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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i 중앙방송국Rti 중앙방송국'타이완 문단의 꺾이지 않는 장미' - 양쿠이

  • 2021.08.27
포르모사 문학관
일치시기부터 활동한 타이완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양쿠이(楊逵) - 사진:양쿠이문물다지털박물관 사이트 페이지 캡쳐

양쿠이(楊逵)는 일치시기부터 활동한 타이완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이며 본명은 양구이(楊貴)입니다. 1906년 타이난(台南) 다무장(大目降), 지금의 타이난현 신화(新化)구에서 태어났고, 1985년 병사했습니다. 중국 4대 고전 소설 중의 하나 <수호전(水滸傳) >의 가상 인물 리쿠이(李逵)를 좋아해서 리쿠이의 ‘쿠이’자를 따서 성 뒤에 붙여 양쿠이란 필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생전에 종종 정치적 압박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문학 창작과 사회운동 참여를 통해 사회 개혁을 이루고자 해서 ‘타이완의 양심’이란 별칭이 있습니다. 

양쿠이는 어린 시절 타이난 쟈오바녠(噍吧哖)에서 일어난 항일운동과 그에 대한 학살 사건의 영향을 깊이 받아 민족의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1922년 타이난주립제이중학교(台南州立第二中學), 지금의 타이난제일고등학교(台南第一高中)에 들어가서 19세기 제정러시아의 유명 작가들, 이반 투르게네프(Ivan Sergeevich Turgenev),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막심 고리키(Maksim Gorky)  등 작가들의 사회 취약계층을 다룬 문학 작품과 프랑스혁명 시기의 문학 작품을 많이 읽고 인도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1924년 20세의 나이에 가족이 안배한 ‘민며느리’와 결혼하고 싶지 않은 데다가  견문을 넓히려고 일본 도쿄로 가서 밤에 현지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낮에는 신문 배달, 미장일 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이 경험은 그의 대표작 <신문배달부(送報伕)>의 토대가 됐습니다. 일본에서 유학하는 동안 양쿠이는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에 많이 참여하고 조선인 모임 참가의 이유로 한번 체포되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나중에 사회주의 운동가의 길을 갇게 된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양쿠이는 스스로를 '인도적 사회주의자’라고 자칭했는데 그는 자신이 사회주의자라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사회주의 사상이나 어떤 행동에 대해 유보적이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어 전통적 사회주의자와 구별하기 위해 앞에서 '인도적'을 붙인 것 같습니다.

일본에든 타이완에든 1920년대는 사상이 많이 발전했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계급의식의 출현과 지식인의 참여로 타이완 농민운동이 퍼지기 시작했는데 양쿠이는 농민운동 참여를 위해 1927년 일본에서 타이완으로 돌아왔으나 돌아온 지 불과 3개월 만에 체포되었습니다. 이를 포함하여 그는 일치 시기에 사회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0번이나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이 시기에는 그는 그의 아내, 똑같이 사회운동가인 예타오(葉陶)를 만나고 결혼했습니다. 

1932년 양쿠이는 소설 <신문배달부>를 발표했으며 1934년 일본 문학 잡지 《문학평론(文學評論)》에 입선되어 소설가로서의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신문배달부>는 일본 유학을 간 한 청년은 대공황 시기에 간신히 신문 배달의 일을 구하게 되지만 사장에게 착취를 당하는 데다가 가정 생계 유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소유지를 일본 재벌에게 수탈을 당해서 결국 집과 가족을 잃게 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소설은 무산자와 노동자의 입장에서 자본가의 착취와 약탈을 비판하는 전형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입니다. 그리고 신문배달부들이 뭉쳐서 사장과 싸워 그를 타협하도록 하는 결말은 취약계급 사람들이 단결하고 불의한 권력에 대항해야 한다는 생각을 드러냈습니다.

양쿠이는 <신문배달부>외에도 농촌생활을 기반으로 하며 일제 식민 통치자와 봉건 지주의 죄행을 폭로해 비판하고 제국주의와 봉건주의에 맞서 싸우도록 격려하는 작품을 많이 작성했습니다. 〈無醫村(무의촌〉 속에서 열병에 걸리지만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불쌍한 농민들, 〈모범촌(模範村)〉속에서 1년 내내 열심히 일하지만 생계를 유지하지 못해서 자살을 하는 농민, 〈하녀(蕃仔雞)〉속에서 일본 고용자에게 성폭력을 당해 임신을 하는 타이완적 하녀 등등 양쿠이의 많은 작품 속에 일본 자본가나 봉건 지주의 착취와 학대를 당하는 하층계급 캐릭터들이 많이 있습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 후,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이 타이완을 접수했습니다.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건너올 때 많은 군인과 민간인들이 역시 타이베이로 옮겼는데요. 당시 양쿠이는 문학 간행물을 만들고 중국 작가에 대해서 많이 소개하며 국민당 정부를 따라 타이완으로 온 중국 문인들과 함께 전후 타이완 신문학에 재건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사회운동가로서 그는 백색테러에 휘말렸으며 1947년 228사건 발생 이후 체포되어 투옥됐습니다. 1949년 정치 개혁을 위해 〈평화선언(和平宣言)〉을 작성해서 12년의 유지 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1957년 그는 감옥에서 최초로 중국어로 《봄빛을 막을 수 없네(春光關不住)》, 현재 제목 ≪꺾이지 않는 장미(壓不扁的玫瑰)≫인 단편소설을 발표해 모국어(중국어) 작가가 됐습니다. ≪꺾이지 않는 장미(壓不扁的玫瑰)≫는 일본 정부의 강요에 의해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타이완인의 고통을 묘사하고 있으며 교과서에 수록된 첫 일치 시기 작품이 됐습니다.   

양쿠이는 소설 외에도 시, 문학평론, 수필, 번역, 각본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도 시도해봤고 심지어 그의 유작 중에서 아직 미공개된 그림, 동화, 만담 대본, 가사 등 다양한 작품은 발견됐는데 문학적 재능이 정말 뛰어난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은 일제 식민 지배를 당한 타이완인의 고통을 드러내면서도 그들이 불굴의 저항 의지를 가진 긍정적인 면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의 문화와 사회 측면에서의 공헌은 영원히 후대에게 잊어지지 않을 겁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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