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2022년 4월부터 6월까지 방영한 한국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김혜자, 이병헌, 차승원, 신민아 등 톱스타가 한 자리에 모이게 하며 ‘최고의 감독, 최고의 작가, 최고의 배우들의 만남’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 드라마는 제주도 어촌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어부, 해녀, 생선 장수, 얼음 장수 등 바다에 의지해 생활하는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담았습니다.
같은 시기에 타이완 최초로 생선 장수를 주인공으로 작성된 문학작품이 등장했습니다. 보통 사람이 알지 못하던 낯선 존재, 손으로 살짝 만지면 생선의 상태를 바로 알 수 있는 생선의 장인, 과연 어떠한 사람일까요? 오늘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작품은 20년차 생선 장수 린카이룬(林楷倫)이 작성한 에세이집 《생선 장수 위장 안내서(偽魚販指南)》입니다.
책 제목을 보고 아마 이런 의문이 들겠죠? 작가는 실제 생선 장수인데 왜 ‘위장’이라고 한가요? 답은 책에 수록된 후기에 있습니다. 생선 장수가 될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던 린카이룬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업을 잇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할아버지나 아버지 옆에 ‘생선 장수 코스플레이’처럼 돕기만 했는데 결국 도박에 중독된 아버지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진정한 생선 장수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안내서’란 것은 일상에서 승화된 삶의 철학입니다. 따라서 《생선 장수 위장 안내서》는 생선 장수의 기록 문학이면서도 인생의 철학서입니다.
이 책은 3부분으로 나뉘는데 각각 ‘생선 장수로서’, ‘생선 장수의 일상’, ‘생선 장수 3세’입니다. 우선 ‘생선 장수로서’에서 린카이룬은 새벽부터 어시장에서 분주하는 생선 장수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린카이룬에게 “공부 잘 해라. 생선 장수 되지 마라”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아버지가 점차 가산을 탕진하면서 이런 말은 더 이상 꺼내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도 “생선 장사 잘 해라”라는 말로 원래 손자에 대한 기대를 대체했습니다.
어시장 손님이 린카이룬을 보고 아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 아니면 이 형처럼 생선 팔 거야”라고 말하자 린카이룬은 자존심으로 “그래 공부 잘 해라. 형처럼 교통대 가지 마라”라고 말대꾸했습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이 아니어도 린카이룬은 타이완의 명문대인 교통대학교의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만약’이란 것이 없죠. 린카이룬은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우지 못한다. 아빠는 여전히 도박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태어나자 생선을 팔 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잘 팔려면 평생에 배워야 한다. 아빠는 조금만 배웠다. 나는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모두 잘 할 수 있어 못하는 게 없겠지? 생선 장수로서 나는 굉장히 열심히 했다’고 작성했고 스스로의 내면을 묘사했습니다.
사회는 참 잔인한 곳이죠. 어떤 사람이든, 무슨 일을 겪었든 단지 직업 때문에 이렇게 쉽게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처음에 부득이하게 생선 장수가 되었으나 린카이룬은 직무에 적합한 생선 장수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생선 장수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온 가족을 먹여 살리는 위대한 직업입니다. 이 세상에 생선 장수보다 생선을 더 잘 아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린카이룬은 ‘나는 자신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고통을 억지로 삼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서른 살 이후 인생이 나아질지에 대해 의심하는 것보다 믿는 게 더 맞다’고 작성했습니다.
생선을 팔면서 생선 전문가가 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는 안목도 생겼습니다. ‘생선 장수의 일상’에서 린카이룬은 어시장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세월을 다뤘습니다. 그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물고기의 점’입니다. 린카이룬이 작성한 ‘타이완은 섬이지만 타이완 사람은 생선을 잘 모른다’는 문구처럼 부끄럽지만 대부분 타이완인은 지리적 우세를 잘 파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물고기의 점’이 필요합니다. 린카이룬은 수십 년간 어시장 동료와 손님들을 관찰해 문제 9개, 물고기 유형 7개를 정리했습니다. 이 테스트를 하면 생선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고 스스로가 어떤 물고기 유형에 속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마침 한국 영화 <자산어보>에서 설경구와 변요한이 같이 편찬한 해양생물 서적처럼 린카이룬이 스스로의 어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물고기의 점’ 시작합니다! 청취자 여러분, 종이와 펜을 챙기시고 함께 테스트를 해봅시다!
문제1. 생선을 좋아하세요?
좋아하시면 문제2.로 이동하세요. 아니면 테스트 불가합니다.
문제2. 가시가 많은 갯농어 등살을 드세요?
드시면 문제3로 이동하세요. 아니면 문제4로 이동하세요.
문제3. 가시를 발라 먹는 것을 잘 하세요?
잘 하시면 ‘갯장어(海鰻) 유형’입니다. 아니면 문제4로 이동하세요.
문제4. 미디엄 레어의 스테이크를 좋아하세요?
좋아하시면 문제5로 이동하세요. 아니면 문제7로 이동하세요.
문제5. 땀이 많이 나는 운동을 좋아하세요?
좋아하시면 문제6로 이동하세요. 아니면 ‘매지방어(小甘鰺) 유형’입니다.
문제6. 동갈삼치를 드세요?
드시면 ‘다랑어(鮪魚) 유형’입니다. 아니면 ‘동갈삼치(土魠) 유형’입니다.
문제7. 특별한 냄새가 있는 야채나 양고기를 드세요?
드시면 ‘돌돔 유형(石鯛)’입니다. 아니면 문제8로 이동하세요.
문제8. 일부러 특정 상황을 위해 특정 옷을 입으세요?
이렇게 하시면 문제9로 이동하세요. 아니면 ‘돌돔(石鯛) 유형’입니다.
문제9. 문제8을 이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가요?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위하시면 ‘눈볼대(紅喉) 유형’입니다. 아니면 ‘쏨뱅이(石狗公) 유형’입니다.
‘물고기의 점’을 해본 결과, 저는 린카이룬과 같은 다랑어 유형입니다. 다랑어 유형은 목표를 향해 쭉 직진하는 편이고 만약 멈추면 다랑어가 잡힐 때 체온이 빨리 올라가는 것처럼 ‘분신’ 형상이 나타납니다. 워커홀릭일 수도 있지만 목표지향적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이어서 다른 물고기 유형도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섬세하고 참을성이 많은 ‘갯장어 유형’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오랜 시간의 관찰이 필요하는 사람입니다. 내성적이고 도전을 두려워하는 ‘매지방어 유형’은 같은 곳에 있는 것을 선호하며 차근차근 행동하는 편입니다. 다음에 ’동갈삼치 유형’은 사람과 잘 어울리면서 경거망동하지 않으며 계획을 먼저 세우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유형입니다. 항상 마이웨이를 걷는‘돌돔 유형’은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고 친해지기가 비교적 어려운 사람입니다. ‘눈볼대 유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혹은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만 하는 이른바 중간이 없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쏨뱅이 유형’은 ‘눈볼대 유형’처럼 자신의 유일무이한 가치를 인지하지만 가시로 스스로를 위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생선을 통해 자신의 성격과 경향을 알아보는 것은 참 신기하죠. 맞는지 안 맞는지 사실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린카이룬은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싶은 호기심이 항상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타이완 소설가 주요우쉰(朱宥勳)은 “최근 몇 년 동안 타이완 출판계에서 대중이 익숙하지 않은 직업에 관한 문학작품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엽기적 심리를 만족하기 위해 해당 작품을 읽기 때문에 직업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작품의 문학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린카이룬의 작품은 참다운 생활 경험에서 기초해 맹렬하고 자유분방한 필치로 작성되어 말할 필요도 없이 글자체의 매력은 넘친다”며 린카이룬의 데뷔작을 긍정했습니다.
앞으로 린카이룬의 작품들이 한국에서 출판하기를 바랍니다. 그럼 엔딩곡으로 런셴치(任賢齊)의 ‘나는 한 마리의 물고기(我是一隻魚)’ 띄어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