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ti 중앙방송국Rti 중앙방송국'타이완 제일의 재자' -

  • 2021.08.20
포르모사 문학관
'타이완 제일의 재자(台灣第一才子)'라는 별칭이 있는 타이완 작가 겸 성악가 뤼허뤄(呂赫若) - 사진:위키백과

타이완 일치 시기부터 전후초기 사이 활약하게 활동하던 하카인 작가 뤼허뤄(呂赫若)는 본명은 뤼스뒈이(呂石堆)입니다. 필명은 뤼허뤄가 가장 존경하는 2명 좌익 작가의 이름, 조선 작가 장혁주(張赫宙)의 혁자와 중국 작가 궈뭐뤄(郭沫若)의 뤄자를 따서 만든 것이나 “명성이 매우 높다”를 뜻하는 일본어에서 유래된다고 합니다. 그는 문학 뿐만 아니라 음악, 희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성취는 또한 두드러져서 ‘타이완 제일의 재자(台灣第一才子)’라고 높이 평가받습니다. 

뤼허뤄는 타이완 일치 시기인 1914년에 지주가족에 태어났고 어렸을 때부터 신식 교육을 받았으며 공학교 시기에는 문학과 음악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또 이 시기는 마침 세계 경제대공황이 일어나 사회주의자가 세력을 확장한 때인데 뤼허뤄는 또한 영향을 많이 받고 이 동안 사회주의 관련 서적을 즐겨 읽었습니다. 1934년 그는 타이중사범학교(台中師範學校)를 졸업한 후 교사가 되고 문학 창작을 시작했습니다. 1년 후인 1935년 일본어로 작성한 첫 작품  〈소달구지(牛車)〉를 당시 일본 최고의 문학 잡지 《문학 평론(文學評論)》에 발표해 주목을 많이 받고 ‘문학 천재’라고 불렸습니다.   

〈소달구지(牛車)〉는 단편소설로 일본 식민 통치로 인한 사회구조의 변화가 타이완 사회 하층 근로자 생활에 큰 충격을 주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 소달구지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인공 ‘양톈딩(楊添丁)’은 자동차 사용으로 인해 경제 위기에 빠지는데 가정 생활 개선을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서 아내가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하게 되고 양톈딩은 또한 절도죄로 잡히고 맙니다. 뤼허뤄는 이 이야기를 통해 식민지 전통 사회의 해체와 빈곤화를 드러내며 타이완인의 일할 권리 상실과 사회적 가치 변화를 초래한 식민 통치를 비판합니다. 한편, 소설 속에는 양톈딩 아내에 대한 묘사가 많은데 이는 뤼허뤄가 여성의 사회적 처지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많기 때문입니다.     

문학 창작 외에 뤼허뤄는 음악에도 깊은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 도쿄에 가서 성악 공부를 하기 위해 6년 동안 열심히 해온 교사 일을 그만두고 1939년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는 공부를 하며 현지 극단인 동바오극단(東寶劇團)에 참여해 1년 간 공연을 하다가 몸이 좋지 않아서 타이완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뤼허뤄는 타이완에서 ‘타이완 제일의 남고음’이란 별칭이 있습니다.

1942년 타이완으로 돌아온 후 뤼허뤄는 선후로 기자와 잡지 편집자 일을 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그는 또한 기타 작가와 함께 연극연구회를 설립하고 신극(新劇)에 대해서 토론·연구를 했으며 나중에도 영화 회사에 들어가 신극, 포대희(布袋戲), 방송극 등 다양한 장르의 극본을 직상했습니다. 이 시기의 문학 작품은 주로 황민화운동, 태평양전쟁 등을 주제로 하며 타이완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의 난처한 처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1944년 그는 타이완 첫번째 소설집 《청명한 가을(清秋)》을 발표했습니다. 그중 대지주 가문의 몰락을 그린 단편소설 〈재자수(財子壽)〉는 제1회 타이완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재자수(財子壽)〉는 대지주 ‘저우하이윈(周海文)’의 음탄함과 인색함, 그리고 그의 아내 ‘위메이(玉梅)’가 봉건적인 가부제도 질서 아래 괴롭혀져 결국 돌아버린 이야기입니다. 제목 〈재자수(財子壽)〉는 재부, 자녀, 수명의 약칭으로 대지주 저우하이원이 추구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끝난 후 뤼허뤄는 중국어로 창작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의 문학 작품은 일본 통치 시기의 불합리한 정책과 전후 초기 타이완 정치의 부폐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의 생전의 마지막 작품 〈겨울밤(冬夜)〉은 주인공 차이펑(彩鳳)은 남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실종해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몸을 팔기 시작하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중국에서 온 남자에게 결혼을 강요당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제목 ‘겨울밤’은 백성의 처량한 처지를 상징하며 소설 속 남존여비(男尊女卑)의 현상은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를 표현합니다.

1947년 국민당 정부군이 담배 거래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타이완 노파를 살해한 사태로부터 비롯된 228사건이 일어났습니다. 228사건 이후 뤼허뤄는 중국공산당 타이완성 공작위원회(中國共產黨臺灣省工作委員會)에 가입해 사회주의 간행물 《광명보(光明報)》 편집을 담당하며 재산을 팔아 자금을 마련해 다안인쇄소(大安印刷所)를 세우고 사회주의 선전물을 인쇄하기도 했습니다. 1949년 《광명보》가 공산당의 지하간행물로 고발되어 여러 명 《광명보》 관련 인사가 체포되면서 뤼허뤄가 잡히지 않도록 망명생활을 하다가 1951년 당시 중국공산당의 기지라고 한 신베이(新北)시 루쿠(鹿窟) 지역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뱀에 물려서 죽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사망 원인이 불명합니다. 이후 그의 가족은 백색테러의 공포 하에서 그가 남긴 서적과 친필 원고를 땅에 묻고 물을 뿌려주어 썩게 만들었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아이들의 출생 날짜가 쓰여 있는 일기장인데 2020년 국립타이완문학관에 기부됐습니다.

뤼허뤄는 주로 봉건적 사회의 압박과 식민지 사회의 정치경제적 불평등, 사회구조의 변화로 인한 국민의 어려움을 주제로 작품을 작성했으며 특히 여성의 사회적 처지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은 작품을 통해 많이 드러냈습니다. 그는 1914년에 태어나 1951년에 죽었으니 이 땅에 머문 기간은 불과 40년이지만 그의 작품은 영원히 남아 타이완인에게 무한한 영감과 감동을 줍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관련 댓글