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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i 중앙방송국Rti 중앙방송국'타이완 문학의 중요 추동자' - 린하이인

  • 2021.09.03
포르모사 문학관
‘타이완 문학의 중요 추동자’라고 불리며 타이완인의 존경을 많이 받아온 여류 작가 린하이인(林海音) - 사진:린하이인 디지털주제관(林海音數位主題館) 사이트 페이지 캡쳐

여류 작가 린하이인(林海音)은 1950년대 타이완에서 매우 중요한 작가이자 문학 편집자로 문단에서 흔히 '린하이인 선생님(林海音先生)'이라고 불렸습니다.

린하이인은 필명이며 본명은 린한잉(林含英)입니다. 그는 《해조음(海潮音, 하이차오인)》이란 책집을 좋아해서 “海”자와 “音”자를 따서 필명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191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고 중국 베이징에서 자라고 타이완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1917년 린하이인의 아버지는 임신하는 아내를 데리고 일본으로 가서 장사를 하며 현지에서 린하이인을 낳았습니다. 린하이인이 태어난 후 온 가족은 타이완으로 돌아왔으나 얼마 안되고 또 중국 베이징으로 이주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베이징은 린하이인에게 어릴 적 많은 추억을 안겨준 ‘두번째 고향’입니다.

린하이인은 16살 때 베이징신문전문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하면서 《세계일보(世界日報)》에서 인턴십을 수행했습니다. 3년 후 졸업하자마자 《세계일보》에 입사해 문교와 여성 신문 전문 기자로 일했으며 21살 때는 직장 동료 샤청잉(夏承楹)과 결혼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8년 린하이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타이완으로 돌아와 1953년부터 1963년까지 10년 동안 타이완 3대 일간지로 꼽히는 《연합보(聯合報)》 문화란 편집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는 마침 계엄령 기간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하이인은 출신 신분을 막론하여 좋은 작품과 문학 신인을 발굴하며 주요 정치 선전 수단으로 이용되는 《연합보》 문화란을 문학인의 무대로 만들었습니다. 타이완 향토 문학의 대표적 작가 황춘밍(黃春明), 작가이자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 창립자 린화이민(林懷民) 등 현재 문화예술 분야에서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는 여러 사람은 모두 린하이인의 도움과 지지를 받아서 문학 창작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인 작가 발굴 외에도 린하이인은 중국어를 잘 활용하지 못해서  오랫동안 글쓰기를 멈춘 일치시기 작가들로 하여금 다시 펜을 들게 하며 그들의 글을 수정해주고 《연합보》에 게재해줬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타이완 문학의 중요 추동자’라고 불리며 문학인의 존경을 많이 받았습니다.

1963년 린하이인은 《연합보》에 게재된 《이야기(故事)》라는 제목의 시 때문에 사직했습니다. 이 시는 한 배는 오랫동안 바다에 표류하다가 드디어 섬에 도착하지만 선장은 한 부유한 과부의 유혹에 빠져 떠나기 싫어서 보물이 서서히 소진되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정부는 저작자가 이 시를 통해 에둘러서 국민당과 장제스를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저작자를 체포했으며 린하이인도 이 사건 때문에 편집장의 자리에서 떠났습니다. 이후 그는 미 국무부의 초청을 받아 타이완 작가로서 ‘타이완을 알아보자(認識台灣)’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4개월간 미국에 머물렀습니다. 미국에서 타이완으로 돌아온 후 그는 창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1967년 『순문학월간(純文學月刊)』을 창간했으며 이듬해에는 『순문학출판사』를 창립하고 27년간 400여 권의 책을 출판하고 1995년 77세의 나이에 영업을 종료했습니다. 순문학은 ‘정치적이나 상업적 목적이 없는 문학 창작’이라는 개념으로 린하인이에 의해 처음으로 제시됐습니다. 1950년대와 1960년도 그는 또한 성립 교육청과 국립편역관에서 아동도서와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편찬하는 일을 하며 국어 교육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린하이인은 언론인으로 뉴스를 통해 주관적의 의견을 전달할 수 없는 생각에 문학 창작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1950년 첫 소설 《아빠는 집에 없다(爸爸不在家)》를 발표했고, 1953년에는 가족, 윤리, 결혼, 자녀 교육 등 이슈를 다룬 첫 산문집 《(감탕나무)冬青樹》를 냈고 1959년에는 아머니와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여고생 샤오윈(曉雲)이 가정교사가 되어 학생의 아버지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 첫 장편 소설 《샤오윈(曉雲)》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1960년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재로 장편 소설 《성남구사(城南舊事)》를 작성하여 발표해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성남구사》는 린하이인의 대표작으로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전세계 독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동명영화도 1985년에 중국에서 상영되면서 호평을 받고 ‘중국 영화 황금 수탉상(中國電影金雞獎)’,  ‘마닐라 국제 영화제 최우수 장편 영화 황금 독수리상'을 비롯한 많은 상을 수상했습니다.

린하이인은 소설과 산문 뿐만 아니라 아동문학, 수필, 문학평론 등 여러 장르의 글도 썼습니다. 그는 독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어려운 단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설은 대부분 가정을 배경으로 혼인이나 사랑의 비극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성의 시각으로 봉건제도 하에서 압박을 당하는 여자의 원망과 5·4신사조운동(新思潮運動)의 영향을 받은 여자와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여성의 운명, 처지, 혼인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작성했습니다.

린하이인은 2001년 12월 1일 장기 부전으로 생을 마감했는데요.  80여년의 인생에서 그는 편집, 출판, 창작 이 3개 분야에 정신과 노력을 기울이면서 부드러운 힘으로 수많은 후진을 양성하며 타이완 문학 발전에 자양을 제공했는데 그는 타이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가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완전하고 전적인 존경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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