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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i 중앙방송국Rti 중앙방송국'탕자 시인' - 정처우위

  • 2021.10.01
포르모사 문학관
'탕자 시인(浪子詩人)'이라고 불리는 '정처우위(鄭愁予)' - 사진: 타이중시정부 공식 사이트 캡쳐

1990년대에 ‘가장 인기있는 작가’로 여러번 선정된 남자 시인의 정처우위 (鄭愁予, 1933. 12. 04~)의 본명은 정원타오(鄭文韜)이며 필명 ‘처우위’는 중국의 애국시인으로 존경을 받는 굴원(屈原)의 작품인 <구가(九歌)> 중 ‘상부인(湘夫人)’에 나오는 가사 “帝子降兮北渚,目眇眇兮愁予。(제자강혜북저/ 목묘묘혜수여, 뜻:상제의 딸이 북쪽 소주에 내려와/아득히 멀어 내 마음을 슬프게 한다.)와 금나라에 격렬히 저항한 남송 우국시인 신기질(辛棄疾)의 〈보살만(菩薩蠻)〉 “江晚正愁予,山間聞鷓鴣。(강만정수여/산간문자고, 뜻: 해가 질 무렵, 나는 마음에 슬픔이 가득차 있으며/깊은 산에서 자고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에서 유래했습니다. 정처우위의 시 작품은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조화가 잘 이뤄진 것은 특징입니다.

정처우위는 1933년 중국 산둥성에 태어난 명나라 유신 정성공(鄭成功)의 11대손으로 군인 명문가족에서 자랐습니다. 1949년 국공내전이 끝난 후 국민당 고위급 군인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국민당 정부를 따라 타이완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는 15세의 나이에 신시를 쓰기 시작했고 16세에는 중국에 있는 동안 쓴 시를 정리해 자비로 첫 시집 《짚신과 뗏목(草鞋與筏子)》을 발표했습니다.

1951년 정처우위는 현재 필명으로 <늙은 뱃사람(老水手)>을 발표했습니다. 이 시는 정처우위가 타이완에서 정식적으로 발표한 첫 시작으로 뱃사람의 가족과 이별한 고통과 항해 과정의 위험 및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이 시작은 그가 대학교 1학년 때 중국청년구국단(中國青年救國團) 활동에 참가해 펑후에 갔을 때 거기서 만난 중국 산둥 망명학생에게 영감을 얻어 작성한 작품입니다. 슬프게도 어떤 산둥 망명학생들은1949년 7월 13일 일어난 펑후 7.13 사건으로 인해 억울하게 사망했습니다. 1949년 7월 13일, 펑후 방위 사령부가 펑후로 망명된 산둥 옌타이(煙台) 연합중학교 학생 8,000여 명을 군인으로 강제 모집하려고 했는데 교장인 장민즈(張敏之)가 학생의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간첩으로 모함돼 제포되고 기타 학생과 교사도 고문을 비롯한 일련의 군사적 부당대우를 당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희생자 수는 약 300명으로 백색테러 시대 최대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외성인의 228사건'이라고도 불립니다. 2018년 정처우위는 펑후현정부 문화국에서 <늙은 뱃사람(老水手)>을 공공 예술로 사용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1955년 그는 작가 지셴(紀弦)이 창립한 문학 잡지인 《현대시(現代詩)》에 시집 《꿈의 땅 위에(夢土上)》를 발표했는데 그중 시작 〈착오(錯誤)〉는 ‘현대 서정시의 절창’이라고 불리며 타이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됐을 뿐만 아니라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국가의 화어 교재로 선정되기도 하고 노래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시의 마지막 두 마디 “내가 탄 말의 발굽소리가 아름다운 착오이다. 나는 귀향자가 아니라 지나는 길손이다.”라는 문구는 유난히 유명합니다.

1956년 정처우위는 지셴 등 작가와 함께 정서 표현을 거부하며 지성주의를 주장하는 ‘현대시사(現代詩社)’를 창립했으며 나중에 또한 ‘초현실주의’를 옹호하는 ‘창세기시사(創世紀詩社)’에 가입한 바 있습니다. 1968년 장학금을 받고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University of Iowa) ‘국제 문예 창작반(國際寫作班)’에 진학해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선후로 아이오와 대학교, 예일 대학교 (Yale University), 홍콩 대학교 등 해외 대학교에서 중국 현대 문학을 수업했으며 2005년 타이완으로 돌아왔고 현재는 국립 진먼(金門)대학교에서 강좌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처우위의 작품은 중국 고전 문학 의식과 서양 현대문학 표현 방식의 조화가 잘 이뤄진 것은 특징입니다. 정처우위는 항일 전쟁 당시 어머니를 따라 피난을 다닐 때 어머니에게 고전시사를 많이 배워서 고전 시인의 정조를 가지고 있으며 시도 고전적 기품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는 구어체인 백화문(白話文)로 작성되고 작가 자신의 생활 체험을 주제로 한 것이라 쉽게 읽을 수 있는 편입니다.

정처우위의 초기 작품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가족과 조국에 대한 짙은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유랑의 의식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군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 각지를 두루 돌아다녔고 항일 전쟁 기간에도 어머니와 함께 여러 곳으로 옮겨 다녔는데 비참한 전쟁의 참화와 피난하며 유랑했던 경험, 중국의 장려한 풍경이 그의 천진난만하고 어린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잊히지 못합니다. 이러한 성장 배경 때문에 그의 작품은 인도적 색채와 탕자의 정서를 많이 담고 있어 그는 ‘탕자 시인(浪子詩人)’이라는 별칭을 받았습니다. 〈착오(錯誤)〉는 바로 이 시기의 작품입니다.

나중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 있는 정처우위는1965년부터 15년 ​​동안 글쓰기를 중단했으며 1980년에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후기 작품은 짙은 고전 분위기가 그대로이지만 유랑 의식이 줄어들고 지성적이고 철학적인 사상이 들어 있어서 더욱 성숙한 느낌을 줍니다.

정처우위의 시는 현대적이지만 강렬한 고전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이상은의 작품처럼 부드럽고 완곡할 수도 있지만 이백처럼 수탈하고 호방할 수도 있는데 정말 남다르고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시는 현제까지도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을 것 같다 싶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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