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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i 중앙방송국Rti 중앙방송국국제적으로 유명한 타이완 원주민 작가 - 와리스•노칸

  • 2021.11.19
포르모사 문학관
타이완 원주민 부족인 타이야(泰雅)족 출신 작가 와리스•노칸(瓦歷斯•諾幹, Walis Nokan) - 사진: '瓦歷斯•諾幹 디지털 주제관' 사이트 페이지 캡쳐

타이완 원주민 부족인 타이야(泰雅)족 출신 작가 와리스•노칸(瓦歷斯•諾幹, Walis Nokan)은 작품이 가장 풍부하고 사명감이 가장 강한 타이완 원주민 작가 중의 하나로 꼽힙니다. 시와 산문을 통해 진실한 타이완 농촌의 모습을 기록하는 작가 우청(吳晟)의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와리스•노칸의 작품은 땅과 타이야족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주제로 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의 첫 산문집 《영원한 부락(永遠的部落)》은 바로 시대 흐름 속의 타이야족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경향이 강합니다. 그는 타이완 원주민으로서의 자아정체성을 갖고 타이야족의 경제, 문화, 교육, 생태 및 기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시, 산문, 소설, 평론, 보도문학 등 장르를 망라하여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의 작품은 1990년대 10년 간 타이완의 거의 모든 중요 문학상 수상과 함께 독자로부터 만장일치로 호평을 받은 것 외에도 여러 언어로 번역돼 출판되기도 했는데 와리스•노칸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타이완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와리스•노칸은 1961년 타이완 중부 타이중(臺中)현 허핑(和平)향 미후(Mihu) 부락(현 타이중시 허핑구 즈요우自由촌 솽치사구雙崎社區)에서 태어났습니다. 중학교 때 동창에게 모욕을 당해 원주민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민족임을 알게 됐으며, 원주민이 지식이 부족한 야만민족이 아닌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성립타이중사범대학(현 국립타이중교육대학) 진학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문학의 매력을 처음으로 느끼게 된 것은 15살 때 친척 집에서 군사 관련 전문 잡지 《청년전사보(青年戰士報)》(《청년일보(青年日報)》의 전신)의 문화면을 읽을 때였습니다. 대학교 때부터는 시 동아리에 가입해 저우몽뎨(周夢蝶), 양무(楊牧) 등 현대 시인의 작품을 읽고 현대 주의 문학 경향을 가진 시와 산문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타이완 현대 주의 문학의 가장 선명한 특징은 정치 무관심과 현실과 동떨어지는 것이라 와리스•노칸은 당시에도 부족과 사회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이후 우성의 시작을 접하게 되어 현대시에 대한 관점이 변해서 취약계층 사람의 생활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와리스•노칸은 동부 화롄(花蓮)현 푸리(富里)향에서 교사를 하는 동시에 ‘류아오(柳翱)’라는 필명으로 창작을 계속했습니다. 이 시기의 작품은 대부분 그와 학생들의 교류를 소재로 만들었습니다. 1985년 그는  타이완 사회주의를 접한 이후 좌익 잡지 《샤차오(夏潮)》와 계엄령 시행 기간 동안의 금서를 열독하고 사회주의 정당 ‘공당(工黨)’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원주민과 타이완 사화의 현황을 알게 되고 과거 이름 와리스• 유칸(瓦歷斯‧尤幹)으로 타이완 원주민 이슈 관련 문장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와리스•노칸은 원주민 친구와 원주민 관련 보도, 평론, 문학, 전설, 문화 등을 다룬 잡지 《원보(原報)》를 공동 창간했습니다. 1990년에는 전처와 함께 《사냥꾼 문화(獵人文化, 타이완 원주민 인문 연구센터의 전신)》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심도 있는 현장조사 및 부족 역사 저술과 더불어 대학에서의 원주민 문화 인재를 양성하는 데도 치력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는 문화면을 통해 오랫동안 잃어버린 원주민의 자신감을 회복해야 물질문명과 국가폭력에 저항하고 아름답고 의미있는 문화자산을 수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994년부터 와리스•노칸은 고향에 돌아가 모교에서 교사를 하면서 부락 문화 추진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장조사를 하던 중 자신 이름의 발음이 틀린 것을 발견해서 이름을 ‘와리스• 유칸’에서 ‘와리스•노칸’으로 정명했습니다. 1996년 와리스•노칸은 자신 민족 문화에 대한 동경, 동포에 대한 사랑, 현재 교육 체제에 대한 비판 등을 담은 시작 〈이노의 재답사(伊能再踏查)〉로 ‘시보(時報)문학상’ 신시 부문 심사위원장을 수상했으며, 다음 해에는 타이야족 특유의 신화 전설과 축제, 사냥 의식 등을 다룬 산문집 《선글라스를 쓰는 날다람쥐(戴墨鏡的飛鼠)》를 발표해 자신만의 창작 방향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1999년 고향 Mihu부락이 921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어서 와리스•노칸은 부락의 재건을 위해 ‘Mihu 재건팀’을 창단했으며 재난 이후의 부락 상황을 사회 대중에게 알리려고 동년 10월에 커뮤니티 신문 《MIHU속보》를 창간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대지진을 계기로 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후대에 문학을 전승하기로 결심하고 책 읽기와 글씨기를 추진하는 데 힘을 애써 왔습니다.   시와 독자 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그는 ‘누구나 지을 수 있는 2행시’를 중심으로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며 학생들이 단 2마디 말로 한 단어를 묘사해야 하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와리스•노칸은 〈열쇠(鑰匙)〉를 주제로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니까/내 마음을 열어줘 봐’라고 2행시를 지었습니다. 또 〈팔레스타인(巴勒斯坦)〉를 주제로 ‘사랑스러운 아이야, 우리의 집과 고향은/모두   이스라엘에 있다’라고 2행시를 지었습니다.

글쓰기를 함으로써 타이야족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며 타이야족 문학과 문화를 전승하는 와리스•노칸은 타이완 원주민 문학에 아주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는데요. 그의 작품을 통해 타이완 원주민 문화를 더 널리 알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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