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요즘 배우 전도연과 정경호가 출연한 한국 드라마 <일타스캔들>은 사교육 열풍과 살벌한 입시경쟁 속에 펼쳐지는 로맨스를 다루며 시청률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18년 선풍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 과 다르게 유쾌하고 활발하게 전개되지만 지나친 사교육과 입시경쟁에 대한 풍자와 비판은 적지 않습니다.
한국이든 타이완이든 성적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학부모는 자식의 의지를 무시하고 전적으로 주도해 결국 사랑하는 아이가 스스로의 인생을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죠. 오늘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타이완 작가 우샤오러(吳曉樂)는 2014년에 자신이 7년 동안 과외선생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험에 납치된 가족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를 출판해 작가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2018년에 해당 소설의 동명 드라마가 방영되며 타이완 최대 방송 시상식인 금종장(金鐘獎-골든벨 어워즈-Golden Bell Awards, GBA) TV부문 ‘텔레비전 영화상’을 수상했고 큰 인기를 얻었는데 우샤오러의 작품도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우샤오러는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의 소개에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작성한 9편의 이야기는 대중들이 즐겨 찾는 교육의 신화가 아니다. 어느 편을 읽든 결코 기쁨을 느낄 수 없고 심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심지어 지금도 발생하고 있을 수 있다’며, 타이완의 기형적인 교육 제도가 낳은 비정상한 부모-자녀 관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정서적 협박(Emotional Blackmail, 情緒勒索)’이라는 용어가 타이완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요. 인간관계에서 흔히 듣는 말들.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네가 잘해서 일을 많이 시키는 거야”, “괜찮아, 네가 안 오면 우리 남남이 된 거야, 뭐”,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나를 거절해?”, “네가 정말 이렇게 한다면, 난 그냥 죽어버릴 거야” 협박자는 이처럼 무리한 요구와 위협을 통해 부모, 자식, 친구, 연인, 배우자, 직장동료, 부하 등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죄책감, 공포, 부끄러움 등 부정적 정서를 느끼게 하고 스스로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정서적 협박의 가장 무서운 것은 협박을 하는 사람과 협박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죠. 특히 협박을 받는 사람이 상대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하기에 이러한 협박을 내버려두다 결국 습관이 되어 당연시하게 됩니다. 이러한 악순환으로 사람마다 모르는 사이에 정서적 협박자가 될 수 있습니다.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는 말은 바로 정서적 협박에 대한 반항입니다. 과거에는 자녀가 부모의 뜻을 순순히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나, 자식을 ‘내 아이’가 아닌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우는 것은 점차 추세가 되고 있습니다.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에서 첫 편으로 등장한 <사람의 자식, 고양이의 아이(人子,與貓的孩子)>는 어머니의 정서적 협박으로 정신장애에 시달리는 학생 ‘안경이(眼鏡仔)’의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성적이 왔다갔다하는 안경이가 어머니와 과거 과외선생로부터 체벌을 많이 받았기에 학습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이 안경이 집에 가던 첫날에 그의 어머니는 “아이고, 선생님, 이 아이는 정말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요. 이런 좋은 환경에서 왜 공부를 못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업 과정에서 주인공은 안경이가 문제를 잘 못 풀 때마다 눈을 질끈 감고 팔로 스스로를 감싸는 등 자아방위 행위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안경이는 자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했을 뿐인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답이 틀리면 바로 체벌을 받는 안경이에게 실수는 존재하면 안되는 일입니다. 따라서 문제를 풀 때 ‘내가 잘못 쓸 수도 있다. 틀리면 큰 일 나다’는 응어리가 항상 귀 옆에서 속삭이고 학습에 대한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죠.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는 안경이에게 “네가 공부 못해서 아빠가 집에 안 돌아오는 거야. 아빠가 니가 구제불능이래. 널 보면 짜증난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전형적인 정서적 협박이죠. 안경이 어머니는 원만하지 못한 혼인을 안경이의 탓으로 돌리고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어느날 주인공이 안경이 집에서 안경이 어머니가 입양한 새끼 고양이 5마리를 봤는데요. 안경이 어머니가 세심하게 고양이들에게 우유도 먹이고 전기 담요도 켜고 옛날에 보지 못했던 따뜻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우샤오러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고양이의 아이들이 공부할 필요가 없다. 잘 먹고 잘 자면 된다. 등급 테스트와 같은 시험도 없다. 따라서 안경이 어머니는 핏줄이 당기지도 않고 10개월 동안의 임신 과정을 겪지도 않는 고양이의 아이를 이렇게 자상하게 돌볼 수 있다”고 작성했습니다.
우샤오러는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에 수록된 마지막 편 <우등생의 독백(高等生的獨白)>에서 자신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영어학과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한 그는 어머니의 견지로 법대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졸업 후 변호사시험을 포기하고 과외를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스스로의 진로 선택을 간섭하는 것에 대해 우샤오러는 “나의 어머니는 처음으로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과 특정 직업에 대한 환상을 나에게 던졌고, 이는 우리 관계의 가장 큰 상처가 되었다”고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소설 완성 후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사라졌습니다. 과외선생으로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학부모를 너무나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인터뷰에서 “법학의 훈련 덕분에 양성된 자주적 사고 능력은 글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문학은 법학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관점이 필요하기 때문이죠”라고 말했습니다. 과거 경험했던 것은 허비가 되지 않고 오히려 지금의 우샤오러를 만들어줬습니다. 우샤오러는《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를 통해 타이완의 교육 문제를 지적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도 화해했습니다.
현재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는 아직 한국에서 출판되지 않지만 우샤오러의 다른 작품 《상류 아이(上流兒童)》와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我們沒有秘密)》는 이미 한국판을 출시했습니다. 《상류 아이》는 타이완의 ‘스카이 캐슬’이라 부리고 학부모 세계의 신분상승 게임을 다루는 소설입니다.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를 작성하는 동안 우샤오러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했기 때문에 많이 지쳤고 두 번째 작품《상류 아이》를 작성할 때 다른 관점에서 타이완의 교육 문제를 형상화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께서 기회가 되시면 우샤오러의 작품을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 매우 좋아하는 타이완 인디밴드 ‘라오왕밴드(老王樂隊)’의 노래 <학원 입구에 내 흑백 사진이 높이 걸려 있다(補習班的門口高掛我的黑白照片)>를 소개드리고 싶은데요. 해당 노래는 우샤오러의 작품처럼 지나친 사교육으로 원래 모습을 잃어버리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려냈습니다. 그럼 이 곡을 띄어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吳曉樂,《你的孩子不是你的孩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