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오늘은 국제 근로자의 날입니다. 이 날 타이완에는 초등학교 이상 교직원,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외의 모든 근로자가 하루 쉽니다. 저희 Rti 한국어방상은 국가방송으로서 당연히 쉬지 않고 청취자 여러분들과 함께 해야 하죠.
중화민국 행정원 노동부가 발행하고 있는 잡지 ‘타이완 근로자(台灣勞工)’에 따르면 19세기 말 미국, 캐나다, 유럽나라들이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하며 합리적인 노동시간과 환경을 쟁취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에 매진했던 국제 기구인 제2인터내셔널(Second International)이 1889년 파리 대회에서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선포했고 하루 8시간 노동제 실시를 촉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피나는 노력 끝에 1919년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가 드디어 설립되어 근로자 권익을 증진하는 각종 협약을 통과시켰습니다.
타이완은 이러한 배경 하에 노동자의 권리 의식이 대두되면서 공공과 민간 영역을 불문하고 매년 5월 1일에 각양각색의 이벤트, 기념식, 표창대회 등을 거행합니다. 또한 더욱 인간다운 근로 조건을 확보하도록 직접 길거리로 나온 근로자도 적지 않습니다.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타이완 문학계에 각 분야에서 분투하는 근로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작품, 이른바 직인(職人)문학이 많이 등장했는데요. 지난 방송에서 소개해 드렸던 생선 장수 린카이룬(林楷倫)과 장례식장 직원 다스슝(大師兄)이 바로 그 중의 하나입니다. 문학은 더 이상 난해하고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삶 자체가 되었습니다. 오늘 근로자의 날에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타이완 작가는 바로 직인문학의 선두주자인 린리칭(林立青, 본명 린야징林亞靖)입니다.
10여 년 동안 공사감독자로서 일해 온 린리칭은 2017년 건설근로자의 희노애락을 다루는 에세이집 《일하는 사람(做工的人)》을 출판해 1년 반 만에 40쇄를 돌파했습니다. 공사감독자는 고용주를 대표해 공사현장을 관리하고 진도를 독촉하는 사람으로, 건설근로자보다 비교적 높은 지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능직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난처한 처지에 빠지는데요. 그러나 린리칭은 자신의 직업보다 오히려 그와 매일매일 함께 지내는 건설근로자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노동운동가 구위링(顧玉玲)은 이러한 각도는 공사감독자와 건설근로자의 관계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저자가 지신을 근로자와 같은 위치에 놓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습니다. 린리칭은 높은 곳에서 근로자들을 내려다보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살고 있는 그들 대신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을 되찾기 위해서 입니다.
야시장에서 노점을 펴 액세서리를 팔았던 부모 옆에 자란 린리칭은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 하층민의 일상을 너무나 압니다. 그래서 그의 글과 필치는 항상 삶의 비애와 권위에 대한 반감을 드러냅니다. 린리칭이 글을 쓰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자신이 보는 세상과 언론 매체가 보도하는 것과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타고난 반골 정신을 갖고 있는 그는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의 관점을 보여주기로 결심했고 “나에게 글쓰기는 기도이자 내가 아는 것을 정리하는 방식”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린리칭을 인터뷰한 기자이자 작가 팡훼이전(房慧真)은 그에게 “많은 작가는 학교의 간행물 제작 동아리로 인해 문예가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무슨 동아리에 가입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린리칭은 “순정만화를 좋아해서 애니메이션 동아리에 가입했어요.”라며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순정만화는 린리칭이 공사현장에 대기하는 동안 시간을 소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파트너라면, 고전명작은 사회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관찰력을 양성해주는 선생입니다. 전형적인 ‘문예청년’과 달라도 너무 다른 린리칭은 도서관에서 구어체로 번역된 역사책《자치통감(資治通鑑)》부터 러시아 소설 대가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 의 저작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한 고전문학을 읽었습니다. 그는 독서를 통해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의리 있는 사람, 멍청한 사람, 간사한 사람… 인간이란 감정과 욕망에 좌우되는 존재죠.
《일하는 사람》에 인간성이 빛나는 순간, 그리고 어두워진 순간 모두 적혀있습니다. 린리칭은 ‘건설근로자들이 일한 후 편의점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열등감이 아니라 공감력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알바를 시작한 그들은 만약 바닥을 더럽히면 가장 힘든 사람은 알바생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작성했습니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퇴근 후 분식점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테이크아웃만 하는 다스슝이 떠올랐습니다. 일하는 사람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 겸손하게 사는 사람들, 모두 존중받을 만한 아름다운 생명이죠.
《일하는 사람》을 원작으로 한 동명영화가 지난 3일 개봉했다. - 사진: 일하는 사람 페이스북
출판되자 바로 베스트셀러가 된 《일하는 사람》을 원작으로 한 동명드라마가 2020년 방영되어 막대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 근로자의 날을 맞아 프리퀄 영화도 개봉되어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6회로 구성된 동명드라마는 책에 수록된 ‘수로로 간다(走水路)' 편에 기초해 제작되었는데, 중국어로 수로로 간다는 것은 마약을 혈관에 직접 주사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면 마약의 효과가 더 빠르지만 건강에도 더 해롭습니다. 주인공 아친(阿欽)이 마약 주사를 통해 몸과 마음의 고통에서 해방되며 일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사장에서 다쳤다가 중풍에 걸린 아친의 형이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아친에게 과량한 마약을 자신에게 주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던 아친은 그대로 했습니다. 책에는 형의 아픔을 끝낸 아친이 주사기를 형의 무덤에 묻었는데 드라마에는 형을 따라 마약을 주사해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는 책과 드라마의 가장 다른 점입니다. 책에는 아친이 형 대신 계속 살아갈 용기를 생기는 반면 드라마에는 아친의 조카를 희망의 상징으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린리칭은 담백한 필치로 인생의 쓴 맛을 담아냈습니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의 성공에 따라 많은 비판도 나타났습니다. 일부 사람은 린리칭은 공사현장에서 보고 들은 일을 기록했지만 건설근로자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의 삶을 기구한 팔자의 탓으로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게다가 중산계층인 독자들은 건설근로자의 처지를 동정하고 심지어 죄책감 때문에 책을 구입할 수도 있으나 가장 핵심적인 이슈, 즉 계급, 사회구조, 자본주의 체제 등에 대한 사고는 책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비평에 맞서 린리칭은 1년 만에 출판된 새로운 작품 《이런 인생(如此人生)》을 통해 대답했습니다.
이번에 그는 공사장에서 벗어나 청소원, 공장 직원, 성노동자 등 하층 근로자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추악한 세상이 그들을 사회의 가장자리까지 밀어놓고 왜 노력하지 않냐고 따졌습니다. 린리칭은 《이런 인생》의 후기에서 이렇게 작성했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출판 요청을 받았을 때 머릿속에 한 화면이 나타났다. 교회에서 어린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내가 쓴 책을 꺼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도서관에 있던 책의 작가들처럼.’ 린리칭은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디테일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다른 세상'의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민주사회에 서로 다른 관점의 의견이 있어야 더 발전할 수 있고 문학도 마찬가지로 논의가 있어야 빛이 날 수 있겠죠.
엔딩곡으로 《일하는 사람》 동명드라마의 삽입곡 ‘근로자(做事人)’를 띄어드리겠습니다. 가수는 타이완 인디밴드인 어메이징쇼(美秀集團)입니다. 해당 노래는 타이완어로 건설근로자들의 땀과 눈물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직업에는 고저와 귀천이 없습니다. 세계 곳곳에 노력하고 계시는 모든 근로자님께 감사와 경의를 표하면서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을 마치겠습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