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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장아이링’ 리웨이징(李維菁)의 도시소녀학

  • 2023.01.02
포르모사 문학관
‘타이베이 장아이링’이라 불리는 작가 리웨이징 - 사진: 리웨이징 페이스북 캡쳐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오늘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기 전에 우선 요즘 타이완과 한국의 사회 현상에 대해 좀 살펴봅시다. 미국 중앙정보국 월드 팩트북(CIA World Factbook)이 발표한 2021년 출산율 통계에 따르면 한국과 타이완은 최하위권에 들어가 있는데요. 양국의 조혼인율도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물론 삼포, 오포세대처럼 경제 및 사회적 압력으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사람이 존재하지만 전통적인 관습이 아닌 소위 마이웨이를 걷는 사람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8년에 돌아가신 작가 겸 문화예술 기자 리웨이징(李維菁)은 바로 마이웨이를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리웨이징의 첫 소설인 《나는 쉬량량(我是許涼涼)》이 출판되자 2010년 타이베이국제도서전(台北國際書展)에서 대상으로 수상되어 주인공 쉬량량은 순식간에 타이완 도시 여성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타이완 인기 작가 뤄이쥔(駱以軍)은 《나는 쉬량량(我是許涼涼)》을 읽고 나서 '장아이링 문체가 아닌 장아이링(一種不是張腔的張愛玲)'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나는 쉬량량》은 사회생활을 오래 경험한 38살 여성인 쉬량량은 26살 남성에게 차였고 사랑이라는 허망한 환영 속에서 홀로 쓸쓸히 걷는 모습을 다룬 소설입니다. 데뷔작 《나는 쉬량량》을 통해 리웨이징은 '도시소녀학'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문체로 유명해졌는데요. 리웨이징의 '소녀학'은 명칭과 반대로 온정적이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날카로운 말투로 그의 특유한 미학을 구축했습니다. 리웨이징이 인터뷰에서 방금 실연당한 친구가 《나는 쉬량량》을 읽다가 너무 슬퍼져 책을 접었다는 사연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이처럼 직설적인 글로 독자의 마음 속 가장 부드러운 곳을 확 찔러야 독자의 마음에 잘 와닿을 수 있습니다. 장아이링처럼 삶의 황량함을 냉혹하게 표현하기에 ‘타이베이 장아이링’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리웨이징의 작품은 소녀처럼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라는 것보다 이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과연 순수한 마음은 나이와 상관없이 항상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됩니다. 쉬량량의 결말은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의 뿌리깊은 고정관념으로 인한 소통의 실패입니다. 결혼 적령기를 넘은 여성에 대한 부정적 시선, 서로의 나이 차이로 인한 갈등,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거짓말. 쉬량량은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것은 여전히 수포가 되어 사라져 버렸습니다. 리웨이징은 이처럼 추악한 인성을 폭로하면서 여성이 사랑과 꿈에 대한 집착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나는 쉬량량》에서 리웨이징의 소녀학을 잘 설명하는 문구가 있는데요. 해당 문구는 리웨이징의 글 중 제 마음에 가장 와 닿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리웨이징은 아래와 같이 썼습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계급 및 권력의 구조가 이미 정해진 현실을 알게 된 것인가? 한때 자신을 공주로 여겼던 소녀들이 지금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하품을 하고 편의점에서 세 끼를 대충 때우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버렸다. 과거의 공주는 이제 인생의 하녀에 불과하다. 더 슬픈 것은 공주의 꿈이 이미 깨졌으니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소녀의 마지막 부분을 잘 지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리웨이징이 말한 ‘소녀’는 바로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순수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쉬량량》부터 마지막 작품인 《인어기(人魚紀)》까지 리웨이징은 시종일관 도시 여성을 주인공으로 창작해 왔습니다. 이 작품들이 리웨이징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되어 자전적인 소설이기도 합니다. 작품 속에 등장한 도시 여성들이 항상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자신이 확신하는 방향을 향해 사랑을 추구합니다. 리웨이징은 바로 여러 여성 캐릭터를 통해 군상화를 그리듯이 타이완 여성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결혼 적령기를 넘은 리웨이징이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 눈에 저처럼의 싱글 여성은 계획없이 막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모두 사랑받고 싶어요. 그런데 지신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상대방의 사랑을 얻는 것은 제가 원하지 않아요.’라고 아주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리웨이징은 번화한 도시에 있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들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항상 밝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사실 상 마음 속은 매우 공허하고 사랑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가 여성에 대해 엄격한 표준을 가지고 있고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난 여성의 경우 더욱 심각합니다. 이러한 배경 하에 리웨이징은 타이완 문학 작품 중 자주 등장하지 못한 도시 여성을 주인공으로 창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리웨이징의 작품을 읽으면서 주인공들이 사랑을 추구하기 위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리웨이징의 강연을 보고 나서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리웨이징은 강연에서 ‘우리는 순수함을 가져야 이 험악한 세상에서 버틸 수 있다. 우리는 세상물정을 잘 이해해야 순수함의 가치를 알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쉬량량이든 다른 주인공이든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여전히 순수한 행복을 찾으려는 갈망이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사랑에 빠질 때 머리가 아닌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달려가 듯이 사랑에 대한 간절함은 인류의 본능입니다. 다만     단지 순수함에 집중하기보다 세상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순수함의 중요성을 더욱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회 규범에 순응하라는 뜻이 아니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해해야 순수함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타이완 최고 학부인 타이완대 출신, 큰 신무사에서 임원으로 근무했던 리웨이징은 정해진 길을 걷지 않았고 시회 기성 규범에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리웨이징이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으며 동료의 요청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일과 창작을 더 이상 병행할 수 없기에 신문산업이 한창 좋을 때 단호히 회사를 떠났고 문학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17년 암에 걸려 2018년에 안타깝게 돌아가셨습니다. 

리웨이징의 마지막 작품인 《인어기(人魚紀)》는 리웨이징이 돌아가신 후 2020년 타이베이국제도서전 소설상을 수상했습니다. 리웨이징은 두 사람이 필요한 볼룸 댄스로 사회규범을 상징하고 주인공은 수업 시간에 항상 파트너를 구하지 못해 마침 육지에 온 인어공주처럼 서 있는 것조차 힘듭니다. 그런데 쉬량량이 사랑을 추구하는 열정처럼 인어기 주인공은 혼자라도 열심히 연습하고 당당하게 춤춥니다. 어른의 잔혹 동화라고 평가된 《인어기(人魚紀)》는 리웨이징의 소녀학이 이어지는 작품이나 《나는 쉬량량》보다 더욱 생명력이 있고 활기차고 마지막 소설로 리웨이징의 일생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리웨이징은 냉정한 관점에서 도시 여성을 주인공 한 문학 세계를 만들어 냈는데요. 창작을 통해 리웨이징도 스스로를 더욱 포용하게 되고 굳이 다른 사람의 기대를 만족하기보다 자신이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여성 독자로서 리웨이징이 남긴 글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고 이처럼 찬란한 소녀학을 통해 저는 항상 순수한 자아를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리웨이징의 작품이 한국에서 출판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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