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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문학사의 거장' - 예스타오

  • 2022.05.27
포르모사 문학관
타이완 소설가이자 문학 평론가인 예스타오(葉石濤)를 소재로 한 영화 - 사진: '台灣男子葉石濤'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 캡쳐

일본 통치 시기와 중화민국의 소설가이자 문학 평론가인 예스타오(葉石濤, 엽석도)는 1925년 11월 1일 타이난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6살 때부터 일본어로 소설을 만들어 여러 문학잡지에 투고했고 뽑히지 못했지만 <문예타이완(文藝臺灣)>의 창립자인 니시노미츠루(西川滿)의 눈에 들어, 1943년 중학교를 갓 졸업하자 <문예타이완> 편집보조로 발탁됐습니다. 당시 낭만주의를 숭상했던 예스타오는 <문예타이완>에서 일하면서 양쿠이(楊逵), 우줘류(吳濁流) 등 타이완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본토 작가들을 알게 되고 큰 영향을 받았는데 이후 그의 문학관이 '예술성 우선'에서 점차 ‘현실 비판’으로 바뀌어가면서 그는 식민자로서 타이완을 바라보며 ‘타이완 문학’을 ‘일본 문학’의 분파로 여기고 있었던 니시노미츠루의 관점에 더 이상 동의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1944년에 <문예타이완>을 떠났고 타이난으로 돌아가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는 일본어가 아닌 중국어로 글을 쓸 수 있기 위해 <홍루몽(紅樓夢)> 등 문학작품을 많이 읽으면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국민당이 타이완 접수를 위해 타이완으로 파견한 행정장관이 일본어사용 금지령을 내려 당시 수많은 문학인들이 중국어를 하지 못해 글을 쓸 수 었었던 상황에서 예스타오는 비교적으로 일찍 중국어를 배워서 기타 문인보다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1949년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철퇴하고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타이완 내 공산당 지하당원과 사회주의 지지 성향 분자에 대해 대적인 색출 작업을 벌이면서 백색 테러의 시대가 열렸는데 예스타오도 그 피해자가 됐습니다. 어느날, 그는 중국어로 된 좌파 사상의 책을 여러 권 샀는데 비록 그는 판매자가 공산당원이란 것을 모르고 공산당 활동에 참여한 적도 없지만 1951년“공산당원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고발하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체포되어 3년 동안 감옥에 감혀 있었으며, 1954년 석방된 후에도 ‘사상범’으로서 사회적인 배척을 당했습니다. 그는 1951년 투옥될 때부터 1965년까지 무려 15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는 출소한 지 몇 년 만에 교사가 다시 됐지만 정부 관련 인원의 감시로 잦은 이직과 어려운 삶을 겪으므로 글을 쓸 심력이 없었기 때문이고, 아무 죄 없이 감옥에 갇힌 경험은 그로 하여금 글을 쓸 용기를 잃게 했기 때문이기고 합니다.

1965년 40세의 예스타오는 우줘류가 편집장을 맡은 문학잡지 <타이완 문예(台灣文藝)>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으며, “정치적과 사회적인 압박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타이완 본토 문학을 발전시키는 데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 여전히 있구나”라고 인식하고 나서 문학 창작을 다시 하기로 했고 15년 만에 <타이완의 향토문학(台灣的鄉土文學)>이란 평론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타이완의 향토문학>에서 문학이 반드시 환경과 역사를 기반으로 함을 강조하며 타이완 문학의 본토화를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 평론문은 큰 주목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예스타오는 타이완 문학 발전을 촉진하는 데 애쓰고 ‘타이완 문학의 어머니’라고 불렸던 작가 중자오정(鍾肇政)과 친구가 됐습니다. 예스타오는 타이완 남부 타이난에서 태어났고 중자오정은 타이완 북부 타오위안에서 태어나서 사람들이 항상 “북부는 중자오정, 남부는 예스타오(北鍾南葉)”라는 말로 두 작가를 묶어서 지칭합니다.

1987년 2월, 예스타오는 아무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 타이완 문학사를 정리해 <타이완 문학 사강(台灣文學史綱)>이란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타이완인이 작성한 최초의 타이완 문학사 자료로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스타오는 ‘타이완을 중심으로 한다’라는 주장을 가지고 명나라 시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타이완 문학의 발전과 시대별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평가했습니다. <타이완 문학 사강>이 발표된 지 약 5개월이 지난 후 38년이 넘는 계엄령이 해제되고 예스타오와 문학계, 나아가 사회 전체를 억누르던 족쇄가 마침내 풀렸습니다.

1990년대부터 예스타오는 백색테러와 다민족 문화를 소재로 여러 작품을 적성하여 발표했습니다. 예를 들면 24편 단편소설로 구성된 소설집 <빨간 신발(紅鞋子)>은 백색테러 시기 삼엄한 사회적 분위기 속의 타이완인들의 일상생활과 정부의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숙청과 박해 행위를 묘사합니다. 그리고 <시라야족의 마지막 후손 판인화(西拉雅族末裔潘銀花)>라는 단편소설집은 고산족이 아닌 핑푸족(平埔族) 중의 시라야족(西拉雅族)의 여인 판인화의 삶을 묘사함으로써 시라야족의 생활 방식과 종교 신앙, 한족과의 동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2008년 12월 11일에는 예스타오는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학적인 충격으로 문장의 예술성을 추구하는 낭만주의 작가에서 타이완 사회 현황을 관심하는 문학인으로 변한 예스타오는 정치적인 압박으로 집필활동을 15년이나 중단한 적이 있지만 타이완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문단에 돌아와 ‘기록자’로서  타이완 문학사 개척 및 연구에 막대한 공헌을 하여 ‘타이완 문학사의 거장’이란 칭호로 후대인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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