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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i 중앙방송국Rti 중앙방송국타이완어로 타이완 풍토인정을 묘사하는 타이완 시인 - 샹양

  • 2021.11.05
포르모사 문학관
타이완어로 시를 쓰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 샹양(向陽) - 사진:RTI

타이완 방언, 즉 타이완어로 시를 쓰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 샹양(向陽)의 본명은 린치양(林淇瀁)이며 1955년 타이완 중부 난터우(南投)현 루구(鹿谷)향에서 태어났습니다. 필명 샹양은 중국 송나리 시인 소린(蘇麟)이 범중엄(范仲淹)에게 벼슬을 추천받고자 써 바친 시 ‘近水樓臺先得月(근수루대선득월, 물 가까이 있는 누각이 달을 먼저 얻고), 向陽花木早逢春(향양화목조봉춘,해를 향하는 꽃과 나무는 봄을 먼저 맞이한다)에서 딴 것입니다.

샹양은 13세의 어린 나이에 첫 시작 〈답답함, 누구에게(愁悶,給誰)〉를 발표했으나 시인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지게 된 것은 중국 전국 시대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이소(離騷)>를 읽은 후였습니다. 초나라 사람이 초나라 언어로 초나라 이야기를 다루는 <이소>는 샹양이 시인이 되고 싶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타이완 본토의식을 가장 잘 드러내는 언어, 타이완어로 시를 쓴다는 생각이 생기게 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샹양은 친구와 함께 문학 동아리를 결성하여 두보(杜甫), 이태백(李太白), 소동파(蘇東坡) 등 중국 고대 문인의 작품을 읽으며 시를 짓는 방법을 공부하는 동시에 정처우위(鄭愁予), 양무(楊牧)등 현대 시인의 작품을 읽고 암송하기도 했습니다. 2학년 때는 ‘디윈(笛韻)시사’를 설립해 시 잡지 편집과 창작을 통해 현대시에 대한 이해와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73년 샹양은 문화대학교 일본어문학과에 진학하고, 2학년 때는 ‘화강(華岡)시사’ 회장 직을 맡게 됐습니다. 20살이 된 그는 앞으로 어떤 시를 집중 써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타이완어만 할 줄 아는 아버지가 자신의 시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당시 국어교육을 강조하고 방언을 억합하는 언어 정책 시행에도 불구하고 타이완어로 시를 작성하기로 했습니다. 샹양은 어린 시절에 자주 집 근처의 극장에 가서 타이완 전통 희극인 가자희(歌仔戲)와 포대희(布袋戲)를 봤으며 고등학교 때에도 라디오 방송극을 많이 들었는데 전통 희극과 방송극의 음악성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시 작성 시 낭송하면서 수정하는 습관을 양성했습니다. 그는 가족의 이야기로부터 쓴 겁니다. <할아버지의 담뱃대(阿公的薰吹)>, <할머니의 눈물(阿媽的目屎)>, <어머니의 머리카락(阿母的頭鬘)>, <아버지의 도시락(阿爹的飯包)>을 다 쓰고 나서 마을에 전해지는 일화도 소재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렇게 하나 하나의 아름다운 타이완어시를 남겼습니다.

타이완어시 뿐만 아니라 중국 고시를 애호하는 샹양은 ‘기존 시의 형식에서 해방되자’는 일부 문학인의 주장을 도전하기 위해 한편의 시는 2 문단으로 구성이 되고 한 문단은 5 문장으로 구성된 ‘십행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율격을 사용해도 시의 내용과 예술적 표현에 영향을 미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습니다. 이로 인해 십행시도 샹양의 문학 특색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중국어와 타이완어를 섞어 사용해 〈교설시(咬舌詩)〉라는 시작을 만들었습니다. 이 시는 타이완 각종 사회 혼란, 예컨대 도박, 오토바이 폭주, 기업과 정치의 비열한 담합, 국가소유 토지 무단점유, 산림 벌채 등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읽을 때 마침 랩하는 것처럼 리듬감을 느껴서 샹양은 ‘타이완 랩의 시조’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교설시는‘혀를 깨물게 만드는 시’라는 뜻인데 샹양은 시 제목을 이렇게 지은 원인은 두 가지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나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룬 이 시는 독자들로 하여금 혀를 깨물고 자살하고 싶게 할 수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 시는 중국어와 타이완어를 번갈아 쓰고 있어서 읽을 때 실수로 혀를 깨물기 쉽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샹양의 시의 내용은 대부분 타이완의 풍토인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첫 시집 〈은행의 추앙(銀杏的仰望)〉에 수록된 동명 시작은 그의 고향 난터우 루구에 대한 무한한 그리움과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난터우 루구에는 은행나무 숲이 있어 샹양이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풍경이라 그에게 은행은 고향의 상징입니다. 그는 또한 〈풀(草根)〉과 〈씨앗(種籽)〉을 통해 타이완인의 강인한 생명력을 묘사합니다.

타이완의 역사와 정치 발전은 또한 샹양의 창작 소재입니다. 1979년에 작성하고 시보(時報)문학상 서사(敘事)시류 우등상을 수상한 〈우서(霧社)〉는 타이완 원주민 무장 항일 봉기, ‘우서사건’을 다룹니다. 1990년에 작성한 〈들백합이 조용히 피고 있다---3월 학생운동에 참여한 타이완 청년들에게(野百合靜靜地開——寫給參加三月學運的台灣青年)〉는 1990년 3월에 발생한 ‘들백합 학생운동’을 바탕으로 만든 것입니다. 시에서 중정기념관에 앉아 있는 대학생들을 '타이완 곳곳에 피어 있는 들백합'으로 비유하며 타이완섬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샹양의 시는 음악성이 높은 것은 특징인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시는 노래로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타이완 여가수 치위(齊豫)의 대표작 중 하나 〈국화의 탄식(菊嘆)〉의 가사는 바로 샹양이 1978년에 발표한 동명시작의 내용을 각색해서 만든 것입니다. <어머니의 머리카락>과 <아버지의 도시락>도 노래로 만들어져 아직도 불리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그는 또한 〈가을 바람은 나의 그리움을 알지 못한다(秋風讀未出阮的相思)〉라는 노래로 타이완 음악 시상식 금곡장(金曲獎) 작사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타이완어로 타이완의 이야기를 묘사하는 타이완 시인 샹양은 타이완 작가 중에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타이완 문학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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