者)>입니다. 2024년 총통 대선을 8개월 앞두고 현임 중화민국 부총통이자 집권 민주진보당 당수인 라이칭더(賴清德) 외 아직 확정한 후보자가 부재하는 현시점에서, 해당 드라마는 정치인 뒤에 묵묵히 서포트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정치 장르지만 사실은 직장과 인생에서 부딪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정치인 뒤에 서포트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타이완 드라마 <인선지인: 웨이브 메이커스(人選之人-造浪者)>는 최근 큰 화제가 되고 있다. - 사진: 인선지인 페이스북
인터넷 사회에서 선거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거죠.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정치인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더 큰 예산을 투입해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고 더욱 친근한 이미지를 확립할 수 있도록 힘썼습니다. 인터넷이 선거의 새로운 전쟁터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인선지인>의 등장 인물들은 SNS에서 벌어진 싸움과 적의 움직임을 밤낮없이 모니터링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타이완 작가 후칭팡(胡晴舫)은 소설 《군도(群島)》에서 ‘페이스북은 개인을 전시하는 장소’라고 묘사할 만큼 이제 SNS는 자아를 표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OOSGA에 따르면, 2022년 타이완인이 자주 사용하는 SNS는 라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트위터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2019년 출판된《군도》는 국내 유저자 수가 가장 많은 페이스북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주로 SNS의 특성을 잘 파악해 개인매력을 선보이는 20대 여성 린리롄(林莉蓮)와 페이스북 초보자로서 SNS의 영향력을 체득한 50대 남성 리셴훙(李憲宏)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SNS 등장 후 나타나게 된 세대차이, 마녀사냥을 비롯한 신상털기와 인터넷 폭력, 모호해지는 공적 및 사적의 영역 구분 등 사회문제를 담아냈습니다.
소설, 에세이, 평론 등 다양한 문학장르를 구사하는 후칭팡(胡晴舫)은 2019년부터 2020년까지 타이완콘텐츠진흥원(Taiwan Creative Content Agency,TAICCA) 원장을 맡았으며, 2020년 《군도》를 통해 지난 방송에서 소개해 드렸던 작가 리웨이징(李維菁), 그리고 앞으로 소개 예정인 작가 천수야오(陳淑瑤)와 함께 타이베이 국제도서전 소설부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후칭팡은 《군도》의 후기에서 책 이름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책 이름은 원래 “군도”가 아닌 “단애(斷崖)”였다. 인터넷 시대에 사람마다 자신만의 산꼭대기에 서있고 다른 산꼭대기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으나 절벽과 골짜기 때문에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이는 인터넷으로 인한 현상’이라며, ‘그 후 영국 시인 존 던(John Donne)의 작품 《인간은 섬이 아니다(No man is an island)》에서 영감을 받아 “군도”라는 이름이 생각났다. 인터넷은 바다라면 사람은 섬이다. 바다 위에 멀리 떨어져 보이는 섬들은 사실 깊은 바다 밑바닥에 서로 연결되어 있고 같은 지구에 뿌리를 내린다. 그렇다면 바다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것일까. 이는 이 소설의 취지다.’ 인터넷과 SNS는 수많은 편의를 가져왔지만 사람들은 과연 더 가까워진 건가요? 아니면 오히려 더 멀어진 건가요?
《군도》의 캐릭터 설정부터 후칭팡이 탐구하고 싶은 첫 번째 이슈를 알 수 있습니다. 20대 여성과 50대 남성의 연애,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와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s)의 충돌. 이것은 인터넷이 초래한 세대차이죠.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여주인공 린리롄은 언제, 어디든지 반드시 페이스북 포스팅을 올리는 MZ세대입니다. 반대로 자수성가하고 사업에 성공한 남주인공 리셴훙은 SNS를 전혀 하지 않았고 린리롄의 작은 옥탑방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중년 남자입니다. 그러나 이 옥탑방은 리셴홍에게 숨 막히는 현실을 잊게 해주는 마법의 옷장이지만, 린리례에게는 추악한 현실을 거듭 일깨워주는 관입니다. 린리롄은 옥탑방 밖에 있는 번화를 탐하고 리셴홍은 옥탑방 안에 있는 안정을 추구합니다. 따라서 두 사람은 처음부터 좋은 결말이 있을 수가 없는 거죠.
한 모임에서 진보적인 중견 사업가로 여겨진 리셴홍은 ‘나때는 말이야’로 시작한 견해를 말한 후 SNS에서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젊었을 때 유엔에서 탈퇴한 타이완은 급격하게 악화된 국제 정세를 직면하게 되고 독재정권에 맞서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는데 이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타이완의 앞길을 위해 여전히 열심히 노력해왔고, 반대로 태평성대에 자란 지금 젊은 세대들은 소확행만 추구하고 성품이 게으르며 참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린리롄의 친구가 리셴홍과의 대화를 페이스북에 올리고 하루아침에 젊은이 사이에서 항상 존경받았던 리셴홍을 천고의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이슈가 나왔습니다. 바로 마녀사냥과 인터넷 폭력입니다. 젊은 세대의 눈엣가시가 된 리셴홍은 폭로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 페이스북 계정을 등록했고 3일 내내 계속 모르는 네티즌과 싸웠습니다. 다만 그는 해명할수록 진화는커녕 논란이 오히려 커지고 그의 얼굴도 뉴스, 토크쇼 프로그램, 온라인 기사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그와 사귀고 있는 젊은 여성 린리롄까지 보도되었습니다. 후칭팡은 ‘리셴홍 자체는 유행이 아니고, 리셴홍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야말로 유행이다. 마치 30년 전 리셴홍을 존경하는 것은 유행이 되었던 것처럼 어젯밤부터 리셴홍을 싫어하는 것은 유행하기 시작했다. 리셴홍이 누구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사람들은 단지 리셴홍이 중심화제가 된 15분 안에 유행을 타서 자신의 사회적 소속감을 확인하려고 한다.’고 작성했습니다.
미국 예술가 앤디 워홀(Andy Warhol)은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동안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이 말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15분에 리셴홍은 산꼭대기에서 산골짜기로 떨어졌으나 두 번째 15 분에는 SNS에 힘입어 산꼭대기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2014년 타이완 해바라기 학생 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시위현장인 중화민국 입법원에 가서 학생과 함께 시위하며 현장 상황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SNS의 성격과 대중의 취향을 파악한 리셴홍은 젊은 세대의 멘터로 다시 부상했습니다.
미국 작가 조너선 프랜즌(Jonathan Franzen)이 2002년 출판한 에세이집 《혼자가 되는 법(How to Be Alone)》에 수록된〈제국의 침실(Imperial Bedroom)에서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었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는 어느 날 아침을 먹으면서 신문을 펴 본의 아니게 미국 대통령의 스캔들 기사를 봤습니다. 이 순간에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 갑자기 침실에 틈입하고 아름다운 아침을 파괴했으며 대통령의 사생활 뿐만 아니라, 독자의 프라이버시도 침해당했습니다. 갈수록 모호해지는 공적 및 사적 영역의 경계선은 《군도》의 세 번째 주제입니다. 후칭팡은 ‘과학기술이라는 이름으로 공적 영역은 대대적으로 사적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사람 모두 주위의 감시를 받고 있으며 남에게 투명하게 살 것을 요구한다. 이 세상은 비밀을 용납하지 않는다. 과거 한 집에 한 전화기만 있던 시절에 들리지 않고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세상이 자신을 보고 들어주는 것을 갈망한다. 이제 인터넷에는 중얼거림만 남는다.’고 작성했습니다. 원래 인터넷은 우리를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었는데, 결국 우리는 현실세계보다 더 무서운 공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 사람은 도망갈 곳이 없는 거죠.
후칭팡은 《군도》를 통해 인터넷 사회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SNS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인터넷 문화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엔딩곡으로 타이완 인기 밴드 수다뤼(蘇打綠)의 ‘그는 오른손을 들어 출석을 불렀다(他舉起右手點名)’를 띄어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적인 가사로 구성된 이 노래는 홀로코스트(Holocaust)를 통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평가할 권리가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한 마디 한 마디의 무게가 무겁습니다. 인터넷의 편의성과 익명성을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