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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으로 시를, 왼손으로 산문'을 쓴 타이완 작가 - 위광중

  • 2022.10.28
포르모사 문학관
원향인 중국을 향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 '향수(鄉愁)'로 한국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시인이자 산문가 위광중(余光中) - 사진: CNA

오늘 포르모사문학관 시간에서 제가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 싶은 문학가는 아마 이미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타이완 작가 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은 이 작가에 대해서 소개해보도록 하는데 이 작가는 바로 원향인 중국을 향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 '향수(鄉愁)'로 한국에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시인 위광중(余光中)입니다. 20여 권의 시집, 20여 권의 산문집, 10여 권의 평론집, 10 여 권의 번역본 등 시, 산문, 평론, 번역 분야에서 모두 거대한 성과를 거뒀으며, 특히 “오른손으로 시를, 왼손으로 산문”을 쓴 위광중의 시와 산문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휼륭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오늘은 위광중의 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다음주 금요일에는 그의 산문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위광중은 1928년 10월 21일 중국 난징에서 태아났습니다. 22세인 1950년 가족과 함께 국민당 정부를 따라 타이완 타이베이로 와서 같은 해 9월에 타이완국립대학교 외국어문학과에 진입했고, 대학교 4학년 때인 1952년 《뱃사공의 슬픈 노래(舟子的悲歌)》라는 시집을 내놓으며 타이완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2년 후인 1954년에 친즈하오(覃子豪), 덩위핑(鄧禹平), 중딩원(鍾鼎文), 샤징(夏菁) 등과 함께 현대시 문학 단체인 ‘남성시사(藍星詩社)’를 창립하고 문학 잡지 <남성>를 출판하며 타이완 현대신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1958년부터 1971년까지 위광중은 미국 3번 갔습니다. 첫번째 갔을 때는 아이오와대학교에서 문학창작, 미국문학, 현대미술 등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았고, 두번째 갔을 때는 미국 국무원의 초청으로 1년 동안 일리노이,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뉴욕 등 여러 주의 대학교에서 객원교수에 임명됐습니다. 3번째 갔을 때는 미국 교육부의 초청으로 콜로라도주 교육청에서 외국 수업 컨설턴트로 2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1974년에서 1985년까지 홍콩중문대학교에서 중문과 교수를 맡았고, 이후 가오슝 쓰즈완(西子灣)에 이주하여 타이완중산(中山)대학교 교수, 문학원 원장, 외국어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2017년 12월 14일 타이완 가오슝(高雄)의 한 병원에서 폐렴으로 향년 90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위광중의 시는 변화무쌍한 풍격이 특색인데 이는 중국과 타이완, 미국, 홍콩 등을 유랑한 시인의 개인적인 경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위광중의 시작은 초기에는 서정적이고 사실적이며 격률을 준수하고 문장의 대칭미를 중요시했습니다. 그러다 1950년대 후기부터 미국에 머물게 되면서 그는 구미 현대 문학을 접하여 큰 영향을 받아 작품에 현대시 요소를 넣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작품의 깊이와 넓이가 훨씬 확대됐습니다. 1964년, 그는 중국 고전문학을 현대문학과 결합하여 ‘신고전주의’적 색채를 지닌 시집 《연꽃의 연상(蓮的聯想)》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60년대 미국 포크송이 부흥하고 록음악이 부상하면서 위광중은 “시와 음악의 결합 역시 트렌드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보다 쉬운 언어를 사용하고 문장에 리듬을 살려보아 《백옥여주(白玉苦瓜)》, 《향수(鄉愁)》 등 음악성이 비교적으로 강한 시집들을 발표했습니다. 이 시집들에 수록된 ‘회선곡(回旋曲)’, ‘강호상(江湖上)’, ‘요요민요(搖搖民謠)’ 등 다수의 시작품은 타이완의 작곡가 양셴(楊弦), 리타이샹(李泰祥) 등에 의해 캠퍼스 대중가요로 재탄생하여 타이완에서 오랫동안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캠퍼스 대중가요로 인해 현대시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훨씬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74년에서 1985년까지 홍콩중문대학교에서 근무했을 때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며, ‘중국은 어머니이고, 타이완은 와이프라고 하면 홍콩은 연인’이라고 위광중은 말했습니다. 그는 이 시기에는 홍콩에서의 삶과 보고 들었던 것들을 소재로 명쾌학 분위기의 시작을 쓰기도 했으나 고향인 중국과 타이완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시에 담아내며 이른바 ‘향수시’를 많이 작성했습니다. 1985년, 위광중은 가오슝에 이주하여 현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그의 작품은 환경 보호 등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한 경우가 많아지며 점점 ‘향토화(鄉土化)’되어 갔습니다.  

위광중의 시는 여행시, 고전시(古典詩), 향수시, 해양시(海洋詩), 타이완시 등을 포함하여 장르가 매우 다양한데, 그는 장르를 넘나들을 수 있었던 것은 거주지 이동에 따른 생활환경의 변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소재를 찾아내고, 또 개인 특색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문화의 장점을 적절하게 흡수하여 발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2017년 국가교육연구원 보고에 따르면 그의 작품 중 8편이나 타이완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재로 활용됐는데 그만큼 그의 작품들은 정말 상당한 영향력과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중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그의 대표작은 〈향수(鄉愁)〉인데 그래서 오늘의 포르모사문학관 방송 엔딩에서는 ‘향수’를 바탕으로 한 동명의 노래를 마무리곡으로 띄어드리면서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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